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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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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베이징에서 살리라

등록 2004-11-05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올림픽 앞두고 녹색 아파트 운동 벌이는 시민들…자치단체 중심으로 분리수거와 절약에 앞장서

▣ 베이징=글·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10월24일 중국 베이징 시내는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대형 크레인이 곳곳에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활기가 넘쳤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곳곳에 붙은 ‘환경보호 인인유책’(環境保護 人人有責, ‘환경보호는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이라는 선전문구였다. 80년대 온 나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포스터를 떠올리게 했다. 환경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 아닐까. 시내로 가는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는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시내 공장들을 대대적으로 이전했다”며 “그렇지만 자가용만 100만대 늘어났는데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외곽으로 옮겼다고 해서 오염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염물을 이전했을 뿐, 외곽 지역의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관과 기업이 참여하는 정례회의

톈안먼의 동쪽, 창난둥(倉南洞) 내 난먼창(南門倉) 아파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이곳에서 ‘녹색 아파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녹색 아파트 운동은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쓰레기를 분리해 배출하는 등의 생활습관을 바꿔 환경의식을 실천하자는 뜻으로 출발했다.

아파트 단지는 서울의 여느 아파트 단지와 마찬가지다. 곳곳에 음식쓰레기와 플라스틱, 기타로 나뉘어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시범지구 활동은 정부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다른 지역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는, 선진적인 환경정책을 시행한다는 데서 오는 자부심인 것 같았다. 이곳 단지는 5년 전 3곳의 시범지역 가운데 하나로 지정됐고, 현재 아파트의 80%인 4천여 가구가 녹색 아파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한 가정을 방문했다. 여주인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무척 수줍어했다. “우리 집보다 잘하는 더 집이 많을 텐데, 어디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데…. 한국에서는 쓰레기 분리나 절전·절수는 기본이라면서요. 환경 문제는 국경이 없잖아요.” 방마다 전기 스위치에는 ‘녹색조명 이국이민’(綠色照明 利國利民)이라는 스티커까지 붙여놓았다. 수도꼭지도 절수용품이었다. 주방에는 음식물 쓰레기통, 일반 쓰레기통, 비닐 종류의 쓰레기통 등 3가지 종류의 쓰레기통이 마련돼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물과 에너지의 부족을 겪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시민사회의 절수·절전 운동이 고마울 따름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징의 물 부족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물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고 있다. 지난해 1월 말 베이징 시의 생활용수 가격은 1㎥당 2위안에서 2.9위안으로 올랐고 최근에 3.7위안으로 또 올랐다. 값을 올려 낭비를 막자는 뜻에서 취해진 조처라고 한다.

녹색 아파트 운동은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자치활동이 중심이다. 한국의 ‘아파트 주민위원회’ 같은 조직을 이곳에서는 ‘아파트환경이사회’로 불렀다. ‘환경’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사회는 관할 행정관청과 기업 등이 참여하는 정례 연석회의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한다. 쓰레기 분리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한다든지, 절전·절수 시스템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문제 등이 토론된다. 전업주부와 학생이 대부분인 20여명 규모의 ‘지원자대대’(자원봉사자)도 생겼다.

운동의 측면 지원자는 ‘북경지구촌환경문화중심’(北京地球村環境文化中心·이하 지구촌)이라는 이름의 환경단체다. 1996년에 설립된 지구촌은 ‘환경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 단체 활동가인 우민(40)은 “아직 중국인들의 환경인식이 심어져 있지 않은 데다 습관을 바꾸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 위안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환경운동에서 착안한 것도

실제로 이 단체에서는 에너지 절약운동의 하나로 녹색 조명을 쓰자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주민들이 녹색 조명 전구와 그렇지 않은 전구를 비교 관찰할 수 있도록 계량기를 각각 설치한 뒤에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일기예보 방송에서 대기오염 현황을 알려주자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는 ‘푸른 하늘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도로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 심각한 매연을 뿜는 차량은 출입을 제한하기도 한다. 또 연탄을 쓰는 가정에서는 유황이 적은 연탄을 쓰도록 캠페인을 벌인다. 청소년들로 구성된 ‘녹색천사들’은 악단을 만들어 환경 단막극을 공연하기도 한다. 온실가스 배출로 신음하는 지구, 절전절수의 필요성 등을 주제로 한 단막극들이다.

우민은 “녹색 아파트 운동은 소비지향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생활태도를 변화시키고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살리자는 운동”이라며 “우리가 하는 운동의 일부는 한국의 환경운동에서 착안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왕진래엔은 “가정에서부터 환경친화적 생활태도를 길러야 녹색소비도 가능해진다”면서 “그런데 많은 중국인들은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것과 잘사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또 “겨울은 여름처럼, 여름은 겨울처럼 보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녹색이 있기에 생명이 있고, 생명을 위해서라면 녹색을 지켜야 한다”(因爲綠色, 才有生命, 爲了生命, 我們守護綠色)는 이들의 바람에서 지구를 살리려는 지역 공동체들의 공통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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