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혼잡한 도로인 101번 도로변에 이상한 광고판 하나가 들어섰다. 광고 모델이나 회사 로고는커녕 ‘제품 사진’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 광고판에는 단 한 줄 수학 문제만이 적혀 있었다. ‘오일러 수(e)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열자리 소수.com.’
악마, 구글 그리고 중국
오일러 수는 자연로그의 밑수로서,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길고 복잡한 숫자(2.718281828459…)다. 이 숫자를 열자리 단위로 나누어 내려가면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소수(1과 자신 이외의 정수로는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정수)를 찾으라는 문제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이 문제를 열심히 풀던 사람들이 인터넷 브라우저에 정답을 입력한다(정답은 7427466391.com이었다!). 그러면 화면에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오’라는 문장과 함께 새로운 퀴즈 문제가 나온다. 이렇게 주어진 문제를 모두 풀고 나면 결국 도달하게 되는 곳은 ‘구글의 직원 채용 사이트’. 인터넷 기업 구글이 이런 방식으로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구글 검색 엔진은 전세계적으로 매일 6500만 명이 접속해 2억5천만 건 이상 검색하는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이 되었다. 1998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을 설립해 ‘미국 비즈니스 역사상 최단기간 급성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구글은 현재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구글이 이처럼 매력적인 기업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창조적인 혁신을 이끌어내는 자유로운 기업 분위기, 참신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새로운 인터넷 검색 상품들, 그리고 사용자 중심의 검색 엔진 서비스 등이 한몫을 했다.
구글 검색 엔진엔 광고 배너가 없다. 대신 특정 검색어의 결과 화면 자리를 팔아서 수익을 올린다. 검색어가 포함된 웹사이트 중에 페이지 내용과 하이퍼링크(연결 고리) 수를 평가해 순서를 매겨 결과를 보여준다. 기업이 돈을 낸다고 해서 먼저 검색되거나 눈에 더 잘 띄는 곳에 올려주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evil’로 불리는 미국에서 구글의 모토는 ‘Don’t be evil’.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나쁜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 구글의 창업 정신인 것이다.
이런 구글이 최근 중국판 구글 사이트를 중국 내에서 운영하는 대가로 중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특정 내용들에 대한 검색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민주주의, 자유, 톈안먼 사태, 대만 독립, 달라이 라마, 파룬궁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중국판 구글에서는 검색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중국 정부와 합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판 구글에서 ‘톈안먼 광장’을 검색하면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군대가 탱크를 몰고 시위를 진압하는 사진 대신 톈안먼을 배경으로 관광객이 찍은 사진이 나온다. ‘달라이 라마’를 입력하면 티베트 독립에 대한 언급 대신 ‘달라이 라마는 조국을 분열시키는 행동을 중단하라’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주장이 나온다.
처음 열자리 소수 찾기보다 중요한 일
구글이 1억 명의 네티즌과 12억 명의 잠재적 수요가 버티고 있는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중국 인터넷 이용자의 자유와 인권을 훼손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인터넷이란 원래 국경과 종교,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자유롭게 교류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번 구글의 결정은 자신들의 창업정신을 뒤흔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국가도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교류하는 것을 막을 순 없다. 아마 중국도 이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구글은 오늘의 이익에 눈멀지 않고 ‘중국 정부의 요구와 네티즌들의 자유’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 그것이 오일러 수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열자리 소수를 찾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숙제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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