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
바람 잘 날 없는 한국 사회다. 워낙에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사건사고는 그야말로 아찔할 정도다. 일부 호사가들은 이를 두고 역동적이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심심하지 않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하지만 느긋한 관조자가 아닌 이상 정작 불편하고 짜증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갈수록 무뎌진다. 매도 자주 맞다 보면 별로 아프지 않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언론의 관심도, 사람들의 관심도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곳에 쏠린다. 결국 분노와 매도는 넘쳐나지만 생산적 논쟁은 사라진다. 어쩌면 미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도 전에 또 다른 분노가 들이닥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조·언론·학교… 흔들리는 윤리의식
한국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져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냉소만 남아서는 안 된다. 희망은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것 아닌가. 이런 감상적 믿음과는 별도로 적어도 부정과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경험도 다소간 위안을 준다. 아무리 강력하고 촘촘한 제도를 두더라도 개인의 도덕적 일탈까지 막아낼 수는 없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벽한 도덕적 인간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궤변일지 모르지만 비난을 넘어 생산적인 논쟁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이다. 그리고 그 양태 역시 반복되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주목받지 않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문제들이다. 그 논쟁의 단초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 사건의 수만큼이나 충분히 드러나 있다.
기아차 노조 취업비리 사건은 ‘영향력의 권력’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노조에 채용추천권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소수자, 약자를 위해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아차 노조가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채용을 위해 회사를 압박했다면 이를 비난할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이상호 기자의 고백은 우리 사회 내부고발자의 곤궁한 처지를 드러낸다. 그가 그와 그 주변의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은 언론 종사자들의 윤리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자기반성이다.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향응을 받아서도 아니고, 핸드백을 받아서도 아닌 바로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이상호 기자가 향응과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강조될 뿐, 거기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
군 훈련소의 인분 사건은 군대에 다녀온 사람의 인식 속에 군사 문화의 폐해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이 군 복무를 하던 때에는 더 심한 일도 당했는데 저 정도를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반응이다. 반면 군 경험이 없는 청소년과 여성들은 충격과 분노에 몸서리를 친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이성마저도 마비시키는 군사 문화의 곳곳을 전반적으로 점검해봐야 한다. 수능부정, 답안 대리작성, 대리수강, 대학교수의 입시부정 사건 역시 윤리적으로 무너져내리는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윤리적’이란 비리가 가능한 환경에서 부정한 방법을 선택해 이를 행동에 옮기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양심의 움직임이다. 교육을 하는 자나 교육을 받는 자 모두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대학이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사건은 그 주체가 노조, 언론, 학교 등 그동안 우리 사회의 도덕적 준거집단으로 인식돼온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왔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들은 결국 비판당하는 자와 비판하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의식의 간극이 백지 한장 차이도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슬프게도, 고통스럽게도 이번 사건들은 우리 사회 뒷면의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내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모두들 귀향길에 들떠 있을 시간이다. 차 안에서든 고향집에서든 모처럼 모인 가족과 함께 ‘연예인 X파일’에 관한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그 시시콜콜한 내용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수집된 타인의 정보를 훔쳐보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지 묻자. 만약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남들이 지켜본다면 어떤 느낌일지도. 이 질문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후배가 던진 것이다. 그 후배는 결국 그 파일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는 아직 그 답을 구하지 못했다. 지금껏 타인의 정보를- 비록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보는 행위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론이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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