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음식 남기지 않겠소” 시민들의 ‘빈그릇운동’… 모처럼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지난 11월3일 점심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식당 앞에서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 불교 정토회 산하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하 환경교육원)과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공동으로 ‘빈그릇운동-음식 남기지 않기 10만인 서약운동’ 캠페인을 열었다. ‘일용엄니’ 김수미씨와 이경재·제종길·배일도 의원 등이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나자 식당으로 향하던 이들도, 지나가던 동료 의원들도 걸음을 멈춰섰다. 국무총리의 발언으로 경색 정국이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모처럼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 이채로웠다.
서명이 아니라 서약운동
우렁찬 구호와 함께 의원들은 ‘빈그릇운동’이라고 새겨진 접시를 들었다. 의원회관을 찾았던 시민들이 서약서에 서명을 시작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은 복을 버리는 것입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은 환경 문제를 넘어 생명에 대한 경애심의 문제입니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말에 박수가 터졌다. 다른 한쪽에서는 환경교육원 회원들이 운동의 의미와 음식물 쓰레기 해결 방안 등을 담은 홍보물을 나눠줬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서약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을 경로당에서 국회를 단체로 방문한 김연숙 할머니(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돋보기 안경을 꺼내 안내책자를 꼼꼼히 읽고서는 손수 재생용지로 만든 서약용지에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 “과거에 어려운 시절이 있었잖아요? 굶주려본 사람들은 음식의 소중함을 알지요. 요즘은 음식 귀한 걸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김씨는 속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1천원짜리 지폐를 모금함에 넣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이날 캠페인으로 국회의원회관 식당쪽도 덩달아 기뻐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신이 난 주방장과 조리원들이 나와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다.
‘빈그릇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드러났다. 50~60년대를 경험한 어르신들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데 무슨 캠페인이냐’는 표정인 반면 ‘조금씩 남기는 것이 미덕 아니냐’며 퉁명스런 표정을 짓는 젊은 세대들도 있었다. 단순히 세대 차이라기보다는 음식을 대하는 예의의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운동은 거리 캠페인과 병행해 인터넷(www.jungto.org)을 통해서도 서약을 받고 있다. 이미 지하철이나 명동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서약이 벌어지고 있다. 이 운동은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뒤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실천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환경교육원은 서울·부산·대구·대전 등에서 잇달아 캠페인과 서약식을 열었고, 앞으로도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확산시킬 계획이다.
이 운동은 개인의 서약을 넘어 이웃이나 학교·단체·회사 등에 자발적으로 전파하는 방식의 환경운동이다. 정토회 회원 1천여명이 이 서약에 동참했고, 오는 12월까지 100일간 운동을 펼쳐 100만명이 서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한달 만에 서명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곽결호 환경부 장관과 소설가 김홍신씨, 방송인 김미숙씨, 배종옥씨 등도 서약에 함께했다.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도 “농부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음식을 굶주린 사람과 나누고 그릇은 비우겠다”며 동참했다.
‘빈그릇운동’이 독특한 것은 흔히 보기 쉬운 ‘서명운동’이 아니라 ‘서약운동’이라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신과의 ‘약속’을 적극적인 운동의 방식으로 채택한 셈이다. ‘돈 가는 곳에 마음 간다’는 말이 있듯 서약자들은 1천원의 기금도 낸다. 1천원씩 거두는 이유에 대해 환경교육원 박석동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지구 저편의 굶주린 이웃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인 동시에 서약자들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금의 절반은 굶주리는 어린이를 위한 구호기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환경교육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쓰레기 제로운동’의 활동기금으로 쓰인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만 4천억원
환경교육원의 ‘쓰레기 제로운동’( 507호 참조)은 ‘도시라는 공간에서도 쓰레기를 없앰으로써 100% 생태순환적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안적 생활양식을 통해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당시 이들은 운동 초기에 이미 “쓰레기 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음식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음식물 쓰레기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곳으로는 정토회가 대표적이다. 각자 접시에 먹을 만큼 음식을 덜어서 모두 먹고 접시에 남은 찌꺼기는 김치조각이나 무조각으로 깨끗이 닦아먹는 방식이다. 빈그릇운동은 이런 내부의 움직임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켜보자는 뜻으로 시작됐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은 어마어마한 규모에서 확인된다.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15조원으로, 한해 식량수입액의 1.5배에 이른다. 처리비용만도 4천억원이라고 한다. 식량의 70%를 수입하는 우리의 처지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 것은 자원을 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폐기물관리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음식물쓰레기 매립이 금지된다고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 수거 인프라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빈그릇운동’을 지켜보면서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음식을 버리는데 익숙하지 않았는지,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가 됐으니 버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면서 스스로에게 관대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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