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은 복합폐기물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분리수거 되겠거니 생각하지만 95%가 폐기돼 소각되거나 매립됩니다.”
2023년 8월2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한 아파트 단지. ‘동네창작소’란 이름의 공유공간에서 열린 강연에 주민 7명이 참여했다. 모두 고장 난 장난감을 자주 상대해야 하는 양육자들. 책상 위엔 각종 장난감과 공구가 놓였다. 장난감 수리 이론과 실습을 가르치는 ‘장난감병원’ 교육과정이다. 박성원 ‘장난감발전소’ 대표가 준비한 강의 화면을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플라스틱은 자연분해에 500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상아로 만들던 당구공을 대체하려 1869년 처음 발명된 플라스틱조차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죠. 장난감을 버리지 않고 수리해서 다시 쓰는 건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한 중요한 환경 교육입니다.”
박 대표의 장난감발전소는 ‘장난감 순환’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장난감 수리부터 고장 나거나 버려진 장난감을 기부받아 수리·세척한 뒤 필요한 곳에 다시 기부하는 일까지. 수리가 불가능하면 분해해서 소재별로 분류해 보관했다가 다른 장난감 수리 때 부품으로 쓰거나 재활용한다.
화면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새활용(업사이클) 장난감이 나타났다. 흔한 블록 장난감이지만 색깔이 섞여 흐르는 듯한 겉모습이 독특했다. 비슷한 색의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녹여 만들었다. 같은 재질의 새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목걸이, 곰인형 모양의 열쇠고리도 등장했다. 알록달록한 색색의 열쇠고리가 “버려진 생수병 뚜껑으로 만든 것”이란 설명에 수강생들에게서 짧은 감탄이 나왔다.
다음은 장난감 수리 장비를 설명할 차례. 시작은 납땜이다. 박 대표가 인두기와 핀셋, 인두기 클리너, 거치대 등을 보여줬다. “땜질을 위한 납은 연기가 적은 무연납을 주로 씁니다. 한데 접착력을 보강하려고 집어넣은 ‘플럭스’란 물질이 인체에 해로워요. 납땜할 땐 연기흡입기를 쓰거나 창문을 열고 하셔야 해요. 손에 묻은 납은 잘 씻으시고요.”
나사와 전동공구 사용법으로 이어졌다. 전동드라이버의 회전 부위에 끼워 넣어 나사를 죄거나 풀 때 쓰는 팁(비트)은 길이가 긴 게 좋다. 나사가 좁고 깊숙한 곳에 있을 때가 잦기 때문이다. 팁은 나사와 꼭 맞는 걸 써야 나사 머리가 마모되지 않는다. 나사는 풀어낸 순서대로 정렬한다. 그래야 다시 조립할 때 헛갈리지 않는다. 나사가 많으면 나사를 담을 작은 통과 자석이 필요하다.
슬슬 낯선 장비가 등장했다. 먼저 멀티미터(멀티테스터). 여러 측정 기능이 있는 전자계측기인데, 장난감과 관련해선 건전지에 전기가 남았는지, 건전지 끼우는 곳에 전기가 제대로 흐를 수 있는지 확인할 때 쓴다. 멀티미터의 회전 스위치를 전압측정 모드로 놓고 연결된 두 가닥 전선(팁)을 건전지 양 끝에 대어본다. 빨간색 선이 플러스, 검은색 선이 마이너스다. “전압이 1.5V(볼트)보다 높으면 건전지는 쓸 만한 겁니다.” 책상 위 교재로 놓인 건전지에 색을 맞춰 팁을 대보았다. 1.6V가 나왔다. 확실히 새 건전지였다.
“장난감이 의외로 하는 일이 많아요. 말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고. 건전지 전압은 1.5V 이상이어야 하고 두 개를 넣으면 3V 이상 나와야 합니다. 한데 그 밑으로 나오면 빼내서 시계나 리모컨에 쓰면 돼요. 아주 단순한 일은 낮은 전압으로도 괜찮거든요.”
‘아, 그동안 건전지 괜히 버렸네!’ 짧은 탄식들. 장난감이 많은 집은 그만큼 건전지가 쌓이게 마련. 이번엔 ‘도통검사’다. 두 물체의 전기적 연결을 확인하는 일이다. 멀티미터 스위치를 와이파이(Wi-Fi) 문양 비슷한 곳에 맞추면 도통검사 모드가 된다. 박 대표에 의하면 장난감 고장의 태반은 의외로 건전지가 다 된(전압이 떨어진) 것이고, 그다음 잦은 문제는 오래 쓴 건전지의 누액이 장난감 내 건전지 접촉부를 부식시킨 경우다. 멀쩡한 건전지를 넣어도 전기가 흐르지 않아 작동이 안 된다. 도통검사를 할 땐 멀티미터 팁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바꾼다. 접촉부인 판(플러스)과 스프링(마이너스)에 접촉했을 때 멀티미터 바늘이 움직이지 않으면 전기가 흐르지 않는 것이다. 녹 제거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다음은 스피커. 당연한 말이지만, 소리가 나는 모든 장난감엔 스피커가 들어 있다. 불은 들어오는데 소리가 안 나면? 바로 스피커 고장을 의심해야 한다. 스피커는 단자가 4개다. 뭐 하는 단자인지는 알 것 없고 플러스, 마이너스 구분도 불필요하다. 건전지에 전선을 연결한 뒤 다시 스피커의 단자 4곳에 이렇게도 대보고 저렇게도 대보다 어느 순간 ‘지직’ 소리가 나면 정상이다. 아니라면 무언가가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주로 기판에 쌓인 먼지 탓이다. 이럴 땐 ‘접점부활제’가 필요하다(사야 할 물건이 는다). 접점부활제는 여러 전자제품 기판 수리에 쓰인다. 게임기 조이스틱이나 리모컨 스위치 고장에도 쓴다.
