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제보들이 접수된다. 전화를 걸어 기사를 제보하는 사람도 있고 사전 연락 없이 불쑥 사무실로 찾아와 담당 기자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제보 전화가 걸려오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어떤 영역에 속하는지를 따져 담당 기자한테 다시 연결해주는데, 담당이 바깥에 나가 있으면 가장 먼저 전화를 받은 기자가 직접 응대해야 할 때도 많다. 일반적으로 기자라면 제보 전화를 서로 먼저 접수하겠다고 나설까? 물론 우연찮게 제보 전화를 먼저 받은 사람이 그걸 나중에 기사화해 특종을 낚을 수도 있다. ‘훌륭한 제보’일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제보 전화 받는 일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제보 처리’를 피곤한 일이라고 여기는 기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사실은 나도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당수 제보 내용은 제보자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사건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이해, 특히 금전적 이해가 걸린 경우에 가깝기 십상이다. 도대체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은 제보 내용은 흔치 않다. 따지고 들수록 복잡하고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대다수다. 제보 전화를 받으면 나는 처음에 가만히 듣고 있다가 대뜸 “그래서 결국 선생님이 원하시는 게 뭡니까?”라고 묻곤 한다. 정중하게 물어보는 외양을 갖추긴 하지만, 제보를 해온 쪽에서는 다소 거칠고 공격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통화가 더 길어지면 “처지는 이해합니다만 선생님이 지금 제기하는 억울함이나 피해와 비슷한 형태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아마 수백, 수천 명은 될 겁니다”는 식으로 응대할 때도 있다. 물론 몇 마디 말만 듣고 또 사실관계 몇 가지만 확인하면 기사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단박에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이해관계가 걸린 제보 내용은 기사화하기 쉽지 않은 게 태반이다. 결국 “저 혼자서는 판단할 수 없고 편집진 회의를 거쳐 취재 여부를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게 된다.
검찰과 법원 등에 이미 사건화돼 있는 제보 내용도 간혹 있다. 수사와 재판에 유리하게 활용하고 상대방을 압박할 목적으로 언론 보도를 원하는 제보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또 상당수 제보는 누구의 소개나 부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기사화를 타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한 제보들이 주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비록 딱한 처지에 공감해 취재가 시작되지만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결과는 없는 ‘사랑에 속고 시간에 울고’가 되고 마는 일도 허다하다.
어느 고참 기자는 “기자는, 팩트의 디테일한 사실관계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팩트들 너머에 있는 전체적인 진실을 파악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살아 있는 고전’ 정도로 생각하고 판단의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다. 사실 진실과 거짓을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태나 현상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예전에 검찰에 출입할 때 대검찰청의 어느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방검찰청에서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경우 고소·고발자가 이에 불복해 수사를 다시 해달라고 대검에 항고하는 사건이 많은데, 그들을 검찰청으로 불러 사연을 충분히 들어주면 나중에 또다시 불기소 처분을 내리더라도 승복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많다.” 억울함을 경청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크게 누그러진다는 얘기다.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겨 제보 전화를 차가운 논리로만 응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제보자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경청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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