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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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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우리 동네 친구

등록 2004-09-24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시민들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공동체 라디오… 어느 날 당신의 귀를 의심할 것이다

▣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여기는 FM 99.9메가헤르츠(MHz), 마포희망 방송국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미산을 지키는 시민연대’ 회원들과 마포구청장을 모시고 성미산 공원화 계획에 대한 열띤 토론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오늘밤 12시30분 홍대앞 클럽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을 방송할 예정입니다. 아~하, 그리고 보람이네 생일잔치가 내일 저녁 성미산 놀이터에서 있다는 쪽지가 전달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런 동네방송을 FM방송을 통해 듣는다면 청취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것이다.

풀뿌리 운동의 기반

9월15일 저녁 7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미디어연대 사무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첫 번째 강좌가 있는 날이다. 대학방송국에서 활동하는 학생들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참석했다. ‘공동체 라디오란 무엇인가?’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낼까?’ ‘공동체 라디오의 청취율은 얼마 정도일까?’ 등등의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체 라디오’라는 말 자체도 생소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가까운 일본, 타이, 캐나다,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이미 다양한 공동체 라디오가 운영되어 지역밀착형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란 주로 10W 이하의 소출력 FM 주파수를 이용한 라디오 방송으로 직경 10km 내외의 방송 권역을 가지는 지역 방송을 의미한다. 소출력 FM은 라디오 수신기만 있으면 누구나 청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송출에 필요한 장비와 비용 부담이 적다는 게 장점. 시민들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점에서 시민 미디어이고, 지역 공동체 중심의 현안과 정보를 소통한다는 점에서 지역 자치 실현의 미디어이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보장될 수 있는 풀뿌리 미디어로, 그동안 국가와 기업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존 방송과는 다른 제3의 방송 영역이다.

강사로 참여한 송덕호 미디어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일본의 공동체 라디오 현장을 둘러보고 온 경험을 들려주었다. 일본에는 현재 160여개의 공동체 라디오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설립부터 운영까지 지방정부가 참여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공동체 라디오의 직원은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5명 정도. 그 대신 시민운동가, 주부, 은퇴한 어르신 등이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의 청취율은 어느 정도일까? 일본의 경우는 해당 지역 내에서 10% 정도의 높은 청취율을 자랑하고 있으며 인지도 역시 90%에 육박할 정도로 지역밀착형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출력 라디오를 이용한 공동체 라디오 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공동체 라디오 운동은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를 중심으로 추진돼왔다. 특히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체라디오방송연구팀’(www.commradio.org)은 공동체 라디오에 관한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해왔다. 지난해 10월 방송위원회에 ‘소출력 라디오 방송 도입을 통한 주민자치 및 지방분권 활성화를 위한 의견서’를 제출했고,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공동체 라디오 운동 활성화를 위한 국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교훈(28·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미디어교육실)씨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풀뿌리 미디어 운동으로서 대중의 지지기반을 가지기 위해서는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인식 확대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 교육·훈련 워크숍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홍교훈씨는 “지금까지 방송 구조 개혁을 위해 해온 방송 모니터, 좋은 프로그램 선정, 옴부즈맨 방송 프로그램 참여 등 감시 차원의 운동을 넘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전파가 ‘공공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러한 권리를 요구하고 시민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했으며, 최근 방송위원회가 지역별로 신청을 받아 소출력 라디오 시범 방송을 하기로 해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방송위원회의 시범사업자 모집 공고에 따르면 “10월1일부터 15일까지 신청접수를 받아 수도권 2곳, 비수도권 3곳을 시범사업자로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포구 단체들이 추진위 결성

지역에 뿌리를 둔 풀뿌리 단체들의 공동체 라디오 준비도 탄력을 받고 있다. 내년 초부터 ‘상상 속의 일’이 실제로 가능할 것 같다. 가장 활발한 곳은 서울 마포지역이다. ‘공동체 라디오’를 표방하는 연대기구가 지난 8월27일 출범했다. 미디어연대, 마포연대, 홍대앞문화협동조합, 성미산학교설립준비위원회, 마포생활협동조합 등 주로 서울 마포구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을 펼쳐온 단체들은 ‘마포공동체라디오방송 추진위’를 9월 발족하고 시범 방송을 위한 세부 작업에 착수했다. 마포공동체라디오는 참가 단체 각자가 지역 주민들에게 유용한 라디오 콘텐츠를 능히 생산해낼 만한 능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를 통해 대중적이면서도 풀뿌리 시민운동을 지역에 확산할 수 있는 매체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각 단체들이 지닌 전문성을 공동체 라디오의 콘텐츠와 결합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지역밀착형 시민 라디오 방송이 가능하다. 노동자 방송국을 준비하는 울산, 수도권 신도시인 일산·분당, 전남 광주 북구와 나주, 제주, 전북·부안 등에서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적인 재정지원 방안, 운영 방식, 운영 주체, 편성 모델 등 공동체 라디오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공동체 라디오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지방정부의 홍보매체로,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의 ‘숨은 의도’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설립과 운영, 내용에 풀뿌리 ‘주민자치’와 ‘주민참여’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년 초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이웃들의 정겨운 얘기, ‘우리 동네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싶다. 기존 공중파 라디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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