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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기 쿠바 견문록

등록 2006-08-08 00:00 수정 2020-05-02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쿠바에 다녀왔다’고 주변에 말해보시라. 십중팔구 호들갑 섞인 부러움을 사거나, 질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일 게다. 쿠바에 대해 ‘비호감’인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유? 글쎄, 딱히 모르겠다. 그저 떠오르는 건 카리브해의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와 시가를 피워 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그리고 영화 의 고혹적인 선율 정도다. 그럼에도 누구나 인정한다. ‘쿠바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나, 지난해 가을 쿠바에 다녀왔다.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평화단체 피스보트와 함께 아바나를 둘러봤다. 고작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쿠바… 참 좋았다. 너무들 부러워하지는 마시라. 순전히 운이 좋아 갔지만, 놀러간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무지하게 바빠 즐길 기운도 없었다. 허망한 그 사연, 지금부터 공개한다.
배를 타고 아바나 항구로 들어서는 길은 황홀했다. 때맞춰 마중나온 허리케인 윌마 덕분에 정박에 앞서 이틀여에 걸쳐 깔끔하게 속을 비워낸 뒤였다. 해뜰 무렵 천천히 내륙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는데, 멀리서 떠오르는 햇살이 흡사 배 양편으로 펼쳐진 도시에 금박이라도 입히는 듯 화사했다. 아바나 도심에 들어서고야 멀쩡해 보이던 건물이 사실은 칠이 다 벗겨진 남루한 몰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칙칙한 얘긴 더 하지 않으련다.
쿠바 국제친선우호협회에서 나왔다는 ‘안내원 동무’의 이름은 율렉시였다. 20대 후반임에도 아랫배가 봉긋한 호인이었다. ‘이 동네 사람이 다 이럴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낙-천’ 두 글자를 이마에 새기고 다녔다. 짧은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취재진의 온갖 무리한 요구와 짜증을 다 받아내면서도 그는 내내 ‘허허허’ 웃음만 흘렸다.
‘혁명의 도시’에 갔으면 냉큼 그 상징부터 ‘참배’할 일이었다. 하지만 어리바리 일에 쫓기느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율렉시의 배려로 첫날 취재를 마치고 잠깐 혁명광장을 둘러봤고, 취재 일정을 얼추 마무리한 이틀째 오후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플라타너스 주점을 힐끗 들여다볼 수 있었다.
출항을 두어 시간 앞두고 항구 뒤편의 거리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저만치 뱃고동이 울리고 마음은 분주했지만, “쿠바에 왔으니 모히토 한잔은 꼭 하고 가야 한다”고 붙잡는 율렉시를 뿌리칠 수 없었다. 모히토는 5~7년 숙성된 쿠바 특산 럼주에, 야생 민트와 라임을 곁들인 칵테일이다. 음흉한 율렉시는 “여자친구의 ‘진심’을 알아보려면 함께 모히토를 마셔보라”고 말했다. 이거, 여러 잔 마시면 흙같이 취해버린다.
술기운에 고급 시가 2개비를 사 들었다. 율렉시에게 1개비 쥐어주곤, 호기롭게 피워물고 불을 댕겼다. 그때까지 그는 망설였다. 그러더니 “장인어른 갖다드리면 좋아하시겠다”며 종이로 둘둘 말아 가방에 집어넣었다. 시가의 나라 쿠바엔 ‘비자발적’ 금연자와 채식주의자가 넘쳐났다.
여든 살 노인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최근 수술을 받기 위해 동생 라울에게 ‘일시적으로’ 권력을 위임했다. 혁명 직후부터 계산해 그는 47년7개월째 권좌를 지키고 있다. ‘독재’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겠지만, 적어도 아바나의 거리에선 카스트로를 기리는 대형 동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다. 카스트로의 수술 소식에 마이애미의 리틀아바나에서 경적을 울리며 환호하는 이들을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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