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비평가
청학동 숙소 근처를 산책하다가 바라본 밤하늘에는 별들이 정말 보석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별을 가깝게 바라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참으로 오랜만에 북두칠성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쌍계사, 하동, 진주, 통영으로 이어지는 2박3일간의 여정 동안 나는 역으로 ‘서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지방 분권화 시대가 조금씩 정착되는 과정이어서 그런지 각 지역과 도시들을 잇는 도로는 몇년 전에 비해서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갖가지 문화회관, 문학관, 박물관, 지방자치 관련 시설이 새롭게 들어서 있었다. 특히 거주 만족도가 1위라는 논개의 도시 진주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은 고적함과 여유, 문화적 기품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동행한 몇몇 학생들은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에서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이 작지만 매력적인 도시에서 평생 사는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서울에 살면서 이렇게 가끔 지방에 나들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지방 소도시의 삶에 대한 낭만적 환상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문화적 격차의 문제
그러나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문화적 인프라와 지역간 문화적 격차다. 연극비평을 하기 위해서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대학로에서 벼락치기로 연극들을 집중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지방에 사는 연극비평가의 운명이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유서 깊은 출판사가 서울이나 파주에 있는 현실에서 책을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올라와 출판사 담당자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방 문인들의 속사정이다. 반드시 보고 싶었던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서울로 향하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의 애환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예들은 지방 분권화라는 중대한 정치적 명분으로도 아직 해결되지 못하는 심각한 문화적 격차가 아닐까.
이러한 서울공화국의 권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집단이 대학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특성화를 추진하고 구조조정을 합리적으로 해도 단지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지방대학의 현실이다. 반대로 개성적인 특성화 전략이나 학문적 특성 없이도 단지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그럭저럭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대학들도 꽤 있다.
다들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지만, 수도권과 서울이라는 엄청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연루된 이익집단들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지방 분권화는 아직 먼 길과 수많은 고비를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은 서울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는 것밖에 없다. 지방대학의 구조조정에 들이댄 잣대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서울의 대학에 적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몇몇 명문대학의 지방 이전이 추진돼야 한다. 출판사나 영화사의 지방 이전을 위한 획기적 세제 지원과 문화적 인프라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직접 현장에서 볼 수밖에 없는 연극, 뮤지컬 등 공연예술의 지방 공연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요청된다.
이 모든 방책은 이미 수차례 제기됐던 것들이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모두 알면서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울에서 파생되는 정치·문화적 권력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는 많은 경우 진정으로 서울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보다 훨씬 집요하고 노골적이다. 행정수도 이전 기획의 실패는 그 음험한 욕망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사이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도시 중의 하나로 여전히 남아 있다. 거대도시 서울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이념적 문제 이전에 한 사람의 문화적, 정치적 입장을 조회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닐까. 이제 다시 무엇이 서울과 지방을 함께 살리는 길인가에 대한 대화가 시작돼야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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