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4대 종교 단체들이 쿠팡 김범석 의장의 ‘직접 사과’와 정부의 ‘강압수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쿠팡 창업자인 김 의장은 국외에 머물며 국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제가 현장에서 느낀 핵심 문제는 야간근무를 선택하게 만드는 저임금 구조입니다.”
한겨레21이 쿠팡이 외주화한 배송 인력인 ‘퀵플렉서’에 관한 보도를 한 이후 기자에게 전자우편 한 통이 도착했다. 쿠팡의 정규직 노동자 김용만(가명)씨가 보낸 것이었다. 그는 전자우편에서 어떻게든 쿠팡 정규직으로 남고자 했던 노동자들도 쿠팡에서 최저임금 정도만 받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용만씨는 주 5회, 밤새워 대형트럭을 몰며 물류센터 사이에서 상품을 배송하는 일을 한다. 그가 쿠팡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낮에 일했지만, 중간에 야간조로 바꿨다. 그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규직이지만 기본급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야간에 일해서 ‘수당’을 받아야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
용만씨는 최근 쿠팡과 관련해 나오는 뉴스를 보고 더욱 ‘상실감’을 느끼게 됐다. “대관 업무는 잘 모르고 있었거든요. 최근 뉴스에서 다뤄지는 걸 보면서 (정부 출신) 대관 담당자의 연봉이 나오기도 하고, 미국에서 (약 160억원) 로비를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상실감을 느꼈어요. 저희 월급 조금 올려달라고 했을 때는 돈 없다고 하면서, 이런 데 돈을 썼구나….”
한때 모든 인력을 직고용하겠다던 쿠팡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통해 3자 물류 사업을 하면서 배송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비용과 부담은 전가하고 쿠팡은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쉼 없이 일했고, 계속 쓰러졌다.(쿠팡 지옥도 체험기 참조) 쿠팡은 외주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직고용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쿠팡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일까. 한겨레21 취재 결과 쿠팡의 배송 관련 정규직 노동자들은 내부에서 사실상 ‘쥐어짜기’를 당하고 있었다. 기본급은 늘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 직무나 소속에 따라 차별이 존재했고, 일부 위법한 정황도 파악됐다. 이런 조건이 싫으면 알아서 나가라는 식이었다.
189만원. 용만씨의 2025년 10월 급여명세서에 찍힌 기본급 액수다. 식대 20만원을 합쳐야 2025년 최저임금 수준인 209만원에 도달한다. 용만씨의 실수령액은 월 290만원 정도다. 월급을 300만원 턱밑까지 맞출 수 있는 건 수당 때문이다. 고정연장수당과 고정야간근로수당이 각각 45만원, 76만원 붙는다. 하루 10시간씩 주 5일을 밤새워 일한 대가다. 용만씨는 이런 수당을 다 합친 300만원이 일종의 ‘착시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연장·야간 수당 없이 일반적인 형태(일 8시간, 주 5일 근무)로만 계산하면 최저임금이에요. 그런데 기본급에 고정연장수당이랑 고정야간수당이 붙으면 ‘월급’이 많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줘요. 시스템에 적응된 직원들은 제공한 노동력에 비해 받는 금액(이 적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거예요.”
대부분의 쿠팡 정규직 노동자는 고정으로 연장노동을 하고 수당을 받는다. 배송 관련 업무를 하는 쿠팡 정규직의 노동시간은 야간노동인 1웨이브(Wave)와 주간노동인 2웨이브로 구분되는데, 용만씨의 직무인 CDR(쿠드라이버)의 경우 야간조는 하루 9시간, 주간조는 하루 10시간 일한다. 여기에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에겐 고정야간수당이 더해진다.
쿠팡과 쿠팡 자회사인 쿠팡CLS 내 배송 관련 직군에는 ‘쿠팡친구’(쿠친)라고 불리며 주로 배송하는 CPF와 간선차량 운전을 하는 CDR, 차량 출입 관리나 캠프 정리 등 배송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플렉스어시스턴트(FA), 지게차 등을 운행하는 쿠지게(FO) 등이 있다. 이 가운데 CPF만 유일하게 직무수당이 있고 레벨에 따른 기본급 인상이 있다. 나머지 직군은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기본급이 같다. 그 기본급은 법정 최저임금에 맞춰 지급된다.
기본급은 야간이든 주간이든 같다. 낮에 일하는 CDR 직군 5년차 정규직 노동자 ㄱ씨의 2025년 10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본급과 식대 모두 용만씨와 같았다. 차이는 수당에서 발생했다. ㄱ씨는 야간수당 없이 고정연장수당만 78만원이 있어 실수령액은 약 260만원이다. 일반적으로 밤새워 근무하는 것이 주간에 견줘 20만~30만원 정도 더 많이 벌 수 있다. 기본급과 식대, 수당 외에 회사로부터 받는 건 명절 때 나오는 쿠팡캐시 10만원이 전부다.

