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19일 발생한 채 상병 사망 사건의 현장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보문교 일대다. 영주댐에서 직선거리로 17㎞ 아래 내성천이다. 집중호우가 이어지자 영주댐은 7월15일 초당 방류량을 552t까지 늘렸고, 국가지정 명승지인 회룡포(예천군 용궁면)까지 물에 잠겼다. 물에 휩쓸린 실종자도 여럿 발생했다. 7월14~16일 봉화와 영주의 강우량은 300㎜대였다.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이보다 100㎜나 많았다. 회룡포는 잠기지 않았다. 댐의 홍수 조절 기능은 수위가 한계에 이르면 정반대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반면, 모래강의 자연 저수와 배수는 한결같다.
영주댐 아래 내성천도 그때의 내성천은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류로부터 모래의 유입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무섬마을(영주시 문수면)과 회룡포는 해마다 덤프트럭 수십 대 분량의 모래를 새로 붓고 트랙터로 골라 관광지의 외양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 모래 유입이 줄면서 영주댐 아래쪽은 고루 평평했던 하상에 몇 미터씩 단차가 생겼고, 물길은 한쪽으로 쏠리며 깊고 빨라졌다. 황토물로 뒤덮인 내성천에 들어 도보로 실종자를 찾는 건 현지 주민에게도 눈 가리고 허방(땅바닥이 움푹 패어 빠지기 쉬운 구덩이) 위를 걷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터다.
영주댐이 건설되기 전 내성천은 110㎞ 어느 구간이든 바지만 걷으면 물에 들어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댐 위쪽은 먼발치에서 강을 내려다보거나 수면 가까이 내려가 붕어 낚시를 할 뿐, 물 안으로 들 수는 없다. 자갈이 드러난 댐 아래쪽으로는 발 지압 삼아 걷는 이조차 볼 수 없다. 예외가 없지는 않다. 수자원공사는 상류에 이따금 모터보트를 띄우더니 언제부터인가 보트 뒤에 줄을 매달아 수상스키까지 띄우고 있다. 모터보트와 수상스키가 녹조 물을 휘날리며 연출하는 풍경은 이 지역 정·재계 실력자들이 오래 꿈꿔온 미래 조감도다.
영주댐 준공이 승인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2023년 9월12일, 영주시는 1조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해 영주댐 관련 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박남서 영주시장은 “영주댐을 관광시설과 체험 공간뿐만 아니라 친수 레포츠 공간을 갖춘 문화관광산업의 큰 축으로 조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제 영주댐의 쓸모는 라스베이거스가 들어설 당시 미국 네바다 사막과 같다. 낙동강 본류에 1급수를 공급하겠다던 목표를 새삼 거론하는 이는 없다. 물은 허접한 알리바이이고, 수질을 개선하겠다며 해마다 퍼붓는 사업비(2024년 175억원)는 덤이다.
2024년 5월31일 영주댐을 찾았을 때, 평일인데도 자전거로 주변을 오가는 이들이 보였다. 전문적인 복장과 장비를 갖춘 이들은 잘 정비된 전용도로를 따라 한껏 속도를 높였다. 댐 옆 산자락에 들어선 오토캠핑장에는 캠핑카들이 보였다. 캠핑장 옆 산비탈에 조성된 높이 61m의 인공폭포에서는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폭포 이름은 ‘금강비룡폭포’였다. 지율 스님은 “일전에 함께 들른 이가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걸 봤다. 댐을 짓기 전 비경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더라”라고 했다. 자전거족과 캠핑족의 심미안도 어렵잖게 짐작이 갔다.
“내성천과 영주댐에 대해 설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스님의 말도 일차적으로는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성싶다. 댐 공사가 시작될 무렵인 불과 15년 전의 풍경을 소환하려 해도 당장 토목으로 구축한 볼거리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고대 유적지에서 옛 왕조를 소환하는 일이 외려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스님 말의 이차적인 맥락은 비가시적인 것에 닿아 있다. 지난 15년은 거짓 위에 거듭 거짓을 얹어 거대한 거짓의 성채를 쌓는 과정이었다. 사업비 1조원대의 관광사업 계획 앞에서 애초 댐 건설 명분을 소환하려면 겹겹의 거짓을 벗겨야 한다.
