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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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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나누면 보물이 된다

등록 2004-12-17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쓸모없어진 장난감들을 모아 대여하는 ‘녹색장난감도서관’… 아이들의 추억을 나누어 가진다

▣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더 이상 값비싼 장난감을 사지 않아도 된다. 무료로 빌리면 되니까! 장난감은 단지 아이가 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만은 아니다. 장난감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두뇌 발달이나 성장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의 보물창고인 ‘녹색장난감도서관’을 찾았다. 아이가 훌쩍 커버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장난감을 기증받아 재활용하는 공간이기도 해 관심을 끌었다.

엄마들이 더 즐겁다

지난 12월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역에 내려 시청 방면 출구쪽 지하도 끝자락에 위치한 녹색장난감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운영자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입구는 새로 장난감이 들어온 탓인지 종이상자가 왔다갔다 했고, 영아용 자전거를 고르려는 아이와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보자기와 가방에다 바리바리 장난감을 싸들고 온 열성 엄마, 영아용 자전거를 끌고 반납하러 온 젊은 엄마, 그 틈 사이로 아이를 목마 태우고 가족 나들이 나온 부부들도 입구에서 만날 수 있었다.

10여평의 장난감 진열 공간에는 조작·블록 쌓기·음률·소꿉·각종 교구 등으로 분류된 장난감들이 선반과 바닥에 곱게 모셔져 있고, 각종 교육도서와 비디오테이프 등 3천여점이 진열돼 있다. 아이들에겐 퍼즐과 움직이는 로봇 등 조작 가능한 장난감이 가장 인기가 많다. 피아노·멜로디언·피리 등 악기류와 블록 쌓기·미니 자동차·소꿉놀이 등도 인기 품목이다. 진열대 앞 한쪽에는 또래 아이들이 소꿉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장난감 재료로 요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과를 자르거나 국을 끓이는 흉내를 내본다. 장난감을 고르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자동차를 꺼내어 요리조리 살피기도 하고 바닥에 내려 움직여보기도 한다.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는 아이들…. 이곳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들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제법 어엿한 유치원생 아이까지. 아이들은 금방 친구가 되어 어울린다.

녹색장난감도서관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즐거운 공간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은 엄마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어른들은 장난감을 만져보면서 신기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동심에 젖기도 했다. 아이가 또래들과 노는 동안 엄마들끼리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접하는 육아나 교육 문제를 털어놓기도 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마들은 즐거운 표정들이다.

이곳을 찾은 부모들은 “아이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장난감도서관이 있어서 좋다”며 “아무 때나 들러 쉽게 장난감을 무료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담 없이 다양한 장난감을 접할 수 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해리야! 우리 공룡을 빌려갈까?” 아이가 기겁을 한다. “아니야 무서워!” “그럼 딴 거 빌려가자.” 엄마는 동화책을 권한다.

수유리 화계사 근처에서 해리(4)와 함께 온 주부 김금안(32)씨는 “무엇보다 비용 부담이 없어 좋고, 아이가 이곳에서 또래 아이들과 사귈 수 있어 좋다”며 “일주일에 두세번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서인(5)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은 최규석(35·강북구 수유동)씨가 나섰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들이 산처럼 쌓여 있잖아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장난감들을 이곳 녹색장난감도서관에 기증하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서인이도 자신의 장난감을 기꺼이 내놓겠다며 또박또박 얘기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녹색장난감도서관은 준회원과 정회원 등 2가지 회원제로 운영된다. 처음 가입하는 준회원은 간단한 가입 절차를 밟고 2천원의 회원예탁금을 한번만 내면 된다. 한번에 2개의 장난감을 10일간 빌릴 수 있다. 준회원으로 가입한 뒤 12번을 빌린 동안 연체나 파손 없이 이용하면 곧바로 정회원이 되고 대여 품목은 3개로, 기간은 14일로 늘어난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육아 전문가와 함께하는 자녀 양육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또 매달 둘째·넷째 금요일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해 ‘엄마와 함께 장난감 만들기’ 시간도 마련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유아교육 전공자들이다. 고은영(30·보육정보센터 운영요원)씨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빌려갈 때의 모습을 보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수현(33·〃)씨는 장난감에 대한 소개를 빼놓지 않았다. “이건 그냥 퍼즐이 아니라 색깔을 이용해 위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난감입니다” 하는 식이다. 이들은 양육 상담에서부터 장난감 수리·보수·세척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

다양한 장난감 확보가 고민거리

이들의 바람은 더 다양한 장난감을 확보하는 것이다. 장난감 구입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12월16일부터 18일까지 장난감 교환행사를 열 예정”이라며 “이 내용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다양한 장난감을 확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아이가 훌쩍 커버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장난감이라도 그냥 버릴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다. 장난감에는 아이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녹색장난감도서관은 이런 장난감들을 모아 아이들의 ‘추억’을 나누어 가지자는 뜻으로 출발했다.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는 양육 문제를 부모와 국가, 사회가 나누어 지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시보육정보센터 천선미(33) 연구원은 “아이들이 부모의 소득 수준 격차 때문에 뒤처지는 일 없이 평등한 문화적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나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 연구원은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 같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지구에 있는 모든 물건은 필요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에겐 헌것이지만, 또 다른 누구에겐 천금보다 귀할 수 있다. 이곳 도서관에 ‘보물’들이 숨어 있는 이유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되고, 부모들에게 소통의 장이 되며, 우리 모두에게 재활용이라는 이름의 순환경제를 배우는 곳이다. 이런 도서관이 거리에 있는 빨간 우체통 수만큼이나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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