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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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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로 동생 먼저 떠나보낸 누나의 편지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의 기록①—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 인터뷰
등록 2026-01-08 21:50 수정 2026-01-13 22:38
2024년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세상을 떠난 (왼쪽부터) 김덕원씨, 정선숙씨, 김강헌씨가 30여 년 전 타이를 여행할 당시의 모습. 김유진 제공

2024년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세상을 떠난 (왼쪽부터) 김덕원씨, 정선숙씨, 김강헌씨가 30여 년 전 타이를 여행할 당시의 모습. 김유진 제공


동생은 생전 남한테 “비키세요” 한마디 못하는, 순하고 말 없는 성격이었어요. 10년 장기근속 기념으로 회사에서 여행을 보내주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었나봐요. 사는 데가 충남 천안이어서 본인이 혼자 갔으면 여기 올 일이 없었거든요. 부모님 편하게 모시고 가려고, 무안공항에서 가게 된 거죠.

 

1.

30년 전 동생이 초등학생 때, 엄마랑 아빠가 동생만 데리고 타이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제가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닐 땐데 저도 한창 사춘기였잖아요. 굉장히 화를 냈어요. 엄마는 동생만 예뻐하고, 왜 나는 안 데리고 가냐며. 동생만 갔다 와서 코끼리 탄 사진이 있으니 엄청 샘이 난 거죠. 그런데 이번에도 공교롭게 또 세 명만 가서 왜 그랬냐고, 원망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그날이 2024년의 마지막 주말이어서, 저는 아이들과 전남 여수로 여행을 가려고 일찍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무래도 부모님이 탄 비행기에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한번 탑승했는지 알아보라는 친척의 전화가 왔어요. 휴대전화를 켜니 공항에서 사고가 났다고 뜨더라고요. 그때가 사고 난 바로 직후여서 부랴부랴 알아보면서 공항으로 갔어요. 일단은 그냥 가자, 가면서 알아보자.

하늘이 너무 맑았어요. 구름도 별로 없고. 그러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 맑은 날에 왜. 비라도 와야지. 이렇게 맑은 날, 이 멀쩡한 공항에서.

 

2.

저는 전남 장흥에 사는데 제 아이가 넷이다보니, 광주에 사는 부모님이 아이들 육아를 도와주러 자주 오셨어요. 그러다가 육아뿐 아니라 일에도 점점 깊이 관여하셔서 나중엔 ‘2도5촌’으로 5일은 장흥 우리 집에 계시고, 주말에만 도시의 당신 집에서 사셨죠. 남편이 목장을 하면서 거기서 갓 짠 우유로 유제품을 만들어 카페도 하고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새벽에 목장에서 우유를 가지고 오는 일이나 판매 배송품을 싸서 차로 우체국에 가져가는 거, 그런 걸 부모님이 다 도와주셨어요. 저는 최근 한 8년을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는데, 천안 사는 남동생은 오히려 휴가 때 고향에 가도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셨던 거죠. 부모님이 저희 가정에 많이 계시다보니 동생한테 신경을 더 못 썼죠. 그래서 더 미안해요.

엄마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셨거든요. “엄마, 나 커피 한 잔만” 이렇게 말할 때마다 서로 웃었어요. 나는 가짜 바리스타지만, 엄마는 자격증도 있는 정통이라고. 그렇게 엄마 바리스타한테 커피를 매일 얻어먹었어요. 엄마는 “내가 커피를 이렇게 타고 있을지 몰랐다” 이러면서 내려주시고.

아빠는 진짜 ‘긍정맨’이셨어요. “아빠, 이거 이렇게 해볼까?” 그러면 “아, 좋아~” 억양 자체가 항상 너무 힘차고 “오케이~ 알겠슈~” 이렇게 항상 재밌고 유쾌하고. “이걸 팔아보면 어때?” 하면 “아이고 좋다!” 이런 리액션이 너무 좋아서 홀린 듯 같이 사업을 번창시켰어요. 아빠가 뒤에서 응원해주는 응원단장이었던 거죠.

사실 모르겠어요,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든 게 다 멈췄어요. 인생 자체가 멈췄어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냥 부모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진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마치 다섯 살 어린아이가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 버려진 듯한 그런 막막함과 암담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부모님 나이 드시면 내가 진짜 잘해야지, 부모님께 받은 만큼 편찮으시면 진짜 잘해야지’ 그랬는데.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의 어머니 정선숙씨가 즐겨 연주하던 첼로. 김유진 제공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의 어머니 정선숙씨가 즐겨 연주하던 첼로. 김유진 제공


 

3.

부모님은 음악을 엄청 좋아했어요. 아빠는 트럼펫을 부셨는데 경력은 한 30년? 그런데 실력은 30년 동안 똑같았어요. 좋아하기만 하셨네요. 교회에 다니시니까 찬송가 한 곡을 연습하셨는데, 꼭 삐빅 하고 잘못 부는 똑같은 구간이 있어요. 꼭 거기서 틀려요. 반면에 엄마는 음악적 소질이 많아서 첼로 연주를 잘하셨어요. 최근 몇 년 동안은 레슨도 많이 받아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엄청 자랑하셨어요.

