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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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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년 뒤에도 ‘긴급’ 출동!

등록 2007-03-03 00:00 수정 2020-05-03 04:24

“요즘 좀 한가하시죠?”라는 이에게 드리는 ‘긴급구호’ 미니 지상 강의 ①…‘응급실’ 상황만이 아니라 계속 보살펴야 할 회복 환자도 우리 몫이랍니다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요즘은 긴급구호 할 일이 없어서 좀 한가하시죠?”

지난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듣는 말이다. 지난 한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 재난이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언론이 조용하다고 긴급구호팀이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억울하다.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쓰나미 같은 극적인 재난은 없었지만 ‘조용한 쓰나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긴급구호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우리 책임도 크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에 걸쳐 ‘긴급구호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미니 지상 강의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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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기간은 길어야 한 달

긴급구호란 한마디로 천재(天災)나 인재(人災)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신속히 살려내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끔 돕는 일이다. 긴급구호 활동을 병원으로 비유해보자. 교통사고로 사람이 크게 다쳤다. 당장 앰뷸런스가 오고 피를 철철 흘리는 환자가 들것에 실리고 병원 도착과 동시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며 수술 준비를 한다. 환자의 비명과 피비린내가 절박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이 아비규환 응급수술실이 바로 긴급구호 단계이고, 대형 재난이 났을 때 여러분이 언론을 통해 보는 구호 현장의 초기 단계 모습이다.

대형 난민촌을 만들고, 식량과 식수를 배분하고, 난리통에 부모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등의 초기 단계에서는 언론이 경쟁적으로 현장 상황을 전한다. 보도가 많이 되면 당연히 긴급구호 자금도 많이 들어온다.

문제는 이런 ‘뜨거운’ 기간이 길어야 한 달이라는 점이다. 2차 대전 뒤 최대의 참사였다는 쓰나미 때만 해도 그렇다. 내가 인도네시아 현장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 신문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 달 반 만에 쓰나미 관련 기사는 국제면 한 귀퉁이 상자기사로 겨우 구색만 맞추고 있었다. 이렇게 언론의 관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사람들의 인심도 함께 빠져나간다. 구호 후원금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응급실에서 수술이 잘 끝났다고 바로 집에 갈 수는 없는 법. 목숨을 구한 환자는 당분간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등 많은 의료 장치가 있어야만 연명할 수 있다. 파괴된 마을이 정상 기능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 우물을 파고 마을을 소독하며 어린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 등이 이 기간의 주요 활동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언론에도 사람들에게도 응급실만큼 극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시기에 자금이 부족하면 어렵게 살려놓은 환자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다행히 그 환자가 중환자실도 무사히 통과했다면 이제 회복실로 갈 것이다. 거기에서는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혼자서 밥 먹고 화장실을 갈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의 재활 치료를 받게 된다.

현장에서는 농민들에게 농기구와 종자를, 어부들에게는 그물이나 마을 공동용 배를 공급함으로써 스스로 일하면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간이다. 이 재활과 자립에 드는 시간은 생각보다 아주 길다. 당연히 돈도 인력도 많이 든다. 그러나 이때는 애간장을 녹이거나 기상천외한 얘기가 아니면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래서 구호단체 직원들은 힘들다. 없는 관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후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그래야 비로소 응급실에 실려왔던 환자가 중환자실을 거쳐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대형 응급수술실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중환자실과 회복실에서 돌봐야 할 환자들은 차고도 넘친다. 예를 들어 2004년 말에 발생해 이제 4년째로 접어든 쓰나미 구호는 아직도 영구 주택과 보건소 건설 등 재난 복구 사업을 하고 있다. 재작년 파키스탄 지진 구호도 이제 겨우 임시 천막학교를 벗어나 영구 학교를 짓고 있다. 이렇게 현재 진행되는 십수 개의 ‘중환자실 및 회복실’ 사업장을 방문하고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긴급구호 팀원의 하루가 모자란다. 게다가 국제본부 식량배분 담당인 나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살인적인 기근의 현장 아프리카로 파견근무를 가야 하는 실정이다.

제프리 삭스를 만나보시라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긴급구호’라는 용어다. 월드비전 한국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재난구호를 총칭해서 흔히 긴급구호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구호는 크게 ‘긴급구호’와 ‘재난복구’ 그리고 ‘사전예방’으로 나뉘며, 긴급구호는 세 단계 중 한 단계만을 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용어 자체를 잘못 쓰고 있으니 ‘응급수술실’ 단계가 없으면 긴급구호팀이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국제적으로는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ssista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 직함도 ‘인도적 지원팀 팀장’으로 고쳐야 마땅하다. 한 단체 부서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간단치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긴급구호팀에서 ‘긴급’ 자만이라도 ‘긴급하게’ 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늘 제1부 미니 강의를 마치기 전에 보너스 한 가지. 인도적 지원이나 국제개발협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솔깃할 소식이 있다. <빈곤의 종말>을 쓴 제프리 삭스가 3월7일 한국국제협력단 초청으로 방한해 ‘유엔 천년 개발 목표의 효과적 달성 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강연을 할 계획이란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koica.go.kr)에 나와 있는데, 참석할 사람은 좀 두껍긴 하지만 영양가 풍부한 <빈곤의 종말>을 꼭 읽고 오길 권한다. 나도 다시 한 번 읽고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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