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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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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첩 돌아온 금강, 4대강의 미래될까

재자연화 속도 내지만 환경부·지방자치단체 보 제거에 유보적…
부여군수는 “당장 어렵다면 상시 개방해야”
등록 2020-09-19 14:21 수정 2020-09-23 10:45
‘금강의 요정’ 김종술(왼쪽)씨가 9월11일 오후 충남 부여군 백제보 상류에 있는 왕진교 아래쪽에서 전종휘 기자한테 금강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김씨가 손으로 가리키는 30㎝ 높이 자갈층은 지난 장마 때 쓸려와 모래톱 위에 쌓인 것으로, 수문 개방 뒤 계속 살아 움직이는 강의 모습을 보여준다.

‘금강의 요정’ 김종술(왼쪽)씨가 9월11일 오후 충남 부여군 백제보 상류에 있는 왕진교 아래쪽에서 전종휘 기자한테 금강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김씨가 손으로 가리키는 30㎝ 높이 자갈층은 지난 장마 때 쓸려와 모래톱 위에 쌓인 것으로, 수문 개방 뒤 계속 살아 움직이는 강의 모습을 보여준다.


금강이 다시 돌아왔다. 보에 가로막힌 물길을 조금 텄을 뿐인데 눈부신 금빛 모래밭이 펼쳐지고, 흰목물떼새와 흰수마자가 집을 짓고 모습을 드러냈다. 수달과 삵, 금개구리, 맹꽁이도 앞다퉈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한겨레21>은 세종보∼공주보∼백제보 구간을 직접 걸으며 생명을 되찾아가는 금강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했다.

강은 그저 흐르게만 해도 본래 모습을 금세 되찾는다. 강바닥을 6m씩이나 파내고 3개의 산성 같은 보를 쌓았지만, 잔잔한 물결과 거친 홍수를 겪으며 금강은 이명박 정부가 낸 상처를 스스로 치유 중이다. 4대강 가운데 가장 먼저 모든 보 수문을 개방한 금강의 오늘은 다른 3개 강이 곧 되찾아야 할 ‘앞서 온 미래’다.

그러나 금강이 되찾은 미래도 아직 불완전하다. 물길을 가로막은 보를 완전히 없앤 것이 아니라, 보의 수문을 잠시 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환경단체들과 함께 4대강에 생명과 자유를 돌려주기 위해 수문을 열고 경제성을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에 세워진 16개 보의 운명이 결정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금강의 세종보는 해체, 공주보는 보 해체와 다리 유지, 백제보는 상시 개방, 영산강의 죽산보는 해체,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보수 언론의 악의적 공격, 지방정부와 주민들의 우려, 선거를 의식한 정부의 더딘 행보로 인해 이 계획은 1년6개월째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금강과 영산강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지는 물관리위원회에서 곧 결정한다.

그나마 되살아날 기회를 얻은 금강, 영산강과 달리 한강과 낙동강은 아직 보의 수문조차 열지 못했다. 한강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낙동강은 지역주의로 인해 오늘도 가슴 답답하게 막혀 있다. 특히 영남인 1300만 명의 식수원인 낙동강에는 8개 보 탓에 독성 물질인 녹조가 해마다 가득 피어난다. 금강과 영산강, 한강, 낙동강이 다시 흐를 날은 올 것인가._편집자주

다섯 발가락 끝엔 뾰족하게 파인 자국이 선명하다.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갈퀴 문양이 남은 것으로 보아 수달의 발자국임이 틀림없다. 발자국은 뭍을 향했다. 수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간밤에 물고기 사냥을 벌인 뒤 집으로 향하며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 주변 펄 위에 왜가리의 기다란 발가락 세 개가 부채꼴로 어지럽게 새겨 있다. 가득 차 고인 물을 흐르게 한 지 2년이 지난 금강에 생명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는 사람이 아니라 족제비과의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330호 포유류와 황새목에 속하는 조류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10호 태풍 하이선이 동해안을 할퀴고 지나간 지 나흘이 지난 9월11일, 세종시 세종보 하류 풍경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온했다.

전면 개방 전 썩어가던 펄

“이 펄은 이번 태풍 때 물이 차면서 들어온 거예요. 세종보 수문을 개방하기 전엔 이 일대가 다 이랬다고 보면 돼요.” 이날 금강 취재 안내를 맡은 환경운동가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바지장화를 입은 채 물에 들어가 두 손으로 물속 펄을 퍼올린 채 말했다. 2018년 1월 세종보를 전면 개방하기 전엔 고인 물에 쌓인 펄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매일 금강 유역으로 출퇴근하며 환경 파수꾼 역할을 하느라 ‘금강의 요정’이란 별명이 붙은 김 기자가 한가득 들이민 펄에 코를 대고 킁킁댔다. 지독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쌓인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 곳곳에 모래가 쌓여 이룬 작은 하중도들이 눈길을 끈다.

