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서울 동작구 이촌동에 전라도 ‘깽깽이’들이 자주 가는 밥집이 있다. 밥집 이름부터 전라도의 한 지명을 따 지었다. 전라도 출신의 관료·국회의원·사업가 등이 주로 찾는 곳이라고 한다.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나도 딱 한 번 거기에 가봤다. 경기 과천 정부청사에 출입하고 있을 무렵인데, 일단의 중간 간부급 이상 공무원들이 우리 일행이었다. 즉석에서 가야금이 은은하게 연주되기도 했는데, 도대체 제대로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없었다. 이 집을 찾은 손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 방 저 방 드나들었다. “형님, 저쪽 건넌방에 ○○○가 와 있던디.” “아따, 그럼 가서 인사드려야제.” 그 방으로 건너가면 “형님, 이쪽은 ○○○입니다” “아, 그래요. 근디 아까 보니 저쪽 방에는 또 ○○○가 와 있던데…”가 되고, 또 그 방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서로 인사하기 바빠 밥 먹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날 저녁 이 음식점을 찾은 손님들은 예전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조차 다 같이 마치 일행이나 되는 것처럼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 밥집에 모인 사람들은 오직 ‘전라도’라는 이름 아래 그렇게 ‘형님, 동생’으로 뭉쳤다.
서울에 산 지 25년이 흘렀지만 13년 동안 전라도에서 살아서 그런지 내 억양에도 깽깽이 목소리가 여전히 섞여 있다. 취재원들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출신 지역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잘 모른 채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자주 있다. 국회의원·장관부터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 직업이지만,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늘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 말씨로 대화를 하다가도 슬금슬금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게 되는 때가 있다. 물론 전라도 출신을 만났을 때다. 상대방 목소리에서 슬금슬금 사투리가 튀어나오면 내 억양도 점차 사투리 모드로 바뀌고, 그래서 내가 전라도임이 분명해지면 상대방의 말씨는 이제 완연한 사투리로 변한다. 우리는 어느새 동질감을 느끼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그란디, 거시기, 거기는 어디요?” 전라도 어디냐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적 동지’가 되면 경계심은 풀리고,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는 진정한 인터뷰가 시작된다. 숨소리와 호흡까지 들리는 ‘살아 있는 인터뷰’를 위해 지역주의를 이용했다고 할까? 낯선 취재원과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저쪽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 나도 모르게 “아, 그렇게 돼부렀어요” 하고 사투리가 튀어나올 때도 있다.
경상도 지역에 기반을 둔 정권이 장기 집권하고 있을 당시 정부 부처 안팎에서 이런 이야기가 떠돈 적도 있다. 경상도 출신은 사무관 시절부터 일만 조용히 잘하고 있으면 윗사람이 끌어주고, 경상도 출신 국장이 물러나면 경상도 그룹 내부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다른 경상도 출신이 차례로 그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도 세월만 흐르면 국장이 되고 1급(실장)도 된다는 것이다. 반면 전라도 출신은 배정된 윗자리 수가 워낙 제한되다 보니 1급 같은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제법 똑똑한 사람이 윗자리에 오른 뒤 그 사람이 날아가고 나면 다시 특출난 전라도 출신이 그 자리까지 오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얘기다. 김대중씨가 대선에서 승리한 다음날, 내가 출입하던 과천 어느 정부 부처 내부에서는 사발통문이 돌았다. 전라도 출신 공무원들만 돌려본 쪽지인데, “전라도 사투리 사용을 자제하고, 튀는 행동 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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