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지난해 봄 ‘장수동 개 지옥’이라고 불리는 동물학대 사건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 그렇고 그런 사건. 여하튼 그 사건의 제보를 받은 건 3월쯤이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가 이메일과 함께 전화를 했다. 이메일에는 비참하게 떼죽음을 당한 강아지들과 병든 개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는 “곧 인터넷에 뿌릴 것”이라며 “그 전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가장 바쁜 기사 마감날, 사진기자인 박승화 선배와 그를 따라 인천시 장수동에 갔다. 아직 정비가 덜 된 토지구획정리지구라 복잡한 길을 헤맸는데, 결국 개들의 누린내가 우리를 인도했던 것 같다. 장수동 개 지옥은 어느 택지지구의 산비탈에 있었다.
개들은 아스팔트 위에 세워놓은 철창 아래 100여 마리 정도 살고 있었는데, 귀가 없는 개, 다리를 저는 개, 털이 다 빠진 개 등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개들이 이렇게 방치된 이유는 개 농장 주인과 남동구청 사이의 다툼 때문이었다. 구청은 토지구획정리를 위해 개 농장을 강제 철거하고, 개들은 둘 곳이 없어 주변 도로에 철창을 치고 임시 견사를 만들어 넣었다. 개 농장 주인은 “남동구청이 견사를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개 900마리가 100마리로 줄었다”며 담당 공무원을 고발했고, 보상금을 받을 때까지 개들을 치우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수동 개 지옥 사건을 거창하게 폼 잡고 해석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아내려는 욕구와 관료주의 사이에서 생명윤리가 실종된 것이었고, 쉽게 말하자면 개를 볼모로 추잡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민사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귀 잘린 개를 한 장의 사진기사로 ‘간단하게’ 처리했다.
다음주 한 공중파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작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여기 인천시 장수동인데요, 그 견사 이야기 쓰셨잖아요? 그런데 거기 어떻게 가요?”(흔히 이런 기사를 쓰면 방송사 작가들에게 취재원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전화를 받기 마련인데, 갈 길을 알려달라는 전화는 처음 받았다.) 나는 “가는 길이 워낙 복잡해서 잘 모른다. 나랑 같이 간 분이 있으니 그분에게 길을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길을 잃었다는 전화가 몇 번 왔다.
이틀 뒤, 장수동의 불쌍한 개들은 방송을 탔다. 흥분하기 좋아하는 네티즌은 역시 폭발했다. 인터넷에서는 “ 방송에 나온 장수동 개 지옥 알아요?”라는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끄응. 우리가 썼을 때는 아무 말도 없더니.
나와 박승화 선배는 “장수동 개 지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만 아는 특종”이라고 막걸리를 마셨다.(사실 속으론 “이렇게 센세이셔널한 물건인데, 너희가 기사 가치를 잘못 판단해 조그맣게 썼잖아”라고 편집장이 성낼까봐 조마조마했다.)
‘(나만 아는) 특종 강탈 사건’이 머리에서 사라질 쯤, 부서원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거기에 한때 인천의 취재 현장을 누볐던 안인용 기자가 있었다. “어, 그거 예전에 나온 이야기예요. 그보다 훨씬 몇 달 전에 지역 일간지에서 썼어요.”
허걱. 예전 기사를 뒤져봤다. ‘개 주인과 구청 간 개 떼죽음 책임공방 가열’, 2005년 6월17일치. 먼저 쓰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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