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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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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에게 손 내밀기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옆사람에게 생명을 맡기면서도 배려와 존중 없는 노동자들…각박한 요즘 세태를 꼭 빼닮은 현장에서 ‘관계’를 생각하다

▣ 황하일 철도노동자

운행을 마친 전동차가 차고로 들어온다. 오늘도 일상처럼 전동차의 지붕으로 올라간다. 2만5천 볼트 전차선 전원을 전동차에 전달하는 집전장치인 ‘판타그라프’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전동차의 지붕에 올라가면 고압 전차선이 대략 사람의 목 높이에 걸려 있다. 전동차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차선을 피해 왼쪽 오른쪽으로 건너다니며 집전장치를 살피다 보면 간혹 전차선이 목이나 신체 부위에 접촉되는 일이 있다. 대개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매로 목을 쓰윽 문지르고 말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회사의 쥐어짜기와 노동자의 초과노동

몇 해 전에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한 분이 열차 지붕으로 올라가 전차선에 접촉되어 사망한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던 기억 탓인지,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에 내 신체와 접촉된 이 전차선의 전원이 차단된 상태가 아니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때문에 실제 작업에서는 이중 삼중의 작업 전 안전조처가 취해진다. 우선 ‘단로기’라 부르는 전차선 전원차단기는 자격을 부여받은 지정된 사람만이 취급할 수 있으며, 이와 별도로 전기를 땅으로 흘려보내는 접지도구를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또 전동차의 지붕으로 통하는 문과 단로기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작업자가 안전하게 일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 전원을 다시 투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반드시 지켜야 할 작업의 프로세스이고 작업자 간의 약속이다. 만약에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점의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작업을 하던 철도노동자가 전차선에 접촉된 사례도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 다 비슷하겠지만 특히 철도는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치명적인 사상사고가 될 위험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최근 10여 년 동안 한 달에 2명꼴로 철도노동자들이 죽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터인가. 우리나라에 한 달에 2명씩 죽어나가는 직장이 과연 몇 군데나 될까. 게다가 그렇게 비명에 간 철도노동자의 상당수가 잘못된 철도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예고된 재앙’이었던 것이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예를 들어 철도의 작업규정에는 2인 이상이 철로를 순회하도록 되어 있다. 최소한 한 사람은 달리는 열차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하나 이는 그저 공문구일 뿐이다. 이른바 구조조정 차원의 무리한 인력감축으로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1인 단독 순회가 강행되고, 작업 중 달리는 열차에 치어 사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요즘에는 철도현장 곳곳에서 휴식을 반납한 채 경쟁적으로 ‘자발적 초과노동’을 하다가 과로로 쓰러지는 직원들이 늘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렇게까지 벌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무엇보다도 인력은 줄이고 열차 운행은 늘리는 철도공사의 쥐어짜기를 바로잡지 않는 한 또다시 예고된 재앙이 반복될 터이니 안타깝기만 하다.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죽거나 다치지 않고 건강한 노동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도 없을 것이다. 누가 그런다. “그렇게 위험한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니 동료들 간의 관계가 끈끈하겠네요?”

그렇지가 않다. 현장은 각박한 요즘 세태를 빼닮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위험수당 4만원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동료들이라는 소중한 사실을 잊고 지낸다. 저마다 제 잘난 덕에 기차가 굴러가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러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는 “아, 이런 식으로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나”하는 대책 없는 낭패감에 맥이 빠진다.

철도노동자들만 이런가. 철도노동자의 안전이 곧 국민의 안전이거늘, 사람이 없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은 안 된다며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성난 시민들은 전동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기관사나 차장의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친다. ‘나도 죽지 못해 산다, 이눔아’ 하는 심사로 그러겠지만 이건 아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사회란 거대한 ‘관계의 그물망’으로 짜여 있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총총히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들의 행복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가령 우리가 시장에서 어떤 먹을거리가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판별하는 데 상인들의 양심을 뛰어넘을 수 없다.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등에 맞춰 정지하고, 중앙선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중요한 약속에 대해서 아무도 상대방 운전자의 판단을 제어할 수 없다. 요즘 정보기술(IT)이다 지식산업이다 해서 난리지만,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없다면 세상은 유지될 수 없다. 뻔한 풀 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다.

안기 쑥스러우면 손이라도

어찌 살다보니 세상이 나에게서 배려와 존중의 심성을 빼앗아간 것일 테지만, 세상 탓은 너무 멀고 망가져가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 가깝다. 콩 심은 데서 팥이 나올 수 없는 법. 남들이 남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생각을 바꾸어 다만 1년에 몇 번이라도 자신과 가까운 관계의 그물망부터 다시 짜보는 행복한 상상도 건강에 이로울 듯싶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청년이 시작해 최근 국내외에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안아주기’(Free Hug)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그건 좀 쑥스럽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먹한 주민과 인사하기? 우선은 나를 지켜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끔 한 번씩이라도 손을 따뜻하게 잡아보는 일부터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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