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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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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없는 뜰을 위하여

등록 2005-07-08 00:00 수정 2020-05-03 04:24

<그리스로마신화> 번역오류 지적한 이재호 교수의 <문화의 오역>에 대한 답글…내 뜰에서 잡초를 뽑아준 건 고맙지만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은 도움 안돼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이 글은 이윤기 그리스 로마신화의 번역 오류를 지적한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최근 저서 <문화의 오역>에 대한 답글 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편집자

경기도 양평 읍내에 갔더니, ‘현대문학’이라고 쓰인 대형 간판이 눈에 띄었다. 대형 서점이 들어선 모양이구나,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인구도 많지 않은 읍내 서점 간판치고는 너무 컸다. 그런데 다시 보아도 ‘현대문학’이었다. 확인해보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아뿔싸, ‘현대문짝’이었다. 양평군에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서고 있을 당시의 일, 내가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의 기획자문위원 노릇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잡지 제호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아서 ‘현대문짝’이 ‘현대문학’으로 보였을 것이다. 마음의 장난에 눈이 속은 것이다.

그렇다, 오독과 오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고장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에 초대받았다. 현장에 가서 행사 순서지를 보니, 시장이 특별출연하여 ‘칼립 지브란’의 시 몇 구절을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다. 어, ‘칼립 지브란’이 아니고 ‘칼릴 지브란’인데, 싶었다. 사회자에게 미리 지적해줄까 하다가 꾹 참았다. 내 마음이 ‘칼릴 지브란’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 내가 감동적으로 읽은 책 <예언자>의 작가 이름이 실제로는 ‘칼립 지브란’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인인 사회자도 ‘칼립 지브란’으로 읽었다. 시장도 그렇게 낭독했다. 귀가하는 즉시 살며시 확인해보았다. 내 기억이 옳았다. 행사 진행자 한 사람의 잘못된 확신이 ‘칼립 지브란’ 사건을 일으켰을 것이려니 여겼다.

잘못된 확신이 오독(誤讀)과 오역(誤譯)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문화의 힘 가운데 상당 부분은 번역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소설가이지만, 소설 쓰는 행위조차도 문자 문화를 향한 현상의 ‘번역 행위’로 여기기까지 한다. 번역되지 않으면 문화는 확산되지 못한다. 신약성서는 헬라어(고전 그리스어)로 쓰인 책이고, 불경의 대부분은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책이다. 헬라어, 팔리어는 목숨 끊어진 지 오래됐지만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들은 거의 매주 우리말로 번역된 ‘주기도문’을 외우고 불교도들은 불경을 봉송한다. 번역의 힘이다.

나는 지금도, 수은 기압계를 발명한 이탈리아 물리학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토리첼리’라는 이름보다는 ‘돌젤리’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전쟁 직후,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읽은, 중학생 형님의 교과서에는 ‘토리첼리’가 ‘돌젤리’로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일본식 발음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했던 시절의 일이다.

1960년대로 들어오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당시 일본어와 영어를 해독할 수 있었던 나는 미국과 유럽의 많은 책들이 일본어를 통해 중역되고 있다는 것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원서의 언어가 우리말로 바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나름의 가늠으로 이 시절의 번역을 ‘1세대’라고 부른다. 일본어 세대의 퇴역과 함께 일본어판 중역이 사라지고 영어판 중역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영어판 중역이 현저히 이루어지던 이 시절의 번역을 나는 ‘2세대’라고 부른다. ‘세대’는 번역자의 연령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책과 일본어책을 주요 텍스트로 쓰고 있었으니, 나의 번역은 약 1.5세대에 속할 것 같다. 나는 원전이 불어·독어·이탈리아어로 쓰인 책은 물론 조금 외진 나라의 언어, 가령 그리스어·라틴어·체코어, 심지어는 유고슬라비아어로 쓰인 책까지도 영어판 텍스트를 통해 번역했다. 변명 삼아 쓰거니와, 불가피했다. 영어나 일본어로 읽어보면 밤하늘의 별 같은 작품이 수두룩했지만 나에게는 그리스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체코어, 유고슬라비아어 원전을 번역할 능력이 없었다. 그 시절의 한 풍속도였다. 그래서 생각할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오독과 오역의 혐의에서 나는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철학자 강유원 박사에게 고마운 이유

