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11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해협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 한 척이 항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미국은 발을 빼고 싶은 눈치다. 이스라엘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기세다. 이란은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과 전쟁 피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교전 당사자 간 엇갈린 계산 속에 2026년 3월19일로 20일째를 맞은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쉽게 마무리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전쟁이 끝나면 국제 정세가 확연히 달라지리라는 점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3월12일 자료를 내어 “이란 수도 테헤란을 중심으로 60만~100만 가구의 주민 약 32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2025년 기준 테헤란 인구는 870만여 명에 이른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폭격은 일상이 됐다. 평소보다 굉음이 클 때면 ‘누군가 중요한 인물이 암살됐다’고 직감한다. 이스라엘군은 3월17일 하루에만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 △골람레자 솔레이마니 바시즈민병대 사령관 △에스마일 하티브 정보보안부 장관 등 이란 지도부 주요 인사 3명을 표적살해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들 3명을 사살했다고 밝히면서 이란 국민의 ‘봉기’를 재차 촉구했다. 이란은 ‘피의 보복’을 예고했다.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친구들이 누군가의 집으로 모인다. 모두들 나눠 먹을 저녁거리와 후식을 챙겨 온다. 그렇게 다 같이 모여 식사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 남은 보석디자이너 나피세(30)는 3월18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변의 많은 친구처럼 나피세도 이란에서 이른바 ‘신정체제’가 끝나기를 원한다. 알리 하메네이가 숨졌을 때, 그는 잠시나마 체제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신문에 이렇게 말했다.

2026년 3월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친정부 집회에 참석한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오른쪽)이 지지자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3월17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졌다. REUTERS 연합뉴스
“아무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우리 모두 변화를 원하지만, 이런 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 1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선 건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왕조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 ‘신정체제’는 뿌리가 깊고 복잡하다. 언젠가 체제가 바뀌기 시작한다 해도,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전쟁은 아무런 변화도 불러오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 가지 전쟁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와 이란, 그리고 레바논이 전쟁터다. 이란 전쟁 발발과 함께 레바논의 무장 정치조직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보복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전역이 전쟁터가 됐다. 유엔난민기구는 북부 트리폴리 등지로 피란한 인구가 약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2025년 기준 레바논 인구는 약 590만 명이다. 레바논 보건당국은 3월2일 이스라엘이 공격을 시작한 이후 3월18일까지 여성과 어린이 193명을 포함해 모두 912명이 숨지고, 2432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목적은 명확하다. ‘다시는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게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이란의 위협’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란의 핵능력이다. 2025년 6월 ‘12일 전쟁’으로 이란의 핵능력은 사실상 초토화됐다. 그럼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의 명분으로 이란의 ‘핵위협’을 첫손에 꼽았다. 둘째, 이스라엘이 ‘존재론적 위협’이라 주장하는 이란의 탄도미사일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파상공세에도 이란은 탄도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셋째, 하마스(팔레스타인)·헤즈볼라(레바논)·후티반군(예멘)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중동 각국의 무장세력이다. 이스라엘은 이들에 대한 지원을 막기 위해 이란의 신정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여기서 전쟁을 멈출 수 없다.