‘국민템’ 장난감별 대처법도 등장했다. “‘에듀테이블’은 10개 중 6~7개는 앞서 말씀드린 건전지 문제예요. 그게 아니면 기판 고장이고요. 기판에 금이 간 경우는 납땜해야 하고.” “‘피아노버스’ 스피커는 단선이 잘 돼요. 자석이 떨어지기도 하죠.” “‘로보카 폴리’는 전선이 끊어진 사례가 많아서 피복을 일일이 벗겨서 연결합니다. 이후 글루건으로 접착하고요.”
뒤로 갈수록 점점 복잡해졌다. ‘꿀팁’스러운 부분 중심으로 옮겨본다. “메인보드 고장은 단선과 부품 불량, 먼지 등의 이물질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로봇의 팔다리 같은 작동부는 단선이 주로 문제고요. 위치 이탈, 이격 등이 원인일 때도 있어요.” “모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접점부활제나 윤활제로) 청소하면 살아나기도 합니다.” “건전지 스프링을 끼울 때 손으로 하기 힘들면 롱 노즈(끝이 가는 모양의 물건을 붙잡는 공구)를 쓰세요.” “플라스틱이 부러진 경우는 순간접착제를 쓰되 다시 그 위에 베이킹파우더를 바르고 다시 접착제를 쓰면 훨씬 더 딱딱하게 붙어요.” “수리는 50%가 공구발이에요. 나머진 경험치고요. 자주 접해봐야 실력이 늡니다.” 박 대표의 말이 아득해져갔다.
실습에 들어간 수강생 7명은 아파트 공용육아방(‘키움방’)에서 가져온 고장 난 장난감을 붙잡고 씨름했다. 박 대표의 말처럼 단지 건전지를 갈아 끼운 것만으로 장난감을 부활시킨 사례가 다수였다.
해마다 버려지는 장난감에 관해선 정확한 통계가 없다. 240만t에 달하며 순환·재사용되는 장난감은 40% 미만에 그친다고 알려졌다. 전체 플라스틱양은 급속히 늘고 있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낸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 보고서를 보면, 2000년 1억5600만t이던 플라스틱 쓰레기양은 2019년 3억5300만t으로 2배 넘게 늘었다. 40년 뒤인 2060년엔 10억1400만t으로 다시 3배 늘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면 여전히 재활용률은 9%(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절반은 매립되고, 19%가 소각된다. 22%는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환경으로 유출된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들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성인 한 명당 매주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섭취하고 있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카드 한 장의 무게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양만큼 막대하다. 폐장난감을 순환시키는 일이 중요하지만 아무런 제도적 대책이 없다. 국내에선 박 대표의 장난감발전소를 비롯해 코끼리공장, 그린무브공작소(코끼리공장이 현대차그룹과 함께 설립), 토이픽스, 트루 같은 사회적기업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이 활동하면서 극히 일부의 장난감을 순환시킬 뿐이다. 가장 규모가 큰 코끼리공장의 2022년 매출이 29억원으로, 4500곳의 아동보육기관·학교 등과 협약해 폐장난감을 기부받아 일부는 수리해 기부하고 일부는 재생소재로 만든다. 폐장난감은 노약자가 사용하는 안전손잡이, 방열판(이상 코끼리공장), 다용도 판재인 플라스틱 널(트루)로 다시 태어난다.
장난감발전소가 주로 활동하는 남양주시는 2023년부터 장난감병원을 상설화했다. 남양주시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시내 4곳의 장난감도서관에서 두 달에 한 번 이벤트 형식으로 장난감병원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9월부터 다산점에 상설 병원을 열고 2024년엔 화도점으로 확대한다. 양육자를 상대로 한 ‘장난감 수리 학교’도 꾸준히 연다. 남양주시처럼 장난감도서관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장난감병원 형태의 폐장난감 순환 모델을 도입했지만 이제 막 확산하는 단계다. 갈 길이 멀다.
김학진 충남대 교수(화학과)는 최근 계간 <녹색평론> 기고글에서 이렇게 썼다. “생태계에서 다른 어떤 생물에게도 쓸모없는 폐기물, 그야말로 쓰레기를 만드는 생물은 인간 말고는 없다. 생태계에선 무수히 많은 종이 서로 엮여 커다란 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데 어떤 쓰레기를 처리할 생물학적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즉 생명의 순환 고리에 포함된 방식이 없다면 그로 인해 인류는 물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은 위협받을 것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연인이던 군무원 살해한 장교는 38살 양광준
경희대 교수·연구자 226명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전문]
‘뺑소니’ 김호중 징역 2년 6개월…법원 “죄책감 가졌는지 의문”
민주 “윤, 시정연설 이틀 전 골프…틀통나자 트럼프 핑계, 거짓말”
대구 어르신들도 윤 대통령 말 꺼내자 한숨…“남은 임기 답답”
아이돌이 올린 ‘빼빼로 콘돔’…제조사는 왜 “죗값 받겠다” 했을까
‘해품달’ 송재림 숨진 채 발견…향년 39
눈먼 강아지 살린 37살…그 따뜻한 심장, 세상에 두고 간 천사
일론 머스크, 미 ‘정부 효율부’ 수장 발탁
[단독] 명태균이 받았다는 ‘김건희 돈’ 어떤 돈...검찰 수사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