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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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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를 해설해 드려요

등록 2004-11-25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풀뿌리 운동가들을 환경파수꾼으로 키워내는 인천녹색연합의 ‘환경해설가 전문과정’

▣ 인천=글·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3

지난 11월19일 오전 인천 계양산 입구 간이주차장. 인천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자연의 보물창고인 계양산은 안개에 취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첫서리의 심술에 호박 넝쿨은 한풀 꺾인 채 널브러져 있었다. 평범한 등산객으로 보이는 10여명이 모여 있다. 이들은 환경단체인 ‘인천녹색연합’의 ‘환경해설가 전문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곤충의 겨울나기’라는 현장수업을 들으려고 모두 아침을 부랴부랴 챙겨먹었다고 했다. 한 손에는 두꺼운 곤충도감을, 다른 손에는 필기도구를 쥔 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숲 속에서 벌어지는 ‘보물찾기’

20여년간 곤충을 연구해온 김정환 고려곤충연구소 소장이 강사다. 참가자들은 준비해온 종이에 김 소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놓칠까봐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히 받아적었다. 그러나 이들에게선 ‘설마?’ ‘이 추운 겨울에 무슨 곤충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미심쩍은 표정이 배어나왔다.

때맞춰 김 소장이 한마디 했다. “여러분이 만약 곤충이라면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잠을 청할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보금자리를 어디로 잡을 것인지 생각해보세요. 누구나 쉽게 보일 만한 곳에는 절대 안 숨겠지요? 한번 찾아봅시다.” 김 소장의 말이 떨어지자 마음이 통하는 학생들끼리 짝이 되어 계양산 주변의 곤충들의 겨울나기를 찾아 흩어졌다. 조심스럽게 낙엽을 들추기도 하고, 고목 밑동을 살피기도 한다. 딱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했던 ‘보물찾기’였다. 이윽고 곳곳에서 “선생님~” 소리가 연방 들린다. “여기에 뭔가 매달려 있어요!” “이 녀석 이름은 뭐예요?”

‘산불감시초소’의 처마 밑에도, 들어올린 커다란 돌의 안쪽과 땅바닥에도, 쓰러진 지 오래인 나무의 껍질 속에도, 양지바른 떡갈나무 군락지의 두툼한 낙엽더미 속에서도 겨울을 준비하는 곤충들이 발견됐다.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이런 녀석도 다 있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무 열매로 착각할 정도로 매달려 있는 거미알집도 속속 발견됐다. 집만 지어놓고 도망을 가버린 거미집도 보였다. ‘차주머니나방’은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다. 소나무 토막에서는 100여개의 알이 있다는 사마귀의 알주머니가 마치 밀랍처럼 줄무늬가 있는 덩어리로 붙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발견한 곤충을 도감에서 찾아 발견한 날짜와 장소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일부는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낙엽을 덮어주기도 하고 나무 밑동도 제자리를 찾게 했다. 그러곤 영역을 침범했다는 미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물러났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무척 좋아한다는 송미선(36)씨는 “동식물들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공생하는 법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사람은 공생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명심(65)씨는 “젊은 사람 따라가기가 힘들지만 복습에 복습을 하면서 배우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이 과정을 통해 ‘나무박사’가 됐다. “참나무 6형제가 있어요.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이들의 입은 비슷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어요.” 김씨는 짬짬이 이곳에서 배운 것을 중심으로 월미산에 견학 오는 초·중·고생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다.

환경해설가 교육은 지난 9월부터 인천녹색연합이 가톨릭환경연대교육실 교사, 굴포천시민모임, 월미산지킴이, 인천대공원지킴이, 녹색연합 자원활동교사 등 자연안내자나 환경단체 실무자로 활동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문성을 더욱 높여주기 위한 과정이다. 풀뿌리운동의 핵심은 결국 사람인데 이들을 전문가 수준으로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에서 환경해설가 교육은 환경운동의 전문 일꾼을 키워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환경해설가는 하천·갯벌·숲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효율적인 자연 탐방 활동 등을 도와준다.

참여 열기 쉽게 식지 않아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이 교육과정에는 30명이 등록해 두달 동안 이론과 현장 심화 과정을 밟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도의 전문가와 운동가를 초빙해 환경해설사의 기본은 물론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장을 방문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갔다. 공통 분야는 환경해설 이론과 기획, 생태계 교육, 전통문화와 환경, 지역 환경 현안, 생태기행 기획 등이고, 전문 분야는 숲·식물·곤충·하천·갯벌·조류 등 현장교육이 중심이다. 강사 역시 현장을 잘 아는 강사들로 구성됐다. 인천 지역은 계양산을 비롯해 인천대공원과 월미산, 갯벌 등으로 환경 해설의 필요한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내용도 알차다.

환경해설가 과정은 매주 두번 1년 동안 모두 65강좌를 소화해야 한다. 이론과 현장을 동시에 배워야 하는 ‘혹독한 훈련’이 이어지면 많은 지원자들이 중도 하차하지 않을까. 인천녹색연합 유종반 사무처장은 “솔직히 수강료조차 받지 않아 초창기에 반짝하고 중도에 포기하지는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두달이 지난 지금 거의 모든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참여 열기가 쉽게 식지 않는 것을 보면 풀뿌리 운동가들이 그동안 활동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에 목말라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해마다 배출되는 환경해설가들은 생명의 가치를 온 사회에 전파하는 환경 파수꾼이자 환경운동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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