2026년 3월16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주거단지에서 적신월사 요원들이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미국은 어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미국이 처한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4일 한국 등 5개국에 호르무즈해협 상선 호위 임무를 위해 군함을 파견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받는 많은 나라가 미국과 협력해 해협 개방과 안전 유지를 위해 군함을 보낼 것”이라며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이 선박을 보내 해협 통과가 더는 위험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인 3월15일에도 이른바 ‘호르무즈 호위 연합’ 구성을 재차 주장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호르무즈해협을 보호하기 위한 다국적 해상 연합 구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약 7개국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 이후 이란은 세계 원유·천연가스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봉쇄했다. 해협 일대에 정박 중이거나 해협 통과를 시도했던 선박 16척이 이란군의 공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함을 투입해 유조선과 상선을 보호하겠다고 말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전쟁 중 좁은 바닷길에 들어서는 건 불을 지고 화약고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탓이다. ‘호위 연합’ 구성은 동맹을 상대로 한 ‘위험의 외주화’다.
한국의 헌법 제5조 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60조 2항은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호르무즈 호위를 위한 파병은 위헌이란 뜻이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1953년)은 어떤가? 조약 제1조는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역 위협 또는 행사를 삼가도록 했다. 제2조는 “(조약 체결)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침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 상호 협의 아래 지원하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였던 조 켄트 백악관 대테러센터국장은 3월17일 전격 사임하면서 “이란은 미국에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조약 제3조는 군사행동의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못박고,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절차)”에 따라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도록 했다. 호르무즈 파병은 조약에 반한다.

2026년 3월16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공동묘지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공습 피해자 유가족들이 애통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응답이 없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3월16일 “더 큰 전쟁에 끌려들어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은 (이란 침공과 관련해) 우리와 사전에 아무런 협의를 하지 않았다. 나토와 아무 관련이 없고, 나토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같은 날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아무도 이 전쟁에 적극 참여하는 걸 원치 않는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유럽에 득이 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 요청을 나토와 유럽 차원에서 집단거부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중국 쪽은 “적대행위부터 멈추라”라고 훈수를 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호르무즈 봉쇄를 자초했음을 꼬집은 셈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했다. 그는 3월16일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케네디센터’ 이사회 겸 오찬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호르무즈해협과 관련해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지원을 요청한 것은 일종의 테스트,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리 오랜 세월 보호해줬는데, 저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에는 아무도 필요 없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다. 미군이 제일 세다.”
이란 쪽은 ‘선별적 해협 통과’로 응수하고 있다. 3월15일 위치정보를 송출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켠 파키스탄의 선적 유조선 카라치호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이란 쪽은 미국과 동맹국이 아닌 국가의 선박과, 원유 가격을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는 선박에 대해선 통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동맹은 차갑게 등을 돌리고, 이란은 ‘페트로달러’(원유 거래·결제에 달러가 중심이 되는 구조)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중동 전문가인 제임스 도시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 선임연구원은 “호르무즈 통제를 무기로 이란이 운전석에 앉은 꼴”이라고 짚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3월18일 알자지라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3월18일 이라크 서부에서 공중급유기 추락 사고로 숨진 미군 6명의 유해 송환식이 열린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를 방문한 뒤 백악관으로 복귀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 우리에게 강요된 전쟁이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고, 전쟁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미국이 져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은 이란 옆에 있는 바닷길이다. 우리의 적들이 그 길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많은 선박과 국가가 안전을 우려해 해협 통과를 주저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안전한 통과를 위해 접촉해왔다. 이란은 그들에게 안전한 통과를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전쟁 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항구적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새로운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협 양안 국가들이 당사국으로서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 안전한 해협 통과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미국은 전쟁의 목적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매일 다른 소리를 한다. 정권 교체라고 했다가, 이란을 분할하는 것이라고 했다가, 체제 붕괴라고 했다가, 무조건적 항복을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건 오판에 따른 것이다. 그 때문에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다. 항복을 주장하던 자들이 이젠 외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이 선택해 시작한 전쟁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적대행위를 끝내야 한다. 이란은 휴전을 원치 않는다. 이런 상황이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어서다. 완전하고 항구적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 이란뿐 아니라 중동의 모든 국가에서 항구적 평화를 원한다.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고, 이란이 입은 전쟁 피해를 배상한다면 협상에 임할 것이다.”
무모한 전쟁이 불을 뿜는다. 발목 잡힌 미국이 헛심을 쓰고 있다. 동맹도, 패권도 위태롭다. 누굴 탓할까? 자초한 일이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랬듯, 옛 페르시아 땅에서 ‘미국의 세기’도 저무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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