세종보를 지나 상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넓은 모래밭이 펼쳐졌다. 입자가 곱기보단 다소 거칠다. 그래서 행정도시 건설 전 충남 연기군이던 이곳의 굵은 모래는 기와공장에서 가져다 쓰고 이곳보다 하류 쪽인 공주시 쪽 고운 모래는 마감용 미장 재료로 쓰였다. 이명박 정부 때 강바닥을 파내고 거대한 보를 쌓아 물길을 막은 4대강사업 이후 자취를 감춘 한반도 고유종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흰수마자. 그 민물고기가 2019년 세종보 하류 쪽에서 다시 발견된 것은 보 전면 개방과 떼어내 설명할 수 없다. 모래는 흰수마자의 놀이터이자 산란장이다. 역시 같은 멸종위기 1급 노랑부리백로도 이 일대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환경부가 9월11일 발표했다.

세종보에서 금강하구 방향 하류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주보 상류 1㎞ 지점 고마나루에 이르자 공주보를 향해 길게 늘어선 모래밭이 펼쳐졌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 장마 전까지만 해도 공주보 개방 이전에 쌓인 펄과 잡초가 가득했던 곳이다. 큰물이 지며 모래가 펄을 덮었다. 2019년 장마 땐 올해처럼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여기 수달 배설물이 있네요.” 김 기자가 모래사장 위 작은 똥과 오줌의 흔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달은 배설과 함께 영역 표시를 위해 바위나 자갈밭 등에 흔적을 남긴다. 둔치 쪽 작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살에 금빛 모래알이 재잘재잘 흐르며 펄을 서서히 덮고 있었다. 이 부근에서도 올해부터 흰수마자가 발견돼 강이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음을 재차 증명했다. 강은 본디 물이 흐르는 곳이고, 그 흐름을 그대로 두면 강 스스로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간명한 진실을 수줍게 알리는 장면처럼 보였다.

사진 류우종 기자,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 대전환경운동연합

사진 류우종 기자,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 대전환경운동연합


흰목물떼새, 노랑부리백로, 금개구리…

후드득. 빗방울이 내린다. 다시 차를 달려 도착한 공주보 아래 700여m 지점에 있는 유구천 합수부. 4대강사업 이후 섬진강에 가야 볼 수 있는 정도의 거대한 모래밭이 펼쳐졌다. 고운 모래 위에 맨발을 딛고 걷는 촉감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저 멀리 백로 한 마리가 얕은 물가에 긴 다리를 곧게 뻗은 채 서 있다. 김 기자가 물에 잠긴 모래밭을 살살 뒤집자 작게는 쌀알만 하고 큰 것은 새끼손톱만 한 재첩이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물에서만 사는 재첩은 30여 년 전 금강하굿둑을 쌓은 뒤 점차 모습을 감추다 2년6개월 전 공주보를 개방한 뒤 다시 금강에 출현했다. 둘이서 20여 분 만에 20마리 넘는 재첩을 채취할 수 있었다. 물속에 풀어준 재첩들이 아주 느릿하게 다시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엇이 급하냐는 듯.

2018년 1월과 3월 세종보와 공주보를 전면 개방한 뒤 금강은 다시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환경부는 9월11일 낸 자료에서 세종보와 공주보의 모래톱이 개방 이전과 비교해 축구장 면적 74배인 52만7천㎡ 늘고, 풀이 자라는 수변공간은 무려 115배에 해당하는 81만9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모래톱은 각종 어류와 조류, 저서생물의 생존공간이란 점에서 그 귀환의 의미가 작지 않다. 노랑부리백로를 비롯해 모래와 자갈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흰목물떼새가 세종보와 공주보 일대에 널리 서식하는 사실도 확인됐다.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도 발견됐다.