대학의 어문학과들이 번역 인력을 꽤 풍부하게 배출하면서, 혹은 유럽 여러 나라로 떠났던 유학생들이 속속 귀국하면서, 영어의 번역 시장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였던 것 같다. 출판사의 편집주간으로 일한 내 경험에 비춰 단언하건대, 우리나라의 진정한 번역문학은 그때 시작된 것 같다. 나는, 편의상, 영어를 ‘베이식’으로 장착하고 유럽 언어를 ‘옵션’으로 무장한 이들의 번역을 ‘3세대’라고 부른다. 그들이 전면으로 나서고, 일본어나 영어를 거치지 않고 유럽 여러 언어에서 우리말로 바로 번역되는 길을 나는 ‘직항로’라고 부른다. 얼마나 근사한 이름인가?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언감생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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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나 고대 그리스 비극 역시 번역문학 변천사와 비슷한 길을 걸으면서 우리나라 독서 시장으로 들어왔다. 신화에 등장하는 고유명사가 일본어식, 영어식, 그리스어, 라틴어로 뒤엉켜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직항로’가 간단하게 해결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 독서 시장에는 ‘3세대’ 번역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된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 라틴어 원전에서 번역된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작품을 영어판으로 중역한 경력이 있지만 이 새로운 현상을 조금도 질투하지 않는다. 문화가 직항로를 통해 날아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현상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눈 밝은 사람들이 1980·90년대 번역, 혹은 당대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번역서가 상당히 많은 나 같은 사람들을 아연 긴장시키는 현상이기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은 내가 영어판을 중역한 책이지 이탈리아어를 직접 번역한 책이 아니다. 초판 출간 14년 뒤인 2000년, 무려 60쪽에 달하는 원고 봉투를 받았다. 철학을 전공한 한 학자의,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제목이 달린 원고였다. 그 학자는 철학개론 시간에 학생들에게 <장미의 이름>을 바르게 읽어주면서 이 소설이 지닌 철학적 의미를 가르쳤던 모양인데, 바로 그때의 메모를 내게 보내준 것이다. 오독하고 오역한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 이 원고는 무려 300여 군데의 부적절한 번역, 빠져 있는 부분과 삭제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고 있었다. 그의 지적은 정확하고도 친절했다. 나는 철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에코가 소개한 해박한 중세학 및 철학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에 나오는 무수한 개념을 철학사에서 찾아내는 일이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그 학자의 지적을 검토하고, 260군데를 바르게 손보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고, 그의 지적을 새 책에 반영해도 좋다는 양해를 얻었다. 정확한 지식과 예리한 눈을 겸비한 분이 감시해주고 있는 것은 역자로서는 아픈 일이지만 우리 번역 문화에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었다. 아, 이렇게 가야 하는구나 싶었다. 철학자 강유원 박사께 나는 아직까지도 고마워한다.

신화번역과 서술방법에 대해선 의견 달라

번역 및 저술의 오류를 비판함으로써 번역자 및 저술가들을 매우 아프게 하는 책이 출간됐는데, 신화 번역이나 저술도 당연히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모양이다. 저자는 영어영문학회에서 내가 쓴 (번역한 것이 아닌) <그리스로마 신화>를 강하게 비판하던 분, 오독과 오역을 질타하고 그리스 신화 ‘왜곡’을 비난하던 분이란다. 그분의 지적에 뼈아픈 데가 없지 않았다. 몇 가지 오독과 오역의 지적에는 옷깃을 여미기도 했다. 그릇된 확신이 오독과 오역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번역사를 다양하게 경험한 나로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싶기도 했다. 꼼꼼하게 교열·교정해준 대목에서는 그분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기도 했다. 명백한 오류는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신화 번역과 서술 방법에 대해서 몇줄 써두고 싶다. 신화 해석에 대한 그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던 신화에 대해 ‘창’을 ‘도끼’라고 썼다고 해서 ‘문화를 오역한 자’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싶었다. 아테나가 미노스에게 바친 선남선녀의 수가 원래는 14명인데, 그걸 12명이라고 했다고 해서 ‘거의 공해 수준’이라는 비방을 당해야 옳은가 싶었다. 신화는 역사가 아닌데도, 포세이돈을 제우스의 아우라고 했다고 해서 모멸의 눈길을 보내어도 좋은가 싶었다. 신화의 계보나 족보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신화와 관련해서 내가 쓴 책에 신들의 계보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은 아닌 것이다. 제우스는 나중에 태어났지만 형들이 아버지 크로노스의 뱃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먼저 자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형이니 아우니 따지지 않고 ‘형제’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안티고네를 오이디푸스의 딸이라고 할 것인가? 누이라고 할 것인가? 호루스를 이시스의 아들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지아비라고 해야 할 것인가? 번역서도 아닌 저서에서, 2천년 전에 유럽에서 쓰인 책과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문화를 오역한 자가 되는 것인가, 싶었다. ‘다른 설명에 따르면’(According to other), ‘다른 전승에 따르면’(According to another tradition)은 신화 사전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신화는 생명체 같은 것이어서 이쪽으로 구부러지기도 하고 저쪽으로 휘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꿈과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이라면 신화는 그쪽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우화작가 라퐁텐은 그 방면의 고수였던 것 같다.

트로이전쟁 출전을 기피하지 않겠다

‘잡초 없는 뜰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없으면 좋겠지만 뜰을 가꾸는 자에게 잡초는 숙명이다. 문화의 번역자들에게는 오독과 오역 또한 숙명이다. 내 뜰로 들어와 잡초를 뽑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은 문화 번역 현장을 전쟁터로 만들 뿐, 도움 되는 바가 적다. 나의 작업을 두고, ‘일년에 열한권의 책을 냈다면 거의 한달에 한권씩 썼다는 말인데, 정상적인 번역으로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헤라클레스적 작업이다. 바로 이것이 자랑이 아니라 그의 아킬레스 건이다’라고도 쓰고 있다. 나는 소설책도 내고 산문집도 내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나의 독자들은 ‘비정상적인 번역’만 읽었다는 것인지? ‘그의 작업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적절한 지적 앞에서는 무지하게 비장해진다. 아킬레스는 참전하면 죽게 된다는 신탁을 받고 트로이전쟁에 출전하는 대신 여장을 한 채 뤼코메데스 왕실에 숨어 있었다. 나도 나의 ‘아킬레스건’ 때문에 죽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나는 트로이전쟁 출전을 기피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숨어 있을 뤼코메데스 왕실도 없다. 아킬레스가 죽지 않았다면 그리스 연합군은 승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군인의 숙명이요, 문화 번역자들의 숙명이다. 한층 더 비장해지는 기미가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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