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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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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소박해라, 인천NGO!

등록 2004-10-22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font color="darkblue"> 인천대공원 ‘시민과 함께하는 NGO 한마당’… 사회참여 욕구 보이는 건강한 청소년들 반가워</font>

▣ 인천=글·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인천시민연대가 주최한 ‘시민과 함께하는 NGO 한마당’ 행사가 열린 지난 10월16일 오후 인천대공원 야외공연장. 인천녹색연합 활동가인 이윤미(24)씨는 행사 준비를 위해 대공원으로 향했다. 이씨는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 위해 이미 오전에 사무실로 나왔다. 계양산 생태조사자료집을 비롯해 천수세미, 면생리대, 재생비누 등 행사장에 전시할 물품들을 창고에서 꺼내놓고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인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 동식물들을 담은 환경엽서들도 챙겼다.

인기를 끈 루티 시식·탁본뜨기

인천대공원에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시민들로 넘쳐났다. 외곽에 벗어나 있는 야외극장에서 열린 NGO 한마당 행사장은 아주 소박했다. 때마침 함께 열린 ‘건강걷기대회’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지만, 인천 지역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민단체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참여한 이씨 얼굴에도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씨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반문하며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대공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나눠줄 행사안내문을 챙겼다.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안내문을 받아들고는 “저기 NGO가 뭐예요?”라고 묻는다.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을 설명하며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자 관심을 보였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다는 친구도 있고, 사회 시간에 배운 것 같다는 친구도 있다.

이날 행사는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상호 이해와 교류 활성화, 시민사회 역량 강화 등을 목표로 각 단체 실무자들로 꾸려진 기획단에서 몇달 전부터 준비했다. 이은주 인천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재정과 사람, 그리고 홍보가 가장 힘들다”면서 “재정적 지원만 된다면 시민들이 다양하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내용도 만들고 홍보도 제대로 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시민 참여가 부족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이해하고,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NGO 한마당에는 평화운동단체·여성단체·환경단체·사회봉사단체 등 인천 지역에서 활동 중인 17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산재추방사진전’ ‘이주노동자문화카페’ ‘친일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각 단체별로 특색 있는 행사도 열렸다. 이 가운데서 특히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 마련한 ‘이주노동자문화카페’가 인기였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사람들의 주식인 ‘루티’에 ‘베지터블 카레’를 싸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짜이’라고 불리는 차도 곁들이고 말이다. 한쪽에서는 밀가루 반죽이 한창이다. 호기심 갖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이주노동자는 “한번 맛보세요!”를 연방 외치며, 카레를 ‘루티’에 싸서 권한다. 음식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손쉽게 접함으로써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코너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당신의 열린 마음 점수는 몇점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즉석 설문조사도 이뤄졌다. ‘옆의 월셋집에 이주노동자들이 이사 와서 모여 살고 있다면?’ ‘강제 단속과 추방에 쫓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함께 싸울 것을 요청한다면?’ 등의 문항들이 담겨 있었다.

인천지역공부방연합회에서 마련한 ‘탁본뜨기’ 체험 현장에는 꼬마 손님들로 붐볐다. 전시돼 있는 아동인권선언문을 곁눈질로 지켜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기와에 새겨진 태극무늬 위에 한지를 놓고 분무기로 물을 뿌린 뒤 솔로 가볍게 두들긴다. 솜방망이에 먹물을 조금만 묻혀 가볍게 두들겨준다. 한지 위로 스며나오는 문양을 보고 신기해한다. 계양생협과 인천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마련한 코너도 인기다. 면생리대와 천수세미, 재생비누 등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들도 판매돼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한 전업주부는 천수세미를 만져보며 “털실 자체가 이렇게 수세미가 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며 궁금해한다. 시민단체에 대한 인지도는 예상보다 낮았다. 직장을 다닌다는 이경희(24)씨는 “이렇게 다양한 단체들이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솔직히 몰랐다”며 “일상 속에 파묻혀 주변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했다”고 수줍어했다.

>“이렇게 다양하다니 솔직히 몰랐다"

행사에 참여한 단체와 시민들은 ‘인천 시민들의 복지·인권·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자연과 상생하고 이웃과의 협동을 통해 살맛 나는 미래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등 12개 항의 ‘NGO 선언’을 발표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순간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시민과 함께 나누고 적극 연대할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해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행사장에 끝까지 남아 정리한 이윤미씨는 이제 어느 정도 만족해하는 눈치다. 각 단체에서 마련한 체험행사에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지켜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년들의 사회참여 욕구가 높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직접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가하게 되면 그만큼 시민단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결국엔 청소년들을 ‘깨어 있는 시민’으로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지역 풀뿌리단체와 함께 우리 주변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며 “시민과 시민단체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열려 많은 시민들이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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