3년여 전까지 이 무렵이면 극심하게 반복되던 녹조 현상은 2019년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날 오후 늦게 찾은 백제보 상류 지점에선 녹조를 볼 수 없었다. 예전엔 가장 심한 녹조로 이른바 ‘녹조라떼’가 더위와 함께 창궐하던 곳이다.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유해 남조류가 번성할 만한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이다. 세종보와 공주보 쪽에 비해 확연히 물흐름이 느린데도 그렇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물환경정보시스템’에 접속하면 조류경보제 발령 기준을 금강의 3개 보 구간에 대입해 연간 ‘관심’ 단계(1천∼1만cells/mL) 이상 발령 일수를 추산한 자료가 나온다. 보 개방 전인 2017년엔 세종보 70일, 공주보 86일, 백제보 98일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 개방 이듬해인 2019년엔 세종보 0일, 공주보 14일, 백제보 21일로 줄더니, 2020년 들어 6월 말까지 한 차례도 관측되지 않았다. 이런 수치는 수문 개방 뒤 공주보 쪽은 물흐름 속도가 최대 232%, 세종보 쪽은 최대 82% 늘었다는 정부 발표와 맥을 같이한다. 조류경보제는 금강 유역의 경우 상수도 취수원이 있는 대청댐과 용담댐 상류 지역만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그 하류에 있는 세종보나 공주보 등 나머지 지역은 수치를 대입해 추산해야 한다.

네 차례 “보 효용 없음” 결론

이처럼 보 수문을 개방하는 것만으로도 금강은 예전 모습을 스스로 되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19년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는 세종보를 완전 해체하는 안을 제시했다. 또 공주보는 차량이 다니는 맨 위쪽 공도교는 남긴 채 보 기능을 하는 구조물을 부분 해체하도록 했다. 보 해체의 경제성을 확인하지 못한 백제보는 상시 개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감사원 감사와 이듬해 4대강 조사평가위 발표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17년 감사원 감사 등을 거쳐 모두 네 차례나 국가기관의 검토 결과 보의 효용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 해당 보를 개방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과감하게 보를 해체해 4대강사업 이전으로 강을 되돌릴지를 둘러싼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2019년 8월 환경부에서 결정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물관리위원회는 1년 넘게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금강 쪽 3개 보 처리 관련 결정의 한 축을 맡은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9월25일께 회의를 열어 최종 의견을 정리한 뒤 국가물관리위에 보고할 계획이나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유역위원회의 입장이 정리될 수준에 와 있긴 한데, 아직 42명 위원 가운데 절반가량은 의견을 내지 않은 상황이라 결론이 날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고 말했다.

보 해체를 둘러싼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유보적인 태도는 속도감 있는 재자연화 논의의 ‘브레이크’로 작동한다. 세종보가 있는 세종시는 보 해체 뒤 금강 수위가 내려가면 경관이 안 좋아진다는 일부 주민의 반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시민 의견이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린 상황에서 바로 철거하는 것은 일을 되레 시끄럽게 할 수 있다”며 “세종보가 이미 철거와 다름없는 상시 개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시간을 두고 하천 자연성 회복 측면과 하천 유지 관리, 도시 유지용수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주보 철거에 부정적인 공주시는 6월 유역물관리위원회에 쌍신지구 지표수 보강개발, 우성지구 농업용수 공급, 금강생태교육관 설치 등 10개 요구안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충남도는 최근 ‘금강 뱃길 사업’을 하겠다며 금강 일부 구간 준설 계획을 밝혀 대전충남녹색연합 등 지역 환경단체에서 “착한 준설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9월11일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금강 수면 위로 내려앉고 있다.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9월11일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금강 수면 위로 내려앉고 있다.


농업용수 문제 걸려 있어

반면 백제보 남쪽 기초지자체인 부여군은 보 해체에 적극적이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이명박 정부 주장처럼 보가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백제보 철거에 찬성한다. 당장 어렵다면 상시 개방해야 한다. 다만 보 주변 수막재배 농가를 위한 농업용수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농가는 지하수를 뽑아 두 겹의 비닐하우스 사이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겨울철 난방 문제를 해결하는데, 백제보 개방에 따른 지하수위 감소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5월부터 개방을 시작한 백제보 수문을 10월 이후에도 계속 개방할지 고민 중이다. 지난겨울엔 백제보 수문을 닫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9년 이 일대에 119개 관정을 판 데 이어, 올해 39개를 추가로 뚫었다. 금강과 낙동강 지하수 연구용역에 참여한 바 있는 구민호 공주대 교수(지질환경과학)는 “지하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데, 낙동강은 여러모로 어렵지만 그나마 금강 쪽은 관정을 더 뚫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강 3개 보 완전 개방이라고 하나, 그건 30∼40%에 불과한 가동보에 국한된 얘기이고 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고정보는 그대로예요. 그 정도 개방에도 금강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며 옛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을 보면 경이로워요. 경제성조차 확인되지 않은 보를 조속히 철거해 금강이 다시 온전히 흐르는 걸 보면 좋겠어요.”

비 내리는 백제보를 바라보며 ‘금강의 요정’이 말했다.

세종·공주·부여=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표지이야기-금강은 4대강의 미래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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