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제3회 ‘강의 날’ 대회에 모인 강·하천 지킴이들…일본과의 국제교류도 시작된다
▣ 부산=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부산에 온 나라 ‘강·하천 지킴이’들이 모여들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지킴이’들이 왔다. 9월9일 수영천을 끼고 흐르는 부산 해운대구 부산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제3회 ‘강의 날’ 대회에서였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하천을 살리려는 이들을 만나려고 일정을 바꿔 베이징에서 바로 부산으로 날아갔다.
필자가 지난 3주 동안 중국의 환경 문제를 접하면서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중국의 수많은 도시가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1세기 가장 큰 환경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중국인들은 거리낌없이 “물 문제”라고 대답했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 채 몇년을 보내고 있고, 다리가 있는 것으로 ‘이곳이 하천이구나’ 하고 추측할 정도로 강은 메말라 있었다. 식수원으로 쓰이는 댐의 저수량은 10% 안팎이었다. 지하수 개발 등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였다.
춤과 노래로 흥겨운 콘테스트
행사장 입구에는 전국 풀뿌리단체들의 활동이 영상물이나 포스터, 사진 등으로 펼쳐져 있었다. ‘꽃향기 넘치는 사랑의 광치천 만들기’ ‘해반천을 자연형 생태하천으로’ ‘만경강 생태하천 가꾸기’ ‘오십천 자연형 하천 만들기’ ‘학의천 살리기’ ‘반송천 탐사활동’ ‘야탑천 살리기’ ‘가좌천 살리기’ ‘수영강 온천천 그린운동’ ‘유구천 지킴이 활동’ ‘지사천 살리기’ ‘도림천 옹벽 벽화그리기’….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지천들이 이렇게 많다니! 이 대회가 주목받는 것은, 풀뿌리 기반의 하천살리기운동이 단순히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하나의 ‘문화’와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염태영 운영위원장은 “주민조직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활발해져 강살리기 운동이 주민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서 “특히 어린이들과 전업주부들의 참여가 활발하다”라고 말했다. 강서습지활동을 통해 지역 프로그램을 개발한 ‘생태보전시민모임’의 노래공연과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의 어린이 공연은 하천 보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가족이나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대회의 꽃은 ‘강살리기 콘테스트’였다. 이 콘테스트는 강과 하천을 사랑하는 이들이 운동사례를 발표하는 자리다. 무엇보다 전국의 하천운동을 한눈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교육 효과가 크다. 공공부문·민관파트너십·하천문화·하천교육 등 모두 44개의 보전사례가 발표됐다. 지난 5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해온 금강유역청소년 답사, 동천 탐사를 통한 부산YMCA의 청소년지킴이단 활동, 보전과 개발의 두 가치가 양립하는 것 같지만 실제 보전의 이름으로 개발이 정당화되는 낙동강 하구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있는 부산녹색연합, 광주천의 발원지부터 하수처리장까지 답사하면서 문화프로그램까지 결합시킨 광주환경연합 등 다양한 하천교육 사례가 쏟아져나왔다.
콘테스트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발표·토론·심사 과정이 모두 ‘공개’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딱딱한 발표가 아니라 춤·노래·연극·만담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공개된다. 모두 운동에 함께했던 가족이나 학생들이 직접 주인공이 되기 때문에 현실감 있고 사실적이다. 올해 하천운동 최고상은 ‘분당 환경시민의 모임’이 추진한 ‘흐르는 강의 모태, 숲이 시민을 부른다’라는 프로그램이 차지했다. 탄천의 지류인 야탑천을 보존하려는 지역 주민들의 숨은 노력이 높이 평가됐다. 또 야탑천만을 보전하는 데 머물기보다 야탑천을 끼고 있는 맹산 숲이 건강해야만 야탑천이 보전된다고 보고 맹산에 사는 반딧불이 서식처 살리기 운동, 맹산자연학교 등을 운영해 운동을 입체화한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둘째날인 10일 밤에는 ‘5대강 합수제’를 비롯한 작은 문화행사가 열렸다.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섬진강 지역 주민들이 각각 길어온 물을 합침으로써 ‘강·하천이 생태계 거점을 연결하는 중요한 생태축으로 기능하도록 하자’는 염원을 확인하는 행사였다. 이번 대회는 건설교통부 등 정부부처에서도 참여했다. 무분별한 하천 개발의 주범으로 인식돼온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연형 하천을 복원한 성과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산·인천·대구 등 광역자치단체와 전주·김해·남원·영덕·수원 등 지자체들이 참여했다.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을 성토하는 ‘반쪽의 행사’로 끝났던 이전 행사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
‘생명의물살리기운동본부’ 이진희 간사는 “풀뿌리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운동가들을 만나 그 속에서 배우고, 힘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그동안의 하천운동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에는 일본 시민단체들이 대거 참여해 한-일 시민단체들간의 국제교류를 강화했다. 일본에서 청소년과 하천 환경 문제를 주제로 활동하고 있는 오가와 신지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세대들이 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에 나서는 것은 물 문제 해결의 필수불가결한 문제”라며 ‘아시아지역 청소년 물포럼’ 공동 개최를 제안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가 한 제안은 ‘한-일 강살리기 네트워크 선언문’의 실천 과제로 채택됐다. 이 선언문에는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이 하천 살리기 운동에 매진하며 새로운 하천 문화를 발굴함으로써 강 살리기 네트워크를 공유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별 하천의 자매결연 네트워크를 추진해 2005년 성과를 발표하자는, 구체적인 약속도 이뤄졌다.
비와 바람이 갈수록 포악해지는 이유는 뭘까.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는 강한 착각이 빗어낸 결과”라고 대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마지막 날 채택된 대회 선언문은 이를 분명히 했다. “강이 흐르는 곳만 강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홍수가 났을 때 강물이 넘쳐나는 모든 유역을 강으로 여겨야 하며, 강을 손질하고 제방을 쌓는 비용으로 ‘홍수터를 구입해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돌려줘야 한다. 인공 구조물로 강을 가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강은 결코 그 속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어떤 이유로 뛰쳐나올 때에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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