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3년7개월 동안 검증, 검토해서 결정한 금강, 영산강 5개 보 처리 방안을 윤석열 정부에서 15일 만에 뒤집었다. 22조원의 정부 예산을 낭비하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돌과 후유증을 일으킨 4대강 사업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물, 하천 정책에 대한 최고 심의, 의결 기구인 국가물관리위원회(이하 국가물위)는 2023년 8월4일 본회의를 열어 2021년 1월 스스로 확정한 ‘금강, 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취소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국가물위는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의 죽산보를 해체하고, 금강의 백제보와 영산강의 승촌보를 상시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국가물위는 “2023년 7월20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 보 처리 방안 마련 과정에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항들이 다수 지적됐고, 환경부 장관이 보 처리 방안의 재검토를 국가물위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또 보 처리 방안이 취소됨에 따라 국가물위는 이 내용이 포함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년)을 변경하기 위해 8월 중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번 국가물위의 결정은 보름 전인 7월20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와 그에 따른 환경부의 조처에 따른 것이다. 당시 감사원은 첫째로 “(2019년 2월이라는) 국정과제의 처리 시한을 이유로 타당성, 신뢰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방법을 사용해 경제성 분석을 불합리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둘째로 “4대강 조사평가단의 전문위원으로 추천받은 전문가 명단을 특정 시민단체에 유출하고, 해당 단체가 추천한 인사 위주로 위원을 선정하는 등 불공정하게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후속 조처로서 감사원은 “환경부는 과학적, 객관적 분석(모델링) 결과가 금강, 영산강 보 처리 방안에 반영될 방안을 마련하고, 특정 시민단체가 4대강 조사평가단의 위원 선정에 관여하도록 허용한 관련자에 대해 수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감사원의 결정에 많은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환경부의 4대강 조사평가단은 보 해체의 비용 대비 편익(B/C)을 분석하기 위해 ‘보 설치 전 자료’와 ‘보 개방 뒤 자료’를 활용했는데, 감사원은 ‘모델링’을 사용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석 과정에서 모델링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금강, 영산강과 달리 모델링까지 적용한 2021년 12월 환경부의 한강, 낙동강 보 처리 방안 연구 결과를 보면 ‘보 설치 전 자료’와 ‘모델링’을 활용한 분석 결과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모델링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방법은 아니며, 보 설치 전 자료도 비용 대비 편익을 분석하는 데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위원으로 활동한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좀더 정확한 추정을 위해 모델링을 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전문가들은 모델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위원회가 분석 방법을 선택할 재량권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4대강 사업의 보 처리’ 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을 사용한 것이 타당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비용 대비 편익은 어떤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방법인데, 국가의 중요 과제인 하천 정책 결정을 경제성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는 “4대강 문제 처리를 환경부 산하 위원회에 맡기거나 경제성 분석에 따르도록 함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권한과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위원회의 의견을 듣거나 경제성 분석을 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정치 영역에서 하는 것이 맞는다. 그래야 대통령이나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위원회, 전문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환경단체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점이 불공정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처음부터 조사평가단이나 기획위, 전문위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 시정하려고 만든 조직이기 때문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로서 그 처리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사평가단의 위원회는 찬반을 동등하게 다루는 공론화위원회가 아니었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해소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하기 위한 위원회였다. 이미 감사원조차 4대강 사업 2~4차 감사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위원회를 찬반 인사 절반씩으로 구성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감사원의 이런 무리한 감사 결과를 빌미로 환경부와 국가물위가 훨씬 더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7월20일 오후 2시 감사원의 발표와 동시에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후속 조처를 발표했다. 첫째 ‘금강, 영산강 보 처리 방안’의 재심의를 국가물위에 요청한다, 둘째 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은 금강, 영산강 보 처리 방안 결정에 모델링을 반영하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환경부는 금강, 영산강 보 처리 방안 자체를 취소해버린 것이다.
한경국립대 건설환경공학부 백경오 교수는 “감사원은 환경부에 보 처리 방안을 재심의하라거나 물관리 기본계획을 변경하라고 요구한 일이 없었다. 감사원법 제33조를 보면, 감사원이 시정, 주의를 요구했을 때 해당 기관은 이를 이행해야 한다. 환경부의 이런 잘못된 후속 조처는 제33조를 위반한 것으로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시작해 15년째 논란 중인 4대강 사업이 다른 선진국들의 하천 정책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1912~2022년 2016개의 불필요한 댐을 철거했고, 2018년엔 무려 111개의 댐을 철거했다. 유럽에서도 2022년에만 325개의 댐을 철거했다. 강 생태계를 살리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한 좋은 대응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철재 부위원장은 “유럽과 미국에서 불필요한 댐을 철거할 때 한국에선 4대강 사업으로 불필요한 댐을 16개 이상 새로 건설했다. 국제적 흐름이나 기후위기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이젠 하천 정책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물위의 간사위원을 지낸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물, 하천 정책에 두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는 대통령이 물 정책을 잘 모르니 전문가와 관련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내용을 잘 모르면서 구체적인 지시를 하면 큰 혼란이 일어난다. 둘째는 홍수나 가뭄 등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전 정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대책을 진지하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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