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쟁점과 과제를 짚은 13편의 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민주노총은 외환위기 이후 해마다 ‘올해를 관통하는 사업기조’로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표방해왔다. 그러나 총파업을 호소하는 민주노총의 절규는 왜 메아리가 없는가? 신자유주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대중은 왜 침묵하는가? 노동계급의 단결이란 대의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화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조돈문·이수봉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는 ‘위기의 노동’이 처한 현주소를, 나아가 당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글 13편을 묶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민주노조운동 20년은 1997년 말을 기점으로 앞의 ‘전노협과 민주노총 건설 시기’, 뒤의 ‘경제위기 이후의 시기’로 확연하게 구분된다. 운동이 당면한 쟁점과 과제도 뚜렷이 달라졌다. 조형제는 ‘현대자동차의 고용조정’에서 1998년 여름 현대자동차 노사가 충돌한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고용조정을 둘러싸고 전국의 자본가와 노동자를 대표하여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최대한의 투쟁을 통한 최대한의 경제적 보상 획득’이란 단순한 실천 전략에 익숙해 있었다. 이는 장기적인 경제 번영의 지속이란 경제상황을 배경으로만 가능한 것이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운동은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시험받아야 할 고통스러운 무대 위에 서게 됐다.” ‘최대한 투쟁’을 지속할 것이냐, ‘자본과의 타협적 공생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 화물연대 사례’(윤영삼·백두주)는 외환위기 이후의 ‘비정규직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화물운송 노동자, 레미콘 노동자, 학습지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은 자영업자와 전형적인 노동자의 중간 영역 어딘가에 위치한 노동자들이다. 실제로는 노동자이지만 외형은 ‘위장된 자영업자’들이다. “자본의 전략적 선택인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라 고용·취업 형태의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돼왔다.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호명’된다. 여기에는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면하기 위한 자본의 ‘책임회피 효과’과 노동시장을 분할 지배하려는 ‘노동통제 효과’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20년의 평가와 과제’에서 이수봉(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저 찬란했던 노동자 대투쟁의 쨍쨍함과 오늘 노동운동 진영의 무력감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것들을 놓쳤는지 파헤”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정치 민주화와 자본주의적 착취의 사회화는 같은 공간에서 작동한 서로 다른 시간체계였다. 전투적 조합주의, 노동귀족론, 대기업노조 이기주의론 등은 대부분 허상이거나 지나치게 과장한 수사에 불과하다. 답답한 건 이런 논리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을 하고 반박 성명을 내고 유인물을 뿌려보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어 임영일은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강인순은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와 남성 중심의 노조 조직을 지적하면서 ‘여성노동자운동 20년’을 정리하고, 오건호는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실천전략으로서 ‘사회공공성 투쟁’을, 노중기는 노동운동 내부의 오랜 난제 중 하나인 ‘사회적 합의주의’ 문제를, 신병현은 사라지고 있는 ‘민주노조 노동자 문화’를 진단한다. “공장·지역·가족 등 노동자 삶과 문화에서 해방적이고 생동적이고 창조적인 ‘노동자 주체 형성의 새로운 기획’을 탐색해야 한다.” 특히 김성희(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는 ‘비정규노동과 민주노조운동 혁신’이란 글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주력인 대공장 정규직노조가 비정규 노동과의 연대를 지체·방기하는 현상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비정규 노동운동은 민주노조운동 발전의 끝이자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발전태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항상 희망은 다시 ‘운동’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와 진정한 ‘저항’이고 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이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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