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어릴 때부터 난 병원을 싫어했다. 위생을 강요하는 듯한 강박적인 흰색이나 친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위압적인 의사의 언행, 코끝을 찌르는 병원 특유의 냄새들이 끔찍했고 무엇보다 삶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환자들의 건조한 표정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아파 드러누워도 어떻게든 혼자 끙끙대며 견뎌낸다. 병원에 관한 나의 특이한 이력은 남한에서 태어난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했을 듯한 비뇨기과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짐작하다시피 이 말은 아직 포경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포경수술 하면 또래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 손에 끌려가 ‘어른이 되는’ 수술을 받고 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수술 뒤 아이들은 1, 2주 동안 통증으로 제대로 걷질 못하고 뒤뚱뒤뚱 잰걸음질했다. 일찍이 아이들의 공포스런 수술괴담과 수술 뒤의 고통을 지켜봤던 내가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포경수술을 해야 한단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리고 겁에 질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활고에 찌든 부모님도 수술비를 댈 여력이 없었는지 ‘고래 잡자’는 얘길 꺼내시지 않아 마음 편히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치 유년의 통과의례처럼 치러지는 수술을 받지 않은 난 수치심을 벗어던지기 힘들었다. 그것은 귀두의 포피를 떼어내지 않았다는 소외감이 가져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우스꽝스런 자기검열이었다.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며칠 전 어느 시트콤에서 포경수술을 한 아이와 하지 않은 성인의 대화에서 아이는 그 나이가 되도록 수술을 하지 않은 그를 “아직 남자가 되지 않았다”고 비웃으며 어른 행세를 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는 그보다 우위에 선 어른이었다는 점, 남자가 되는 의례로 이야기되는 포경수술에서 난 그동안 지녀온 수치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중학교 시절 반의 아이들이 수술 전후의 성기 형태를 나타내는 ‘UFO’와 ‘돌고래’라는 은어로 “넌 아직도 돌고래냐?”라며 냉소할 때부터 그랬다. 이슬람교의 할례는 여성을 억압하는 포경의 경우지만, 남성의 경우는 포피를 절단해 드러난 귀두의 탱탱함이 남성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고개 숙인 ‘돌고래’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성기를 상징한다. 알다시피 남성들에게 성기는 ‘자존심’을 세우는(!) 도구다. 더 굵고 딴딴하게 발기할수록 자신의 자존심을 추켜세울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남성들은 기괴하리만큼 그에 집착한다. 내가 보기엔 무자비하게 크게 발기한 성기가 남근사회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듯해 징그럽기만 한데 말이다. 게다가 섹스할 때 흡입하는 상대방에게 가하는 통증은 알고나 있을지.
이미 남한처럼 국가적으로 포경수술을 하는 문화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과 포경수술의 거짓 상식들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른, 남성이 되기 위한 의례로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것은 비뇨기과의 경제 때문일까, 기괴한 남성성의 판타지 때문일까, 모두가 행하는 일에 소외되지 않게 너도나도 동참해야 하는 집단적 정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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