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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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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소나무 이야기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3 04:24

개발 때문에 숲에서 도시로 자리를 옮긴 낙락장송들…솔잎혹파리가 기승을 부리면 숲이 파헤쳐지는 사연

▣ 김진송 목수·문화평론가

엊그제 눈이 왔다. 눈이 그득한 숲을 거닐다 칼바람을 맞고 있는 소나무와 마주친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소나무는 의연하게 겨울을 맞는다. 그런 소나무의 자태를 볼 수 있는 건 숲을 기웃거린 인간의 행복이다.

요즘 어디서나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숲이 아닌 도시에도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미끈한 새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낙락장송이 기품을 드러낸다. 멋지다. 동네 어귀나 뒷산 숲에서도 의연했던 소나무들은 날 선 바람이 몰아치는 빌딩의 숲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소나무들이 늘어선 도시의 풍경은 삭막한 도시를 아름답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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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더 많은 숲을 가꿔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숲에서 보아야 할 나무를 도시에서 만나는 걸 시기할 이유는 나에게도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소나무들의 모습이 수상하다. 도시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붉은 등짝을 드러내고 있다. 하긴 그게 소나무의 진면목이다. 그러나 붉은 가지를 힘차게 뻗어올리며 나무 끝에서 푸른 잎을 내는 소나무들은 숲의 한가운데서 자란 것들이다. 숲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소나무들이 그렇게 자랐을 리 없다. 반송(盤松)이라면 모르되 그 많은 낙락장송들을 사람들이 길러 심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설마 도시의 숲을 만들기 위해 멀쩡한 숲의 나무를 뽑아 심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른 조경수가 아니라고 해서 덜컥 의심하고 볼 일은 아니다. 도시의 소나무들은 거의 다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리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멀쩡한 숲의 소나무들이 도시로 끌려오겠는가? 숲을 가로질러 도로를 내면서 아니면 대규모 개발이나 건물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 있던 나무들이 팔려나온 것들일 게다. 숲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잘려나갈 나무들이 그나마 도시의 작은 땅에라도 뿌리를 박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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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시의 빌딩 숲에 소나무가 많아질수록 자연의 숲에서는 점점 소나무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가 늘어날수록 숲이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더라도 너무 많은 자연의 소나무들이 도시의 빌딩 틈을 메우고 있다. 그게 수상하다. 바른 대로 말하자면 도시의 낙락장송들은 대개 강제로 이주된 불법 체류자들이다. 한 걸음 물러나 말해도 누구에게는 합법적이었는지 모르겠으되 자연에게는 불법적으로 끌려나온 이주자들이다. 도시의 소나무들은 자연마저 독식하려는 도시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이다.

지난해에도 소나무들은 솔잎혹파리나 재선충의 피해를 입었다. 솔잎혹파리가 기승을 부리면 숲에서 소나무가 사라진다. 당연한 말 같지만 말인즉 꼭 그렇지가 않다. 죽어가는 게 아니라 뿌리째 사라지기 때문이다. 소나무들을 숲에서 끌어내는 데 솔잎혹파리는 다른 방식으로 단단히 한몫 거든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지금부터 솔잎혹파리가 어떻게 소나무를 숲에서 사라지게 하는지 그 마술과 같은 과정을 소개하겠다.

솔잎혹파리 애벌레나 소나무 재선충은 소나무에는 치명적인 벌레들이다. 솔잎혹파리가 번지면 애벌레는 솔잎의 밑동을 갉아먹는다. 소나무 잎은 누렇게 뜨면서 결국은 고사하고 만다. 솔잎혹파리 애벌레나 소나무 재선충이 기승을 부릴 때면 숲 속 소나무들이 잔뜩 긴장한다. 소나무들뿐인가. 산림청 직원들도 비상이 걸린다. 서둘러 방제를 하고 더 번지는 것을 막으려 동분서주한다. 소나무 운송차량을 통제하고 목재로 쓸 소나무를 실은 트럭도 병이 번진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도로를 만들거나 숲을 훼손한 자리에서 캐낸 소나무들도 더 이상 팔려나가지 못한다. 그럴 때 소나무 값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비싼 소나무들이 더 귀하신 몸이 되는 것이다.

솔잎혹파리에 의해 소나무의 이동이 제한되자 도시는 몸살을 앓는다. 자신의 건물에 소나무 몇 그루쯤은 있어 짓는 데 돈깨나 들였노라고 우쭐대고 싶었던 건물주, 연필을 좌우로 흔들다 아래로 쭉 그어버리면서 간단히 소나무를 그려낼 수 있었던 건축가, 아무래도 수지 맞는 소나무가 있어야 조경다운 조경을 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조경업자들은 애가 달지 않을 수 없다. 소나무를 파는 업자들은 비상이 걸리고 소나무를 찾아 도시 근교를 헤맨다. 이럴 때, 우리 시대의 해결사 개발업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소나무가 있는 산을 찾아 적절한 값을 주고 매입한다. 자연림이든 보존림이든 관계없다. 거기에 걸맞은 건축허가나 산림 훼손 허가를 내는 일은 그들에게 일도 아니다. 30년 수령의 나무가 있을 때 있게 되는 까다로운 사전 조사와 허가 절차 역시 일도 아니다. 모든 일은 합법적이다. 수년 동안 쌓아놓은 공무원과의 인맥,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없을 수 없는 거래를 통해 몇 주 안에 산림 훼손 허가를 받아낸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중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소나무들을 캐내어 팔면 땅 짚고 헤엄치기, 꿩 먹고 알 먹고, 아니 소나무 팔아먹고 땅 개발한 이익 얻고. 그렇게 소나무들이 줄줄이 도시로 실려나온다.(혹시 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다면 당장 연락해주기 바란다. 그 생생한 예를 눈앞에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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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혹파리는 소나무에 이토록 치명적이다. 솔잎혹파리가 멀리서 기승을 부린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멀쩡한 숲 속의 소나무들이 벌벌 떠는 이유이다. 도시에 소나무들이 늘어갈 때마다 어딘가의 소나무들이 그만큼 사라진다. 도시를 장식하는 소나무의 멋진 모습을 볼 때마다 파헤쳐진 시골의 숲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다. 솔잎혹파리보다 무서운 인간 혹파리들이 기승을 부리는 한 숲의 멀쩡한 소나무들은 갖가지 이유로 도시로 끌려나갈 것이다.

숲에서 소나무를 만나는 일이 민망하고, 도시에서 소나무를 만나는 일이 두렵다. 도시에서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오늘 처연하게 보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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