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긴급구호 요원도 월급을 받나요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긴급구호’ 미니 지상강의 ②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자주 묻는 질문들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지난번에는 긴급구호 혹은 인도적 지원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병원으로 비유해 설명해보았다. 이번엔 구호활동을 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을 중심으로 인도적 지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지상강의를 하려고 한다.

인도적 지원의 하드웨어는 시스템, 구호자금 그리고 인력이다. 이것은 반드시 사전에 그리고 평상시에 확보해놓아야 한다. 갑자기 지진이 났는데 그때부터 요원을 모집해 구호팀을 꾸리고 구호자금을 모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IMAGE4%%]

인도적 지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중 첫째는 시스템, 대형 재난에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을 말한다. 월드비전을 예로 들면 국제본부는 전세계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및 동유럽 네 부분으로 나눠 자기 지역에서 일어날 재난을 예상하고 대비하며 재난이 났을 때 즉각 대처하고 있다.

재난은 크기와 피해 규모에 따라 카테고리 1, 2, 3으로 나뉜다. 카테고리 1은 재난을 당한 나라에서, 2는 그 나라가 속해 있는 대륙에서, 3은 전세계가 힘을 합쳐 대응할 재난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산불은 카테고리 1, 방글라데시 홍수는 카테고리 2, 아프리카의 기근 등 수백만 명이 고통을 당하는 곳이라면 카테고리 3이다. 월드비전 한국은 카테고리 3으로 선포된 모든 현장과 아시아의 재난 현장에 한국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두 번째 하드웨어는 자금이다. “현장에서 구호활동은 누가 하고 그 자금은 어디서 나오나요?” 구호활동은 재난 당사국과 각국 정부도 하고, 유엔이나 적십자 그리고 우리 같은 민간단체도 한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유엔 등은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민간단체의 자금은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대형 재난이 생기면 민간단체들은 신문, 방송, 강연, 설명회 및 후원자들에게 직접 보내는 편지를 통해 열심히 모금을 한다.

세 번째 하드웨어는 인력이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호현장에 갈 수 있나요?” 답은 ‘아니요’다. 효과적인 구호활동을 위해서는 훈련받은 인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긴급구호 단계에서는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평소에 ‘요원 안전교육’이나 ‘현장업무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에 관한 훈련’ 등 국제 긴급구호 요원으로서의 훈련을 부지런히 받아두어야 한다. 마치 수능고사는 단 하루에 끝나지만 그 하루를 위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준비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최근 긴급구호 현장으로 자원봉사를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큰 현장이 발생하면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은 텐트라도 치겠다, 식량부대라도 나르겠다는 단순 노력 자원봉사자들이다. 솔직히 말해 이들은 초기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을 돕겠다는 마음은 매우 아름답지만 원칙적으로 현장 단순노동은 현지 주민들이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주민들에게 일거리를 주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자존심도 세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텐트라도 치겠다” 마음은 고맙지만…

생각해보라. 응급실에서 초를 다투는 수술이 진행 중인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 그 안을 왔다갔다 한다면 방해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월드비전을 비롯한 국제 구호단체들은 초기 긴급구호 현장에는 비숙련·비전문 자원봉사자 파견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구호 단계, 즉 응급수술실 단계가 지나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마치 수술을 마친 환자가 병실로 가면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등을 도와줄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은 것과 같다. 자원봉사도 이렇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긴급구호 요원들도 월급을 받나요?” 당연히 받는다. 우리가 이슬을 먹고 구름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은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건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구호요원들에게 이 일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전문분야이자 직업이다.

그러나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나 몸이 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예 이 일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후원자들이 한푼 두푼 모아준 돈으로 받는 민간 구호단체의 월급 수준이란 짐작하는 대로 매우 낮다. 이동 수단인 비행기도 몇 번을 갈아타더라도 제일 싼 것으로 타야 한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국내외의 객관적인 조사에서 직업만족도가 높은 직업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구호를 하는데 여자라서 더 힘들지는 않나요?” 단언컨대 여자라서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오히려 여자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에서 식량 배분을 하는 날, 식량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주민들의 우려로 배분 현장이 폭동에 가까운 무질서 상태에 놓인 적이 있었다. 당황한 남자 요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을 하며 애를 써도 소용없었다. 보다 못한 내가 메가폰을 가지고 트럭 머리에 올라서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식량 배분표를 가진 모든 분에게 나눠줄 식량이 트럭 안에 있습니다. 저를 믿고 한 줄로 서면 바로 배분을 시작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이 한마디에 트럭 앞으로 긴 줄이 생겼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마음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설득이 근육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잘 먹힌다.

“긴급구호 요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각 분야의 전문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내가 가진 전문성과 힘을 기회의 불평등 때문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결심 말이다. 더불어 세상은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법칙, 즉 서로를 향한 관심과 진심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빛 반짝이는 젊은이를 기다리며

우리는 인도적 지원과 국제개발 협력을 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졌다. 고품질의 인정과 뚝심은 물론 식민지배, 전쟁, 군사독재 등 뼈아픈 역사적인 경험이 다양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경험까지 있으니 이런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앞으로 적어도 10년간은 구호현장에서 일할 생각이다. 그 현장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로 맹활약하는, 눈빛 반짝이는 우리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한비야의 종이비행기47’을 끝으로 ‘종이비행기47’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