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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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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 안불러요

등록 2007-02-09 00:00 수정 2020-05-03 04:24

세상이 바뀌어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들 때리는 게 유행이 됐나…그래도 주눅들 수는 없는 일, 사회를 위한 작은 실천부터 찾아볼까

▣ 황하일 철도노동자

처음 노동운동을 알게 되었을 때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이 사회의 주인은 노동자다.” “노동자가 일손을 놓으면 세상이 멈춘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주장하기만 해도 언제나 정당했다. 그때는 그랬다.

한데, 요즈음 노동운동, 노동조합은 완전 동네북이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먹고살 만한 사람, 가방끈이 꽤나 길어 보이는 사람, 대한민국의 여론을 자처하는 조중동씨, 옛날에 민주화운동 좀 했다는 출세한 사람, 어제의 동지처럼 보였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뭐나 뭐나’ 밥을 먹듯이 훈계를 한다. 오죽하면 민주노총 위원장이 “요즘 민주노총 때리기가 유행처럼 되었다”고 했을까.

음료수기 교체에도 목을 걸어야…

이들이 주로 공격하는 대상은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들이다. ‘배부른 노동자’라는 거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몇십 배, 몇백 배 더 배가 부른 사람들이라는 잘 알려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전체 자본가의 이익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전체 노동자의 소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더더욱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배가 고픈 노동자들’에게 뭐 하나 해주는 것도 없다. 해주기는커녕 더 궁지에 내모는 일을 도맡아 한다. 이들은 배가 고픈 노동자들을 향해 외친다. “사촌이 땅을 사는데 배가 아프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이들은 현재까지는 아주 손쉽게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고 있다’.

그러니 억울하다. 하지만 어쩌랴.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비판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을.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불안정한 노동자 동지들로부터도 나오고 있는 것을. 그리고 사실인 것을. 상대적으로 돈을 더 많이 받고 있고, 도덕적 타락상을 보이고 있으며, 자신들이 미워하는 권력과 자본의 못된 버릇을 닮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도 언제 비정규직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낭떠러지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임금, 죽어라 잔업이다 철야다 해서 번 돈이다.” “도덕적 타락, 그것은 일부지 전부의 모습이 아니다.” 이유 있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 역시 이유 있는 비판이고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토대를 떠받치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노동자들에겐 분명 어떤 책무가 있다. 철도라는 공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철도 노동자들이 진정 ‘국민의 발’이 되기 위한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처자식과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장으로서 돈 버는 일 말고, 또 다른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사회보험 노동자들이 건강보험료 체납 딱지나 붙이는 불청객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의 건강을 살피는 다정한 친구라면. 가스공사 노동자들이, 전력 노동자들이 불어나는 회사의 흑자를 후생복지로 돌리는 것 말고도, 가난한 동네 이웃들에게 도시가스와 전기의 혜택을 주도록 시설투자를 안건으로 들고 나온다면. 금융 노동자들이 금융자본의 얄팍한 돈놀이에 견제 구실을 할 수 있다면. 자동차 제조 노동자들이 문제가 있는 자동차의 ‘자발적 리콜’을 솔선한다면. 전국의 면, 리 단위까지 들어가 있는 우리 공기업 노동자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저마다의 일꾼이 된다면….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래전 새마을호 열차의 정비 업무를 할 때다. 당시는 고속철도가 없던 시절이라 새마을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열차였다. 이 열차에는 객차 통로마다 냉온 음료수기가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좀 심각했다. 정해진 기간에 맞추어 필터를 교환해야 함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물품 창고에서 새 필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필터를 수돗물에 세척해 다시 끼워넣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결국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국정감사를 통하고 어찌어찌해서 열차에서 음료수기가 사라지게 되었지만, 이 정도의 일조차 엄청난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대기업, 공기업 노동자라고 해서 특별난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운동을 하는 투사도 아니다. 이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자기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행복을 꿈꾸는 인지상정의 노동자들이다. 부조리에 맞서려는 순간, 당장 밥벌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목을 내놓아야 하는 위기에 처하고 마는 어쩔 수 없는 노동자일 뿐이다. 이들에게 어떤 사회적 책무를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연대의식과 아량의 수준을 감안할 때 버거운 주문이다.

1직장 1실천과제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공기업 노동자의 사회적 책무가 면책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주눅들어서가 아니다. 하는 일이 이 사회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찌할까. 대기업, 공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전체를 싸잡아서 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규직에게 돈을 걷어 비정규직을 돕겠다는 민주노동당의 ‘사회연대 전략’처럼 폼나는 정책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선은 작지만 몸소 실천해볼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1직장 1실천과제’식으로 무엇이든 각각의 처지에서 쉽고 잘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는 것만큼 값진 경험도 없다. 예를 들어 철도 노동자라면 장삿속으로 전락한 민자역사를 시민들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싸움을 해볼 수 있다. 매표 창구나 열차 안에서 장애인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이중, 삼중의 장애인증 제시 요구를 하지 말도록 노동조합 차원에서 ‘장애인 응대 수칙’ 같은 것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꿈을 꾼 것인가. 그래도 꿈은 현실을 지향하는 것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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