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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몇년 생이세요?

등록 2007-01-18 00:00 수정 2020-05-02 04:24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1월1일 해가 뜨고 왕만두 두어 개 들어간 떡국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지난 1년 동안 익숙했던 숫자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숫자를 맞이하게 된다. 숫자는 공평하다. 전세계 수십억 인구 누구에게나 ‘더하기 1’이다. 어쨌든 올해 나는 20대 중반에서 20대 중·후반이 됐다. 올해는 새로운 숫자를 맞이하며 기분이 처음으로(!) 묘했지만 기자가 된 이후부터 지난 몇 년 동안은 1월1일이 너무 좋았다. 아니, 1년에 나 혼자만은 나이가 2살씩 많아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어리다’는 것이 내가 기자로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콤플렉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생일이 1월인 탓에 초등학교도 7살에 들어갔고 대학교도 재수하지 않고 들어갔다. 많이들 갔던 해외 어학연수도 가지 않았고, 주민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기에 군대도 안 가고 9학기 만에 졸업했다. 게다가 졸업하고 몇 달 만에 취업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동기 중에 나와 동갑인 친구가 한 명 더 있었고 나와 그 친구는 동기들 중 가장 어렸다. 처음에만 해도 가장 어리다는 사실이 나름대로 괜찮았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 있고 경제적으로도 일찍 독립한 것 아니냐며 제법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부터였다. 수습기자로 경찰서를 뺑뺑 돌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99%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보다 어렸던 사람은 원조교제나 절도로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듯 했던, ‘기자 언니’ 하면서 나를 기자실까지 따라와 놀아달라고 했던 10대 여학생 정도? 나머지는 모두 나이가 많았고 대부분 남자였다.
딱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다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만 해도 액면가 그대로(!)의 얼굴이었던 나는 언제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근데 몇 년생이세요?” 기자와 취재원이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도 아니고 기사에 필요해서 취재원 나이를 물어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취재원이 기자에게 나이를 먼저 물어본다는 것은 이미 상대방이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 몇 번은 진실을 말했던 것도 같다. 그들은 내 나이를 밝히는 순간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지고 행동이 흐트러졌으며 말꼬리를 딱딱 잘라먹었다. 그들은 ‘이렇게 어린 애가 기자라니’ 했겠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순진했다니’ 싶었다. 그 다음부터는 나이를 잔뜩 부풀려 말하거나 “제가 몇 년생으로 보이세요?”로 맞받았다. 상대방이 좀 많이 쳐주면 “뭐 비슷해요”라고 했고 진실에 가깝게 불렀다면 “에이, 저도 먹을 만큼 먹었어요”라고 쏘아붙였다.
물론 그때의 나는 바보였다. 왜 스스로 내 나이를 부정하려고 했을까. 나이 콤플렉스는 취재원 앞에서 내 자신을 작게 만드는 불필요한 장치였을 뿐인데. 나이 어린 기자가 와서 뭣도 모른다고 훈계하는 ‘아버지+교장 선생님 타입’의 취재원에게는 ‘그냥 그러고 살라’고 그의 삶을 애도해주고, 대뜸 반말로 틱틱대는 ‘노란싹수사나이 타입’의 취재원에게는 끝까지 예의를 갖춰 상대적으로 내 인격이 돋보이도록 하면 그만인 것을. 이제 나이 콤플렉스 따위는 없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나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TV가 가르쳐준 격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요즘에는 거꾸로 취재원들에게 내 나이를 자랑하고 다닌다. 가끔은 ‘오죽 내세울 게 없으면 나이를 들먹이냐’는 식의 눈총도 느껴지지만 ‘어리다’는 것 말고는 대체로 다른 기자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기에, 오늘도 자랑한다. 그것도 신문 나이로.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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