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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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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를 두번 죽이지 말라

등록 2004-10-07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font color="darkblue">2004 희망을 주는 시화호 만들기 행사… 당국의 시화호 개발계획에 토론을 제안하는 시민들 </font>

▣ 화성=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9월18일 오후 시화호 방조제 들머리에서 ‘2004 희망을 주는 시화호 만들기’ 행사가 열렸다. ‘희망을 주는 시화호 만들기 화성·시흥·안산 시민연대회의’(이하 시화호시민연대)가 주관한 이 행사는 시화호를 껴안고 걷기와 함께 장승제나 음악회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행사장에는 800여명의 청소년들도 참여해 열기를 달궜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참여한 시민들, 풀뿌리단체 운동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도 눈에 띄었다. 청소년들이 손수 만든 깃발들이 행사장 곳곳에서 나부꼈다. 시화호의 미래와 희망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한 깃발들이다. 사람과 자연을 철새들이 보듬는 모습, 회색의 도시를 녹색의 기운으로 가득 메운 모습의 깃발들에서 이들의 바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방조제 공사로 썩은 물 넘치던 곳

철새떼들은 한 무리를 이루며 행사장으로 날갯짓을 하다가 이내 줄행랑을 친다. 갈매기들도 축하비행에 바빴다. 드디어 걷기행사가 시작했다. 시화방조제로 출발했다. 1300여만평 규모로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시화호는 지난 2001년 2월 정부의 담수화 계획 포기로 배수갑문을 통해 하루 2번 평균 3천만t의 바닷물이 오가고 있어 방조제와 인접한 곳은 깨끗해 보였다. 멀리 시화공단에서는 각종 오염물질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면 위로는 초고압 송전선로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39km짜리 해상 송전선로와 송전탑이 시화호를 흉물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각종 레저단지 등 국민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는 정부가 송전선로를 만들어 시화호의 생태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한 셈이다.

청소년들은 신기한 듯 시민단체가 설치해둔 망원경을 통해 철새들을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어! 괭이갈매기네. 저렇게 생겼구나!” “여기는 마도요야! 참 신기하게 서 있네.” 전미림(정왕중 2년)양은 “썩은 물로 가득 찬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요새 같은 철새를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박성화(은행고 1년)양은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방조제 길이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직접 걸어보니 엄청나다”며 신기해했다. 지역행사에 참석한 조정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시화호 주변 개발로 지역주민들이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며 “밀어붙이기식 개발이 아니고 지역의 문화와 생태, 역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시화호는 천혜의 자연 생태계와 풍족한 어족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공룡알 화석지, 오이도 패총 등 선사시대의 숨결마저 서려 있던 곳이다. 그러나 방조제 공사가 끝난 1994년부터 수질이 나빠져 어느새 ‘죽음의 호수’ ‘재앙의 호수’로 불릴 만큼 환경오염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결국 물막이 공사 7년 만인 2001년 2월 정부는 담수화계획을 포기하고 바닷물을 유통시키고 있다.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호수는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이는 새만금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고, 생태 복원의 자연 교과서가 됐다. 지역주민들과 관련부처, 지자체, 전문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해 대안 마련을 위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점 역시 긍정적인 흐름이다.

특히 핵폐기장 건설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사회적 공론화의 중요성이 거론되는 최근 상황에서 시화호 지역에서 이미 올해 초부터 시화호 개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기구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화지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가 그것이다. 협의회는 지난해 12월 초 발표된 정부의 ‘시화지구 장기종합 개발계획’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10여년째 환경파괴 논란을 빚어온 시화지구 개발 청사진은 엄청난 규모다. 2020년까지 시화호 주변 간석지 3200만평에 테크노밸리와 학술연구단지, 각종 레저단지, 저밀도 주거단지, 조력발전소와 항만시설 등을 갖춘 복합기능의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환경대책이 빠져 있고 시민사회의 참여가 배제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개발계획은 담수호 정책 실패를 고스란히 반복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아직은 살얼음판 걷는 느낌”

시화호 보존과 생태복원 운동을 펼쳐온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은 시화호 이용계획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정부에 제안해, 지난 2월 건교부와 산자부, 환경부, 경기도, 시흥·안산시, 시민·환경단체 등으로 ‘시화지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에 참여한 임병준 시화호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구성 초기 정부를 비판하는 학자와 민간위원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과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끝장 토론’으로 마지막 한 사람이 납득할 때까지 상호 토론을 한다는 점, 그리고 논의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철저히 공개한다는 점들이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지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며 “벌써 몇번의 연속토론 경험이 성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시화북측간석지 멀티테크노밸리(MTV) 개발계획’(16시간), ‘시화반월공단 대기개선 로드맵 작성을 위한 토론’(11시간) 등이 그것이다. 비록 법률적 효력을 지니는 기구는 아니지만 생산적인 논의기구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시화반월공단의 대기개선을 위한 로드맵’이 만들어져 최종 검토 단계에 와 있는 것도 성과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라는 게 또 다른 참여자들의 평가다. 시간끌기용이나 명분쌓기용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사업 예정지를 공구별로 나눠 계약을 맺는 사례나 개발계획을 비공개로 추진하는 사례들이 나타나는 것도 걱정을 더한다. 북쪽 간석지를 매립해 110만평을 첨단용지로 쓰자는 정부안과 현재의 해안선을 유지한 채 생태공원화하자는 시민안이 팽팽히 맞서는 것도 대표적인 토론거리다. 민간위원인 서정철 시흥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는 “입장 차이가 크지만 시화호를 두번 죽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인내로써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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