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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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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때는 다 따로 있다

등록 2006-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요즘 수능 본 학생들에게 하는 말 “영 아닌 과로만 가지 마라”…목표가 뚜렷하지 않다고 걱정 말기를, 첫걸음 방향만 잘 떼기를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요즘 신문 칼럼이나 잘 팔리는 책마다 예외 없이 하는 말이다. 특히 수능 뒤 본격적으로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과 막 취업전선에 뛰어든 젊은이들에게 주는 말일 거다. 나 역시 책과 강의 등을 통해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를 말이다.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만 해도 그렇다. 학창시절 내내 학교라는 가마솥에 넣어놓고는 ‘공부해라, 공부만 해라, 공부만 잘해라’라며 푹푹 삶아대던 어른들이 갑자기 얼굴색을 달리하며 무엇을 할 때 네 가슴이 뛰더냐고 묻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

낙타가 숲에서 산다면

그래서 학생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저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한국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에 몇%의 10대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명명백백 깨닫고 있을까? 물론 하늘이 낸 예술가나 천재들은 10살도 되기 전에 이미 제 갈 길을 알겠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안개 속의 물체처럼 희미하게만 보일 뿐이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수능을 본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적어도 네가 정말로 아니라고 생각하는 과에는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낙타로 태어났으면 사막에, 호랑이로 태어났다면 숲 속에 있어야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쓰면서 살 수 있는 거다. 만약 낙타가 숲에서 산다면 잘 걷지도, 나무에 오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낙타 최대의 장점인 물저장용 혹도 방해물이 될 뿐이다.

물론 우리가 맞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마치 숲 속에 있는 낙타라도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삶이 어떨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자기가 가진 기질을 최대한 활용하며 나도 즐겁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는커녕, 평생 왜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걸까라며 열등의식과 불만에 가득 찬 날을 보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만약 나의 최종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출발지를 떠날 때 부산행 기차를 타면이야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적어도 마산이나 진주로 내려가는 남행열차를 타야지 평양이나 신의주 가는 북행열차를 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실은 나도 가고 싶었던 학과에 가지 못했다. 나에게 특별장학금을 주겠다는 학교에는 언론학이나 국제관계학과가 없었다. 영문과는 차선책이었다. 미국 유학 때도 그랬다. 개인장학금을 받아 가는 학교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매우 적었다. 그때 나는 원하는 그 과는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를 무대로, 대중을 상대로 일할 수 있는 과라면 일단 가자,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제홍보학과였다.

놀랍게도 차선책이었던 국제홍보학이 내게 가슴 뛰는 일을 만나게 해주었다. 세계일주 중, 아프리카 오지여행을 하면서 같이 놀던 아이가 설사 같은 시시한 병에 걸려 죽는 걸 보았다. 알고 보니 800원짜리 링거 한 병이면 살 수 있었다. 내 전공을 살려 이런 참상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린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생각했었다. 그 뒤 나는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이 되었고 대형 재난 현장에서는 홍보 담당으로 일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그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었느냐가 중요하다. 완벽한 지도가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가는 방법은 수십 가지다. 비행기나 KTX를 타고 갈 수도 있고 국도로 가는 승용차처럼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질러가든 돌아가든 여러분의 인생 표지판에 신의주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늘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방금 본 이정표에 대전이라고 써 있어도 괜찮다. 목포라고 써 있어도 놀라지 마시길. 여러분은 잘 가고 있는 거다. 적어도 남행선상에 있는 거니까.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너무 늦은 건 아닌가요?” 이 질문 역시 거의 매일 받는다. 물론 사람에게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인생의 속도와 일정표가 있다. 언제까지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워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표와 자기 것을 대조하면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난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내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게 아닐까?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면 사람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다 따로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어떤 이는 초봄의 개나리처럼 10대에, 어떤 이는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20, 30대에, 어떤 이는 가을의 국화처럼 40, 50대에, 또 어떤 이는 한겨울 매화처럼 60대 이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거라고. 내가 쓴 중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라는 꼭지가 있다. 많은 독자들이 위안을 받았다는 대목이라서 여기 다시 옮겨 적어본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해 뒤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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