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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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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면’은 골짜기마다 골병든다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골프장 백지화 전국공동대책위 발족…지역민 삶의 터전 빼앗지 말고 생태공원을 지어달라

▣ 글·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골프귀신’이 들린 건가요. 평생 땅의 소중함을 믿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웬 날벼락입니까?”

11월23일 오후 여주·평택·익산·함양·구례·장성·담양·장흥·무안·해남·광주 등 온 나라에서 온 400여명이 서울 탑골공원 앞에 모였다. ‘골프장 백지화 전국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 발족식 및 골프장 규제 개선 완화 입법 철회 요구 상경집회’를 연 것이다.

골프장 건설계획 지역 주민들은 ‘노(No) 골프’ ‘골프장 결사반대’ 등의 글씨가 쓰인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직접 손으로 쓴 듯한 펼침막을 내걸었다. “조상님 묘지에 골프장이 웬말이냐!” “지역 공동체 파괴하는 골프장을 반대한다.” “주민생존권 말살하는 골프장 계획 취소하라.” 구호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골프장 증설책, 특혜와 탈법 시비

이들에게 시위는 점점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14개 지역대책위를 중심으로 전국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공대위는 각 지역 대책위가 지자체와 건설회사와의 싸움에 한계를 느끼다 최근 정부가 대대적인 골프장 증설책을 밝히자, 이에 대한 전국적 대응을 위해 시민환경단체, 민주노동당과 함께 지난 10월4일 준비위원회 형식으로 꾸려졌다가 이날 공식 출범식을 한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골프장 건설 문제가 지역만 달리한 뿐 비슷한 양상이라 “안녕들 못하시죠?”라고 인사를 건네며 동병상련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했다. 경남 함양군 지곡면 주암마을에서 온 서정자(50)씨는 “마을 주민 60여명이 모두 농사일도 팽개치고 오느라고 동네가 텅 비었다”면서 “골프장으로 논밭이 죽어가는 것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는 우리가 나서서 먼저 알리려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옹포골프장 건설반대 공대위에서 온 김범태씨는 “출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무모한 계획으로 온갖 특혜와 탈법 시비가 끊이지 않은 만큼 관련 공무원을 징계하고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북 익산시가 추진하는 웅포골프장 건설사업(관광지 조성사업)의 경우 올해 감사원에서 △사업수행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민간사업자(한국프로골프협회)를 사업자로 내정한 점 △골프장 터(225만㎡)를 골프협회에 매수가격(매입원가)으로 매각 결정한 점 △골프장 용지가 아닌 임야로 땅 일부(21만㎡)를 매각한 점 △골프협회 비용으로 공무원 등 28명을 해외 골프여행 시킨 점 등을 지적받았지만, 공사는 예정대로 강행되고 있다.

박운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대책위원장은 “현재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의 최상류에 위치한 사포마을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대규모 골프장 건설을 막고 있다”며 “지리산 온천으로 이미 10군데나 지하수 개발을 해놨는데, 골프장을 세워 산꼭대기에서 농약을 뿌려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쌀이 좋기로 이름난 경기 여주 지역도 골프장 건설로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완만한 구릉지대인데다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미 4곳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며, 3곳은 계획서를 내 공사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기존 2개 골프장의 증축이 예정돼 있어 가남면 안금리 마을과 양귀리 마을에는 두 마을 주변에만 180홀에 300만여평 터의 골프장이 들어선다. 두 마을 주민들은 “아예 동네 이름을 ‘골프면’이나 ‘골프리’로 바꿔야 할 판”이라고 성토했다.

대한민국이 ‘골프 공화국’(현재 전국 골프장 수 260여개)이 된 지 오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곳곳에서 골프장 유치 계획이 터져나오고 있다. 골프장 귀신이 들린 듯 경쟁에 뛰어들고 있어 온 나라가 골프장 건설 신드롬에 휘말리는 양상이다. 지역경제를 일으킨다는 게 주요 논리다. 여기에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밝힌 것처럼 골프장 건설규제 개선방안에 따라 접수된 230건의 골프장 신청을 올해 말까지 일괄 처리한다면 골프장 수는 500여개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수치가 곧바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도 ‘경기부양’과 ‘세수증대’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관심이 없는 눈치다. 송정복 공대위 사무국장은 “한정된 골프 인구에 비해 골프장이 많아지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의도한 목적은커녕 오히려 지역 공동체 붕괴와 환경오염을 초래할 뿐 아니라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경제기반마저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지역의 공동체 파괴와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과 함께 대규모 산림파괴, 지하수 고갈, 농약 피해, 생물 다양성 감소 등 등 막대한 환경파괴를 불러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될 것”이라며 정부의 골프장 규제완화 정책을 비판했다.

찬반 나눠 싸우는 지역 공동체

이날 참석자들은 골프장 건설계획으로 찬반 주민들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고, 이를 지자체나 추진업체가 부추기고 있어 지역 공동체 파괴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많은 지역에서 계획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주민은 주민대로, 마을을 마을대로 찬반으로 쪼개진다.

540홀짜리 골프장 건설계획이 발표된 전남 해남 지역은 주민들간 폭행사건도 일어났고, 전남 구례 산동면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대낮에 골프장 업체 직원들한테서 폭행을 당해 주민들이 집단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남 장흥에서 온 이두한씨는 “상가에서조차 찬반 고성이 오가고 결국 싸움으로 번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지역주민들은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청원서’를 통해 “골프장은 수많은 농민과 어민의 삶의 터전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스포츠 시설”이라며 “골프장 대신 국토 전체를 생태적으로 지탱 가능하도록 유지할 수 있는 생태공원과 생태농지와 재생 가능 에너지단지 230개를 만들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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