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9월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분진 피해 주민 디안 레스타리(가명)와 ‘생태행동과 민중해방’(AEER) 분석가, 빅웨이브 관계자 등이 인권위 담당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규남 기자
“한국 기업의 국외 탄소집약 산업 투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 관련 기관은 한국 기업이 현지에서 최소한의 규제만 충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관된 인권·환경 기준을 적용하도록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인도네시아 환경단체 ‘생태행동과 민중해방’(AEER) 산업탈탄소 분석가)
“기업이 현지 국가의 법적 기준을 만족했다고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책임경영 가이드라인’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 등 국제기준이 존재하지만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들은 법을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으로 받아들이면서 법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이런 측면에서 기업이 인권적·환경적 의무를 지키게 하려면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기업 인권·환경 실사법’이 제정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박태성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겸 기업과인권·기후위기 전문관)
한겨레21이 2026년 7월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기업의 합작 법인인 ‘크라카타우포스코’가 철강을 생산하면서 대기오염과 분진 배출로 인도네시아 반텐주 칠레곤시 치완단구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지역사회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내용을 고발한 보도(제1625호 참조)와 관련해 현지 주민들이 직접 방한해 9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와 간담회를 한 이후 포항제철소와 인근 주민 거주지 방문, 9·19 기후정의행진 참여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당시 한겨레21과의 화상인터뷰에서 피해 상황을 증언한 현지 주민 디안 레스타리(48·가명)와 AEER 분석가는 이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박태성 인권위 사무관 겸 기업과인권·기후위기 전문관과 간담회를 하며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는 철강산업의 탈탄소화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레스타리는 간담회에서 이렇게 질의했다. “우리는 계속 거주해왔던 치완단 지역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건강과 환경의 피해를 받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박 사무관이 답했다. “유엔은 2022년에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인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채택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피해자로서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적절한 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 국제기준입니다.”
이어 레스타리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크라카타우포스코에서 나오는 석탄 먼지와 철 분진은 주민들의 호흡기와 피부 등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의회나 지방정부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크라카타우포스코가 문 닫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을 위협하는 오염 문제가 해결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6년 7월27일 인도네시아 반텐주 칠레곤시 테갈라투 마을에 있는 일관제철소 크라카타우포스코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 디안 레스타리(가명) 제공
AEER과 빅웨이브는 레스타리 일행의 방한 시기에 맞춰 ‘인도네시아와 한국 일관제철 산업의 국경 간 환경 책임 및 산업기준’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2025년 포스코홀딩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크라타우포스코를 포함한 포스코의 국외 일관제철소 먼지(Dust) 배출량은 3670t으로, 국내 포항·광양 제철소 전체 배출량(3019t)보다 많다. 생산량 1천t당 먼지 배출량을 의미하는 원단위를 비교하면 국내는 0.087t이고, 국외 제철소는 이보다 12.5배 많은 1.085t이다. 또 국내 포항·광양 제철소의 먼지 배출 기준은 시설 연한에 따라 10~20㎍/m³ 수준으로 통제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배출 기준은 2000년 제정된 법에 멈춰 있어 국내의 15배가량인 150㎍/m³에 달한다. 보고서에서는 “철강 생산량이 한국의 10%에 불과함에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에서 내뿜는 먼지 절대량이 포항·광양 제철소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포스코의 ‘글로벌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공약이 국내외에서 이중잣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 빅웨이브 상임공동대표도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의 규제 수준으로 느슨하게 배출 기준을 관리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권리를 침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지속가능성과 탈탄소에 앞장서는 글로벌 철강회사라면 적극적인 배출물질 관리 조치와 국외 사업장 탄소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박 사무관의 말처럼 국내에서 ‘기업 인권·환경 실사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환경 실사는 기업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와 환경오염 등을 미리 식별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방지하는 활동을 뜻한다. 국외에서는 프랑스가 2017년부터 ‘기업실사법’, 독일은 2023년부터 ‘공급망실사법’이라는 이름으로 관련 법을 제정해 기업 활동과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과 환경 위험에 대한 식별, 예방, 완화와 구제 절차 마련 등 인권 실사를 의무화했다. 유럽연합(EU)도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을 제정해 인권 실사를 의무화했다. 유럽연합은 2026년 2월 기업의 부담 완화를 위해 CSDDD 개정을 통해 적용 범위를 조정했지만 기본 취지는 유지했다. 현재는 해당 지침을 회원국들이 국내법으로 전환하는 기간이고, 기업에 대해서는 2029년 7월부터 실제 적용될 예정이다.
한국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세 건 발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태호·박홍배 의원이 각각 2025년 6월과 11월에 발의했고, 2026년 8월에는 박지혜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안들(정태호·박홍배 의원안)에 대해 인권위는 2026년 8월20일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 실천을 명문화하는 법안으로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 인권위는 “이 법안들은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과 ‘OECD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을 국내 법제에 반영하기 위한 필수 입법”이라며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에 대한 대응이 미흡할 경우 평판 하락과 법적·재무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발의안의 조속한 심의와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개별 기업의 사업장을 직접 조사하거나 제재할 권한은 없고, 이처럼 입법이나 국가 정책, 제도 변경 등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문제 개선에 나선다.
한국을 방문한 레스타리 일행은 크라카타우포스코 인근 거주지와의 유사점과 차이점 등을 파악하기 위해 포항제철소와 인근 주민 거주지 방문, 국회 정태호·박지혜 의원실과의 간담회, 9·19 기후정의행진 참여, 국내 기후환경단체들과 간담회 등의 활동을 한 뒤 귀국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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