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무더위가 예사롭지 않다. 10년 만에 닥친 더위란다. 정부가 폭염을 재난으로 선포하려는 것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피해에 대한 걱정은 뒷전이고 시원한(?) 바람 덕 좀 보려고 태풍 오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으니 무더위 때문에 사람 인심도 사나워지는 것 같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욱 달콤해지는 게 휴가다. 그러나 올해 여름휴가는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모두에게 달콤한 것 같지는 않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휴가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피서지마다 예년에 없던 불경기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경남 양산 통도사와 부산 해운대로 휴가를 다녀왔다. 갑작스러운 휴가여서 걱정을 했는데, 떠나기 2~3일 전인데도 숙박업소와 대중교통편 예약이 전화와 인터넷으로 가능했다. 피서지 불경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휴가철이 무르익고 있는데도 해운대 백사장에서 손님을 들이지 못한 파라솔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면 믿을는지 모르겠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중 산업활동 동향을 살펴보면 도·소매 판매는 1.6%, 설비투자는 7.9%의 증가율을 각각 기록했지만 도·소매는 자동차가, 설비투자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지표 호전에 기여했을 뿐 나머지 부문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실제 체감경기와는 큰 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피서철 불경기가 중추절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청와대 관저에서 독서로 소일하며 두문불출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통령이 골프도 치고, 회도 한 접시 먹고, 백화점과 재래시장을 찾아 쇼핑도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에는 지방 나들이도 하고 골프도 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경기 침체를 의식해 취소했다고 한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바꾸어 더 현실적이고 보탬이 되는 방안을 찾을 수는 없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노 대통령이 휴가 중에 읽을 예정이라는 책 가운데 한권이 연암 박지원의 이다. 연암은 이 책을 통해 골방에서 책만 가까이 하는 선비의 지적 허영심을 질타하고 있다. “후세에 독서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말라빠진 먹과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서 눈을 지치게 하고, 책장에 붙은 좀벌레의 오줌과 쥐똥을 주워 모으고 있으니 이야말로 술지게미를 먹고 취해 죽겠다고 하는 격이니 어찌 불쌍하지 않은가?” 노 대통령이 연암의 책을 읽고 ‘골방’에서 나와 더 많은 시간을 국민과 함께하는지 지켜봐야겠다.
그래서 독자들께는 어디든지(물론 해외는 제외) 휴가를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물 쓰듯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당히 돈도 써가면서 휴가를 즐겼으면 한다. 100일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분석한 이번호 표지이야기도 여름휴가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지구촌에 또 어떤 ‘재앙’이 닥칠지를 상상하면서 공포까지 맛본다면 무더위를 쫓는 데도 그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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