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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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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물만골을 만나다

등록 2004-12-10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도시에서 생태마을을 만드는 물만골 공통체… 한푼두푼 모은 주민들 돈으로 토지 공동 매입

▣ 부산=글·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물만골’은 부산 연제구 황령산 자락, 도시 빌딩 숲에 자리잡은 ‘볼품없는 마을’이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 사람들( 517호 ‘성미산의 힘은 오래간다’ 참조)이 이곳을 찾는다기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호기심도 발동했다. 도심 한가운데서 ‘생태마을’을 만드는 곳으로 알려져 ‘뭔가 특별한 것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성미산’ 사람들과 ‘물만골’ 사람들이 조우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지역 살림 돌보는 주민 총회

두 마을은 닮은 데가 많다. 도심 속 무분별한 개발 문제를 주민의 힘으로 막아냈고, 그 힘을 기반으로 생태공동체를 만들어보려 하기 때문이다. 투쟁 과정에서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다양한 자치운동들이 생겨나 실험 중인 점도 그렇다.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물만골은 생태공동체가 현실화하고 있는 데 비해 성미산은 이제 막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는 점이 다르다. 물만골 사람들은 1990년대 초 철거민 투쟁에서 승리한 경험을 갖고 있고, 1998년 부산시 황령산 도로건설 계획과 위락시설 건설계획을 계기로 본격적인 생태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성미산 사람들은 올해 초 성미산을 깎아 배수지를 건설하겠다는 서울시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쳐왔고, 절반의 승리를 일궈냈다.

11월27일 오후 부산시청 건너편 마을버스 정류장. 필자는 성미산 사람들과 함께 1번 마을버스를 탔다. 구불구불한 길을 10여분 오르자 높은 아파트촌이 어느덧 끝나는가 싶더니 나지막한 언덕배기를 지나자 다닥다닥 슬레이트 지붕이 산자락 골짜기 모양새를 따라 빼곡히 들어찬 마을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도심의 한복판에서 산과 산이 만나 골짜기를 이룬 아담한 마을로 접어들었다. 동굴 하나를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도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독립공화국’으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물만골 공동체의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이희찬(43)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이 전 위원장을 따라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자 물만골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이 마르지 않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지어진 물만골이라는 이름대로 수로에는 물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람 냄새’였다. 마당도 대문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손바닥만 한 현관에 마루나 방이 곧바로 붙어 있지만 모두들 살갑게 대했다.

아이들은 어른을 만나면 꼭 인사를 한다.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에 수능은 잘 보았는가?” “어휴, 경제가 어렵다는데 취직을 했다니 장하구먼.” 이 전 위원장의 집을 방문했다. 마을 소개 비디오를 보고 난 뒤 성미산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공동체라고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느냐?” “특별한 주민교육 프로그램이 있느냐?” “땅을 공동 매입하는 것에 대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어려웠을 텐데 어땠나?”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왜 물환경에 초점을 맞추었나.”

이곳은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토지 공동 매입’을 선택한 점에서도 다른 곳과 구별된다. 가장 어려운 선택이었기에 주목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1953년 피난민이 처음 정착하고, 1970년대 부산 초량 지역 철거민 유입과 1980년대 초 공업화 진행 과정에서 농촌 인구 유입 등으로 급격히 인구가 늘어나 지금은 430가구, 1500여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이라 시와 강제 철거를 둘러싼 싸움이 많았다. 92년 열흘 동안 전경과 맞선 이후 서로를 믿게 됐다. ‘함께해야 살아남는다’는, 간단하면서도 소중한 교훈을 얻은 이들은 보상금을 타거나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대신 가장 평화로운 방법을 택했다. 돈을 모아 땅을 사버린 것이다! 언제 또 쫓겨날지 모를 무허가 땅에서 뿌리내리려 430여 가구가 한푼두푼 달마다 돈을 모아 공동명의로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 세대당 월 10만원의 적립배당액을 새마을금고에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토지 매입 잔금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저곳이 마지막 남은 땅입니다. 이제 저곳만 사면 물만골 땅을 모두 사는 거지요.” 이 전 위원장은 시멘트로 직강화된 작은 계곡물 건너편 위쪽을 가리켰다. 이제 다섯 필지 가운데 한 필지만 남겨뒀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보다 자치권이 강하다. 30여년간 이곳에서 터전을 일군 박호생 통장은 “정주 의식이 강하다 보니 관심과 참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살림을 맡은 위원장과 통장까지도 주민 총회에서 직선으로 뽑는다. 매달 25일에 열리는 주민총회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대의원회의와 통장 주관 회의도 있지만 주민총회 의견이 늘 우선한다.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 등 자치조직도 공동체의 크고 작은 일에 앞장선다. 자활사업단, 풍물단, 청소년 환경지킴이 ‘빈딧불이’ 등도 꾸렸다. 지역복지, 보건의료, 교육 등 지역 문제도 자체 해결이 원칙이다. 건설공동체 등을 꾸려 일자리를 나눴고, 부녀회의 자활사업인 봉제사업과 노인회에서의 자원재활용, 음식물 쓰레기의 자원화 사업으로 환경 보호와 수익을 동시에 얻었다.

개발계획의 장벽을 넘어서

마을의 중심부는 마을버스 정류장인데 이곳에 마을회관이 있다. 주민총회도 여기서 연다. 건너편의 컨테이너에는 ‘부산의료원 진료봉사단’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진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부산의료원 의사인 김이수(41)씨가 “할머니! 당뇨기가 보입니다. 조심하셔야죠”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보여야 잡지! 당뇨라는 놈이 어떻게 보여”라며 농담을 건넨다. 의사들이 토요일에는 상주하며 환자를 진료한다. 김이수씨는 아예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주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물만골의 생태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대와 경성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간의 연대도 이뤄지고 있다. 공동체는 내년부터 새로운 꿈을 실행에 옮긴다. 마을 자체의 건설 노동력으로 순번제로 집을 짓고, 풍력을 이용해 마을에서 쓸 전기를 충당하고, 계곡을 복원하고, 자체 하수정화 시스템을 만들고, 미생물 처리 방식으로 분뇨를 처리하는 것까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제도 쌓여 있다. 황령산 순환도로 건설과 위락시설 건설계획이 당장 문제다. 황령산을 넘어 연제구와 남구를 잇는 순환도로가 대부분 개통되고 물만골 구간만 남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마을의 자체 비용으로 황령산 식생과 동식물 현황을 조사하고 있지만 어떻게 진행될지가 걱정거리다.

도시에서 생태마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물만골 공동체가 ‘사회적 실험’으로 불리는 이유다. 도시와 고립되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친화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닌 물만골 사람들, 그리고 그것과 연대하려는 성미산 사람들. 두 마을 사람들의 열린 연대는 필자에게 ‘희망’이었다. 물만골을 떠나는 성미산 사람들의 얼굴에도 희망이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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