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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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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의 뒷담화

등록 2007-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무슨 뒷담화라고?”
2005년 4월쯤이었을 겁니다. 이제는 의 주말판 준비팀장으로 옮겨간 고경태 선배의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고 유현산 편집팀장이 말합니다. “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겪었지만 기사로는 쓸 수 없었던, 혹은 쓰지 않았던 얘기들을 모아보자.” 제목은 ‘취재 뒷담화’로 정해졌고, 이제는 아이 엄마가 된 김소희 선배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제목은 “나, 미스 김!”(2005년 5월26일치 561호)이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마지막 취재 뒷담화를 합쳐 모두 90편의 뒷담화들이 여러분을 찾아갔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면을 메워나갈 때마다 어른이 된 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일기를 쓰는 것처럼 쑥스럽고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사 끄트머리에 첨부되는 캐리커처가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내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만큼 독자들의 반응도 쏠쏠했습니다. 물론, 기사 부담이 많았던 때는 ‘뒷담화’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마지막 뒷담화의 지면을 채워나가면서 그동안 누가누가 많이 썼나 키재기를 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사건 현장을 누비는 일이 많은 사회팀과 정치팀 기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사회팀장 김창석 선배와 남종영 기자가 9편으로 공동 3위를 기록했고, 정치팀 류이근 선배가 10편으로 2등입니다. 1등은 이 글을 합쳐 모두 11편의 뒷담화를 띄워드린, 두구두구둥둥, 바로 제가 되겠습니다.
제목만 봐도 기자들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류이근 선배의 뒷담화는 MP3·녹음기 등 전자기기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급박한 취재 현장에서 그런 전자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낭패를 봤다는 자학성 내용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새겠습니까. 파리로 출장간 류 선배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기백만원이 든 돈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2005년 12월7일치 588호), 같이 취재갔던 윤운식 사진팀 선배는 나중에 “그래서 한국에 못 들어올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2년째 제 옆 책상을 지키고 있는 남종영 기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전문가이자 동물애호가입니다. 남 기자의 뒷담화에선 북극·곰·해외출장·찾기 등의 키워드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북극으로 곰 찍으러 갔던 남 기자와 류우종 사진팀 선배는 결국 얼짱 각도로 먼 바다를 바라보며 ‘후까시’ 잡고 있는 북극곰의 모습(2006년 10월10일치 629호)을 독자 여러분께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뒷담화에는 곰 촬영에 성공했던 순간에 대한 묘사는 없었지만, 놀란 북극곰이 두 기자가 타고 있던 차에 덤벼들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급박한 상황이 있었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는 뒷담화는 뭐였나고요? 의 막내 최은주 기자의 ‘개밥과 우보협’(2006년 8월24일치 624호) 편입니다. 2005년 11월 입사 뒤 황우석 사태를 현장에서 지켜보게 된 우리의 최 기자.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황우석 연구팀의 핵심에 있던 안규리 교수 연구실 앞에서 ‘뻗치기’(무조껀 기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을 따돌리고 병원 본관 쪽으로 움직이던 안 교수를 헉헉대며 쫓아간 최 기자가 던진 첫 질문은 대략 다음과 같았답니다. “저 교수님. 교수님 안 계시는 동안 교수님 집에서 개가 배고프게 짖던데, 개밥은 누가 줬나요?”
뒷담화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지난 2년 동안 뒷담화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기자들을 대신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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