쿠팡의 배송 관련 정규직 직원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다. ‘쿠팡친구’라고 불리는 쿠팡의 배송 담당 정규직 직원은 레벨에 따라 기본급을 올릴 수 있지만, 휴게시간도 지키고 연차도 소진하면서 레벨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럼 레벨이 오르면 기본급이 높아지는 CPF 직군은 처우가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정규직 배송 노동자인 ‘쿠친’은 퀵플렉서와 달리 휴게시간이 보장됐지만, 애초에 물량 자체가 쉴 수 없을 만큼 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7년차 쿠친으로 일하는 정진욱(가명)씨는 “휴게시간을 철저히 지켜 쉬고 신호도 지키는 방식으로 일해봤는데, 회사에서 원하는 물량을 맞출 수가 없었다”며 “(캠프 내 동료 쿠친들이) 물량을 가져가는 일이 많아지다보니 눈총 받게 되고 인사고과 점수도 낮게 받게 됐다”고 말했다. 10년차 쿠친 박진현(가명)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1시간 휴게시간이 있지만 이걸 쉬면 절대 물량 소화를 못해요.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1시간을 무조건 쉬었더니 늘 (저녁) 7시 넘어 배송을 마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추가로 일하게 되는 시간이 딱 1시간이에요. 회사가 아는 거죠. 물량을 얼마나 배정해야 우리한테 맥스(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레벨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진현씨는 “만약 물량이나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무조건 연차를 적게 쓴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연차를 많이 쓰면 평가가 낮게 나온다는 건 쿠팡 안에서 공공연한 사실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쿠팡은 노동자를 평가하는 명확한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 쿠팡은 어떤 기준으로 CPF 직군의 레벨을 평가하는지, 연차 사용이 많을수록 낮은 평가를 받는지 등에 관한 한겨레21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애초 정규직 배송 직원만 뽑았던 쿠팡 주식회사는 2022년 자회사인 쿠팡CLS를 통해 택배사업에 재진출하면서 본사에 있던 배송 관련 인력을 모두 쿠팡CLS로 보내려 했다. 직원들의 동의를 받고 전환배치를 했는데, 자회사로 가길 거부하고 본사에 남은 인원도 있었다. 그러자 쿠팡은 이들을 쿠팡CLS에 소속된 노동자들과 한 사무실을 쓰면서 함께 일하게 했다. 불법파견 소지가 큰 조처다.
진욱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일단 사무실이 같아요. 하나의 건물에 방만 다르거든요. 처음에는 저희(본사 직원)랑 CLS 직원을 구분 없이 명단을 만들어서 배송을 했어요. 그러다가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니까 CLS 관리자가 옆방으로 와서 본사 관리자에게 ‘이것 좀 처리해달라’는 식으로 직접 지시만 안 할 뿐 돌려서 하더라고요. 그럼 본사 관리자가 저희에게 전달하죠.”
한겨레21이 확보한 당시 캠프 자료에서도 진욱씨의 증언이 사실로 확인된다. 쿠팡CLS 직원과 본사 직원이 구분 없이 나열된 명단에 ‘APD’(1인당 배송 가구수)와 회수율 등이 적혀 있었다. 또 A4용지에 두 회사의 직원 이름이 뒤섞인 채 각자 맡아야 할 라우트(배송구역)가 표시된 문서도 있었다. 본사 직원이 쿠팡CLS 직원과 뒤섞여 일했다는 증거다. 진욱씨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후에 일하는 형식만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쿠팡CLS에서 여전히 일괄적으로 배송 일정을 짜되, 본사 직원이 맡을 일정은 이름을 쓰지 않고 ‘서포트’라고만 표시한 것이다. 이 일정을 쿠팡CLS 캠프 관리자가 본사 관리자에게 전달하면 본사 관리자가 다시 진욱씨에게 지시했다.
이런 상황에도 본사 인원들이 쿠팡CLS로 가지 않고 버티자 쿠팡은 본사 인원들에게 점점 어려운 일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힘든 노선인지 저희(본사 직원)도 다 알거든요. 그런 노선을 주로 저희한테 배정하는 거예요. 남들이 기피하고 힘들어하는 일을 던지고요. 이런 게 계속 반복되다보니 회사에서 (동의하지 않고 남은 것에 대한) 눈칫밥을 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25년 12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에게 질의하는 과정에서 “독립된 회사라면 관리자가 배송 노선을 각자 짜야 하는데 (쿠팡)CLS에 먼저 노선을 배정해주고 나머지를 쿠팡 본사에 배정한다”며 “한 공간에서 옷만 다르고 정수기나 화장실, 휴게실 등을 같이 쓴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본사 직원과 자회사인 CLS 직원이 현장에서 뒤섞여 일한다면 명백한 불법파견”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관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불법파견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답하기도 했다.
쿠팡도 이런 상황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겨레21은 한 지역 캠프에서 매일 올라오는 안전 수칙 관련 공지사항에 ‘CLS 인원과 업무 혼재 금지’라는 지시 사항이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쿠팡CLS 관계자는 한겨레21에 “CLS 소속 직원이 아닌 인원에게 업무 지시하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관련해 노동청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욱씨는 다른 말을 했다. “CLS에서 본사 CPF가 몇 명 출근하는지 다 알고 저희까지 넣어서 근무표를 짜요. 그걸 본사 관리자에게 넘기고 본사 관리자가 저희한테 지시해요. 직접 지시하면 빼도 박도 못한다는 걸 잘 아니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거죠.”
“쿠팡은 늘 이런 식으로 대응했어요. 사실 쿠팡이 정말 폐쇄적이에요. 어떤 캠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게 회사 시스템의 문제여도 그 캠프에서만 해결하고 덮어버려요. 캠프 안에서도 쉬쉬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졌어요.” 용만씨가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엔 이미 너무나 많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더구나 2025년 노동자들이 연이어 쓰러지고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가장 분노했던 건 쿠팡의 태도였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국외에 머물며 국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았고, 나머지 임원들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쿠팡을 지탱해온 그 기조가 이제 쿠팡을 옥죄고 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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