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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손학규 사령관님, 스티커 붙이세요

등록 2005-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빨랑 스티커 붙여!” 스타워즈 7탄 ‘칼잡이의 습격’ 개봉으로 위기에 빠진 경기도 사령관이 처음 내뱉은 한마디는 ‘스티커’가 아니었을까. 습격의 주인공 검찰은 아파트 인허가 과정에서 경기도 공무원들이 꿀꺽한 뇌물 중 일부가 사령관에게도 흘러들어 갔다는 단서를 찾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10·26을 승리로 이끈 ‘유신공주’와 청계천 대박으로 구름 위를 날고 있는 ‘건설왕자’와 벌이던 3파전은 어느새 사령관을 뺀 2파전으로 좁혀지고 있는데, 아뿔싸! 뇌물 추문이라니. “경기도를 얻은 자 천하를 얻으리라” 외치던 위풍당당 사령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령관은 지난해 ‘스타워즈- 경기도의 역습’이라는 제목의 홍보 책자에서(2만 부나 찍었다!) 경기도를 침략한 외계인들을 물리치는 강호 초절정의 무공을 뽐냈다. 사령관은 그때 “도지사가 직접 외계인을 무찌르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딴지를 받아들여 ‘도지사’라는 글씨 위에 ‘사령관’이라는 스티커를 떡칠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듯, 스티커로 진실을 가릴 수는 없을 터. 참고로, 스타워즈 1탄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유신공주님의 요가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으신 공주님께서는 4천만이 밥상머리에 앉은 화목한 저녁 시간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드셨다. 날렵한 구호와 함께 몸을 날린 공주님께서는 보란 듯이 물구나무에 성공하셨다. 뭔가 불안한 듯 찡그린, ‘뻘쭘하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그 표정에서 저런 대담한 동작이 나오다니. 황당과 당황 사이를 부유하던 4천만은 썰렁함에 못 이겨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공주님 브라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공주님은 데모에도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하셨다. 서강대에 구전되는 전설 한 토막. 서슬 퍼런 폭력이 난무하던 70년대 초 대학가. 서강대생들의 투쟁 목표는 경찰 저지선을 뚫고 신촌 로터리까지 진출해보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학생들은 공주님을 찾아뵙고 이렇게 말했다. “공주님, 저희가 나갈 때 열 발짝만 앞서서 걸어주세요.” 단기필마 공주님의 과감한 행진 앞에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던 전경들의 스크럼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졌다. 서강대생들은 신촌 로터리를 돌파할 수 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며칠 동안 공주님은 학교에 나오시지 못하셨다.

가끔 누가 더 ‘쎈’ 놈일까 헷갈리는 일들이 있다. 신문지 1장 정도 넓이(0.2평)의 땅을 2300만원에 사들여 8억5천만원에 팔아치운 부동산 업자 김아무개(43)씨. 그는 대한민국 알박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뽐내 7억8천만원의 ‘부당 이득’을 취했다. 그는 중간에 바지사장을 고용해 땅을 한 번 더 사고 파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결국 꼬리가 잡혀 구속을 면치 못했다. 그 땅을 사들여 쇼핑몰을 짓는 개발업자는 시가에 견줘 턱없이 비싼 그 땅을 ‘가뿐히’ 사들였다. 그까이꺼 8억5천, 건물을 완성하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에 견주면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기량만 가지고는 메울 수 없는 레벨이라는 게 있다. 레벨 무시하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큰코다친다. 물론, 지나친 알박기도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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