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이유

등록 2006-12-15 00:00 수정 2020-05-03 04:24

시끄러워서 귀를 틀어막아야만 했던 오래간만의 영화 감상…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상으로 가는 대가는 혹독하여라

▣ 김진송 목수·문화평론가

영화를 보러 갔다. . 복합상영관의 입구에 걸린 포스터를 보고 시간에 맞는 영화를 고르면서 난 제목으로 연상되는 그럴듯한 영화를 찍었다. 함께 간 일행들 역시 모두 동의했고 불만은 없었다. 그 순간까지 나는 정말 프라다가 뭔지 몰랐다. 단지 모처럼의 이미지 주사를 맞는다면(활자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아무 글자나 읽어야 불안증이 해소되듯이 영화는 이미지에 굶주린 사람들의 마약과 같은 것이리라!) 다소 흉악스러운 내용이 전개되는 스펙터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아? 이런!

사태가 뒤틀린 건 프라다가 뭔지를 아는 순간부터였다. 이미 영화는 제목 하나로 줄거리를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흥미 반감. 매점과 매표소 그리고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이 늘어선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기름기 밴 팝콘 냄새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이미지를 호흡하는 절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편의 작은 에피소드와 같은 잔잔한 영화. 패션과 권력과 정체성을 헤집는 영화는 주인공이 세속에 만연된 악을 점잖게 물리치는 결말이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영화 탓이 아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리 고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한 돌비 시스템.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나는 귀를 막고 있어야 했다. 특히 배경음악이 깔리기 시작하면 귀를 후벼파는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프라다를 입은 자가 악마였는지는 모르겠으되 무지막지하게 볼륨을 울려대는 영화관 주인이 악마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멀쩡하다. 사람들은 영화의 흐름을 따라 때로 웃음을 던져주거나 조용한 헛기침을 하며 친밀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아니 나 말고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았단 말이지?

그날 나는 그동안 영화관에 자주 가지 않았던 이유를 하나 새삼 발견했다. 그동안 어찌된 일인지 나는 도무지 영화관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건 거의 모든 영화관의 소리가 내 귀가 허용하는 데시벨 이상이었던 까닭이다. 내가 유난을 떠는 것처럼 영화관의 음악 소리가 비정상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유독 그 소리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덜떨어진 신체기관 탓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었는지 예쁜 여주인공이 아르마니를 벗어던졌는지 아닌지 대강만 확인한 채로 혼을 쏙 빼놓은 영화관을 나온 뒤에야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어? 미치는 줄 알았어! 모두 괜찮아? 이런! 함께 영화를 본 일행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대꾸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영화의 여주인공이 일시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는, 악마의 치마폭에서 떨어져나온 불안감과 섭섭함을 공감했다.

나무 작업을 하는 직업 탓인지 나는 그라인더며 전기톱에서 나는 굉음에 익숙한 편이다. 때로 신경을 거스르는 기계음에 귀마개를 하고 작업을 하지만 웬만한 소음에는 그저 견뎌내는 편이다. 그런데 영화관의 성능 좋은 음향 시스템에서 나는 소리는 분명, 아니 내가 듣기로, 기계에서 나는 소음보다 더 컸다. 그게 소음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생각해보니 영화관의 소리에 그렇게 민감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어느 때부터인가 점점 영화관에 갔다 오면 정신이 멍한 게 영화를 보았는지 아니면 그저 그림만 구경하다 나왔는지 분간을 못했다. 그 이유가 영화관에서 나는 소리 때문이라는 걸 그날 깨달았던 것이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영화관을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영화, 그까짓 거 안 보면 그만일 테지만 그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그리워질 때가 있게 마련인데 그걸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섭섭한 일이었다. 이제 영화는, 아니 영화관은 나에게 허용된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는 영화관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현란한 이미지와 음악은 악마적 장치?

어쨌거나 세상의 모든 일이란 제 눈으로 보는 법. 며칠 뒤. 나는 이상이 생긴 나의 청각기능과 영화관의 데시벨 사이의 함수관계를 고민하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이유를 엉뚱하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동안 누적된 소음에 시달려온 내 귀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걸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영화관에서 사람들의 혼을 빼놓기 위해 점점 소리를 높여놓은 탓일까? 영화란 현란한 이미지와 역동적인 음악에 빠뜨려 도무지 빠져올 수 없도록 만든 악마의 장치들이 아니었을까? 혹시 악마의 유혹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그렇게 영화관에 몰려다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달려가는 곳이 반드시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게 그 영화의 주제였던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추앙하고 경배하며 뒤따르고 싶은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악마로 규정된, 그러나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 속의 메릴 스트립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이유는 프라다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가치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선택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 자본에 대한 철저한 신뢰, 남들의 시선에 대한 과도한 배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자질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불쌍한 우리의 여주인공처럼 처음부터 그런 가치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던 몰상식한 아니면 무능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모두들 괜찮다고 몰려가는 곳에 혼자 도저히 나는 갈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멋있는 거 아닌가? 모두들 뒤따르지 못해 안달하는 악마의 유혹에서 떨어져나온 그 예쁜 여주인공처럼, 그리고 모두들 재미있다고 달려가는 영화관에 소음이 무서워 못 가는 나처럼….

이건 너무 심했다. 아무래도 귀가 이상하니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다. 다음주에는 병원에나 가보아야겠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