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일이 꼬여도 이리 꼬일 수가 있을까. 그것도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상태였다. 지난 11월6일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날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하루의 결정적 순간을 복기했다. 인천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본의 아니게 올해 한반도를 벗어나는 일이 많았다. 누가 보더라도 ‘싱글 모드’로 작동하는 행보였다. 흘겨 보는 눈빛을 애써 무시해야만 했다. 그렇게 주위의 반응을 살피지 않은 대가였을까. 그날 밤 이국 땅에서 노숙자가 되어 새벽 안개를 바라보며 씁쓸한 기분을 삼켜야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인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탑승권 발권을 받으려고 항공사 창구로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히드로 공항에선 손짐을 하나밖에 들을 수 없으니 나머지는 수화물로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항공기 테러를 염려해 검색을 강화한 때문이었다. 그때 내겐 카메라 본체와 렌즈·스트로브 등이 있는 가방과 노트북이 든 가방이 있었다. 두 개의 가방 가운데 하나만 들고 가야 한다니…. 어떻게 해도 문제가 있을 듯했다. 이내 맞춤한 스티로폼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 튼실하게 화물칸에 실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카메라와 컴퓨터 둘 가운데 하나를 수화물로 보냈으면 일은 간단히 풀렸을 것이다.
잠시 “어떤 것을 수화물로 처리해야 뒤탈이 적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 수속을 밟을 차례가 됐다. 고민은 항공사 창구 직원의 한마디로 간단히 해결됐다. “노트북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손짐 수와 관계없이 들고 가셔도 됩니다”라는. 마치 구세주의 복음을 전해들은 듯 의기양양하게 출국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보름 동안 입에 물어야 하는 담배 두 보루를 사서 노트북 가방에 쑤셔넣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창구 직원의 귀띔이 고맙기만 했다. 적어도 히드로 공항에서 깐깐한 보안요원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뒤 1시간여 뒤에 스톡홀름행 비행기로 바꿔타야 했다. 서둘러 절차를 밟아야 했다. 비행기를 옮겨타려고 탑승구로 이동하는데 보안검색이 이뤄졌다. 컴퓨터 가방은 손짐으로 따지지 않을 테니 염려할 게 없었다. 그런데 앞에서 수속을 밟던 사람의 손짐이 두 개였는지 “손짐을 하나로 만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설마 노트북 가방이 있다고 비행기를 태우지는 않겠지” 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런데 상황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만 갔다.
어디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복 차림의 보안요원은 “손짐을 하나로 만들거나 출국 수속을 밟아 짐을 수화물로 보내라”고 했다. 입·출국 절차를 밟으면 비행기를 놓칠 게 뻔했다. “짐을 하나로 만들라고? 방법이 있겠지!” 하면서 주위를 살폈더니 검정 비닐의 쓰레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가방 두 개를 넣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안요원에게 갔다. 그러자 보안요원은 손가락으로 출구를 가리키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쓰레기 봉투로 자신을 농락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일까. 시간 가는 걸 막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영국 입국 절차를 밟았다.
겨우 출국 수속을 밟게 됐을 때, 스톡홀름행 비행기는 히드로 공항에 없었다. 곧바로 대기자로 신청했지만 마지막 비행기를 보낼 때까지 빈 좌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히드로 공항의 노숙자가 되었다. 다음날 새벽 창구에 갔다. 여전히 빈 좌석은 없었고 “오후에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마냥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음 예정지인 예테보리행 비행기의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석유 독립을 꿈꾸는 스웨덴( 637호 참조)의 취재 현장이 예테보리에 집중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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