그나마 용이한 접근 방법은 수식적인 접근이다. 2022년 8월 <한국거버넌스학회보>에 실린 ‘외부효과를 고려한 영주댐 사업의 사후 경제성 평가’(강미랑·김지혜·정수빈)는 영주댐 건설에 대한 사전 비용편익 분석을 검토하고 재분석했다. 논문은 2017년 기준으로 영주댐 관련 총비용을 1조2961억원(건설비 1조1천억원, 수질 악화 1836억원, 녹조로 인한 외부비용 125억원 등)으로 평가했다. 편익은 469억원(생활·공업용수 공급 편익 282억원, 발전 편익 187억원)이었다. 그 결과 순편익은 1조2492억원 적자, 비용 대비 편익은 0.036으로 나왔다.
같은 논문이 비판적으로 검토한 2008년 사전 비용편익 분석(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비용 대비 편익이 1.105였다. 크게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그런데 전체 편익(7236억원) 가운데 수질 개선 편익(6440억원)의 비중이 무려 89.6%를 차지했다. 낙동강 본류에 1급수를 공급하는 것이 비용편익 산출에 얼마나 결정적인 근거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댐 건설 이후 내성천은 외려 수질이 악화했다. 댐 하류도 다르지 않았다. 무섬마을 앞에서 만나는 내성천과 서천의 물빛은 각각 짙은 녹색과 모래빛으로 확연하게 대조된다. 논문은 50년간 영주댐을 유지할 때 들어갈 외부비용을 1961억원으로 셈했다.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손해라는 얘기다.
9년을 사이에 두고 나온 경제성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둘 다 전문가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토건족’이라는 표현은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흔히 건설자본만 떠올리지만, 정치인-건설자본-관료의 ‘삼각 카르텔’을 가리킨다. 그런데 토건족에게는 제3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다. 다만 그들의 역할에 비해 존재는 쉽게 간과된다. 모든 전문가가 토건족의 이해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적잖은 전문가가 공적 발언이나 활동과 사뭇 다른 연구 용역을 수행한다. 공적 발언과 활동은 외려 용역 결과의 이미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영주댐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때 중요한 전기를 맞는 듯 보였다. 환경운동가 출신 유명인사가 환경부 장관에 임명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착수하는 모양새도 취했다. 2019년 3월 당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영주댐 문제를 묻는 기자에게 “전문가, 주민들과 거버넌스를 구성해 함께 해결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2020년 1월 이른바 ‘영주댐 협의체’가 출범했다. 조 장관이 말한 그 거버넌스였다. 환경부는 “영주댐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검증하고 처리 원칙과 절차 등 공론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연찮은 대목들이 보였다. 2017년 담수를 포기했던 영주댐은 거버넌스 출범 직전인 2019년 9월 시험 담수를 명분으로 다시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또 거버넌스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로, 이미 시작된 영주댐 모니터링 용역(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을 연계한 활동이 들어갔다. 댐 담수가 이미 시작되고 전문 연구자 그룹도 구성된 상태에서 환경단체 인사들이 참여하는 모양새였다. 10년째 쉬지 않고 내성천과 영주댐을 모니터링해온 지율 스님 같은 이에게는 접촉조차 없었고, 외지인이 지역 대표로 들어가기도 했다.
활동 기간 2년이 종료되기 두 달 전인 2021년 10월, 환경단체 인사들은 영주댐 방류 요구가 묵살된 것을 문제 삼아 거버넌스에서 탈퇴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영주댐 담수를 중단시키지 못했고, 모니터링 용역에도 관여하지 못했다. 거버넌스는 가도 전문가들의 용역은 남았다. 2023년 말, 영주댐 모니터링 용역 결과에 대한 질의에 환경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답변했다. 영주댐 준공 승인이 나고 영주시가 1조원대 개발사업의 풍선을 띄우고도 몇 달이 지난 뒤였다.
모니터링 연구 용역만 진행 중인 건 아니다. ‘내성천의 친구들’의 현장 모니터링도 여태 현재진행형이다. 거버넌스에서 논의 한 번 되지 않은 제비 숙영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내성천과 영주댐 또한 현재진행형일 터다. 지율 스님은 내성천이 살아 있는 것들의 ‘안식처’로 남는 것에 대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5년 동안 쉬지 않고 내성천을 살펴온 이의 ‘촉’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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