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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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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고 황당 사건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독신인 ○○○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의 자기 사무실에서 아침에 밥을 해먹기도 하는데 비서한테 밥을 짓도록 한다. 한번은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냄새가 진동해서 의원회관에서 생활하는 다른 이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어느 당의 한 의원은 자신에게 신기(神氣)가 있다면서 여기자들의 사주팔자나 궁합을 봐준다.” “한 여성 의원은 자신을 취재하고 긍정적인 기사를 쓴 남자 기자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야한’ 얘기를 해서 그 기자를 어쩔 줄 모르게 했다.”
정치부 기자들이 최근 작성한 ‘정보보고’에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 가운데 기사화하지 않은 나머지 정보 가운데 기록할 가치를 지닌 것들은 ‘정보보고’라는 형태로 기록된다.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이런 정보를 한군데에 취합해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어떤 정보들은 새로운 취재를 위한 실마리로 쓰이기도 하고,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배경 정보로 쓰이기도 하며, 단순히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이런 모든 정보들은 ‘기자들만의 리그’에서 통용되는 배타적인 정보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기자들에게 인기 있는 정보보고는 심각한 것보다는 가벼운 내용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심각한 정보를 다뤄야 하는 기자들에게 재미로 보는 정보보고는 가뭄의 단비 같은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정보보고는 보통 ‘즐메모’(‘즐거운 메모’ 또는 ‘즐기는 메모’) 또는 ‘잡메모’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한다. 스포츠신문 1면 톱에 연예인이 익명으로 등장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익명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메모가 등장한다. 이런 정보보고는 보통 말단 기자들의 몫이다.
기자는 노동의 성격 때문에 남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이런 정보 가운데는 특정인의 사생활이나 국가 이익과 직접 관련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사생활 정보 가운데는 남들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많다. 더 정확하고 고급스런 정보를 얻기 위해 대기업 정보팀 담당자나 국정원 관계자와 정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기자들도 있다. 고급정보나 비밀정보에 대한 갈망은 특종 욕심이 많은 기자들일수록 더욱 심하다.
내 경우에는 정보보고 내용이 누출돼 황당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중요한 취재원한테서 들은 얘기를 정보보고로 띄웠는데 불과 며칠 만에 정보보고의 대상이었던 해당 취재원한테서 항의를 받은 것이다. “믿어서 솔직히 한 얘기를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회사에 곧장 보고하면 앞으로 어떻게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냐”는 볼멘소리였다. 1 대 1로 친밀한 대화를 했다고 믿었던 취재원으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얻은 배타적인 정보를 사적으로 활용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광고기획사가 작성한 ‘연예인 신상정보 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흘러나와 큰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기획사가 정보를 모으면서 연예 담당 기자들한테서 들은 얘기를 ‘믿을 만한 정보’로 인정해 보고서에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99년에 발생한 이른바 ‘언론공작 문건’ 사건에서는 정치부에 오래 출입한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특정 정치인에게 보고서 형태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국 기자들이 정보보고를 한다면 중국 기자들은 ‘내참’을 한다. ‘내참’이란 기사화하지 않고 내부 참고용으로 당·정·군 관계 기관에 올리는 각종 정보보고를 일컫는다. 이래저래 정보보고를 하면서도 기자는 ‘공익’을 고려해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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