그 첼로를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저는 첼로를 연주할 줄도 모르고, 악기 크기는 큰데. 엄마한테 갖고 가라고 하고 싶어요. 남동생 차도 똑같아요. 진짜 오래된 파란색 모닝, 원래 엄마가 타고 다니던 거. 그것을 팔지도, 타지도, 폐차도 못하고. 계속 볼 때마다 욕만 하고 있죠. 차라도 좀 좋은 거 몰고 다니지. 볼 때마다 화딱지가 나요. 동생 유품은 정리할 게 별로 없었어요. 옷도 없고 너무 뭐가 없어요. 없어가지고 진짜 속상해요. 동생 가방이 있는데 농협에서 준 거예요. 그 나이에 그런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 없거든요. 그걸 진짜로 메고 다녔어요. 동생이 그렇게 검소하게 아끼고 살다가 그마저도 저한테 남기고 갔어요. 본인 위해서 쓰고, 뭐라도 마음껏 하다 갔으면 덜 슬펐을 텐데. 뭐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고.

동생이 남기고 간 것들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동생의 인생이고, 동생 그 자체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이 돈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이것들로 내가 좋은 걸 사 먹고 좋은 걸 사고, 그럴 순 없고. 어떻게 해야 동생의 이름이 잘 남을지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어요.

 

2024년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하기 전, 타이 여행지에서 보내온 영상 속 김유진씨 가족의 모습. 김유진 제공

2024년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하기 전, 타이 여행지에서 보내온 영상 속 김유진씨 가족의 모습. 김유진 제공


4.

제가 유가족이 되고 보니 세월호·이태원 유가족들이 왜 그렇게 진상규명을 외치는지 알게 됐어요. 왜 우리가 갑자기 이별하게 됐는지, 그냥 이유라도 알고 싶은 거예요.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잖아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우리가 이런 이별을 해야 했는지를 사회가 알려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의 희생이 그냥 불운하고 억울한 죽음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해요. 사고 이유를 정확히 알고 사회를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어떤 배상·보상보다도, 우리 가족의 이름이 사회를 바꾸는 좋은 힘으로 기록되게 하면 좋겠다, 그것밖에 위로받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시는, 정말 다시는 우리 같은 아픔을 겪는 유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면 안 된다, 우리 가족을 제대로 기억하고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 남은 가족들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게 뭐냐면, 뭔가 유가족이 죄인인 것처럼 스스로 주홍글씨가 찍히는 거예요. 알 수 없는 죄책감도 있고 사람들의 시선도 굉장히 신경 쓰여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웃으면 안 될 것 같고, 뭘 하면 안 될 것 같고,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모든 행동이 위축되고 대인기피증 같은 게 생겨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하다가 몇 개월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빨간 립스틱 바르고 다녔어요. ‘좋은 일 있는 것도 아닌데 웃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게 전혀 아니니까요. 이 사고는 내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유가족인 것을 당당하게 세상에 이야기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어떻게 살지는 내가 결정하는 문제니까.

맨날 울고불고, 분노에 북받쳐서 사는 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가족의 모습이잖아요. 하지만 누가 내게 그런 모습을 원해도 거절해야겠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겠다. 내가 겪은 일이 분명히 불행이긴 한데 ‘내 삶을 불행한 상태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내 인생을 다시 행복하게 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그 둘 중 우리 가족은 후자를 선택하기를 바라실 것 같아요. 내 가족이 나에게 준 따뜻함과 사랑을 이야기해서,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려고 해요. 그래서 유가족으로서 사회 곳곳에 가서 이 사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당하게 호소하고, 떳떳하게 건강하게 살려고 해요.

그래도 하늘에 있는 우리 엄마가 보면 엄청 혼내실 것 같아요.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런 거 뭐 하러 맡았냐, 너희 애들이나 잘 보지 이게 뭐 하는 거냐. 이런다고 내가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닌데, 아이들 밥이랑 막내나 잘 챙기라고 엄청 혼날 것 같아요. 속 하나도 없네, 그러면서. 아빠는 할 수 있으면 해야지, 하시면서 오케이하실 것 같은데.

동생은, 그냥 미안해요. 살아생전 너무 못해줘서 미안하고, 동생이 모시고 간 거라 너무 미안하고. 서로 만나면 말 못하고 울 것 같아요. 그래도 말한다면 첫 번째 나오는 말은 ‘미안하다’, 두 번째 나오는 말은 ‘고맙다’, 세 번째 나오는 말은 ‘보고 싶어’ 그 세 마디밖에 안 나와요.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의 동생 김강헌씨가 생전에 입었던 군복. 김유진 제공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의 동생 김강헌씨가 생전에 입었던 군복. 김유진 제공


 

5.

이 참사는 단순히 불행한 사고가 아닌 인재였어요. 수많은 사소한 경고를 무시한 결과 벌어진 인재. 우리나라 항공 서비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그 공항의 화려함 뒤 정작 항공 안전 시스템은 완전히 부실 자체였죠. 저희도 이 참사를 통해 진실에 가까이 가려고 하다보니 알게 됐어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우리만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본인과 가족의 항공 안전을 위해서라도 심각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는 걸요. 다시는 우리 같은 슬픔을 겪는 유가족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정부에서 여태까지 한 안전 권고는 딱 하나예요. “둔덕에 있는 공항에 고경력자 기장, 조종사를 배치하라.” 고경력자 기장은 안 죽어요? 그런 현실이에요.

전국의 콘크리트 둔덕들이 개선되지 않고 아직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정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더 안전하게 공항을 이용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새 비행기 1년에 한 번도 안 타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모든 국민이 관심 갖고 같이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정나라·허정·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2025년 10월17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들이 유가족 김유진씨를 인터뷰하고 기록했습니다. ‘무안공항 참사 이후를 사는 사람들’을 한겨레21 누리집을 통해 1월부터 격주로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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