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요즘 난 요리에 푹 빠져 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돌아가면 열심히 요리를 배워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잠시 얹혀사는 집에서 친구를 실험대상 삼아 먹여보고 매번 평가를 받는다. 요리라고 해서 특별한 메뉴가 아니라 김치찌개나 참게 된장찌개 정도의 기본 메뉴이다. 마음먹고 배우기 시작하기 전만 해도 기껏해야 계란을 풀어 중탕한 계란찜을 자랑 삼아 만드는 수준이어서 무슨 요리를 해도 새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창피한 말이지만 난 태어나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독립한 지도 이제 곧 2년째인데 기본적인 찌개 하나 못 끓여낸다는 게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자취를 하더라도 굳이 요리를 해서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해먹는 게 사먹는 것보다 돈이 더 드는 실정에, 거리마다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이 들어서 쉬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해먹더라도 조리법이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을 구입하는 게 보통이다. 맛이 어떻든 ‘배부르면 되지’, 유통기한 지나도 ‘먹고 안 죽으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음식은 그저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난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주방을 성역으로 여기게 하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 자라난 이유도 있겠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요리 실력이 변변찮은 동생을 보면 모든 음식을 맵고 짜게만 했던 엄마로부터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볼 기회가 단절됐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그나마도 한번은 엄마가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볶음밥을 만들어보았는데, 볶아야 할 밥과 야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자레인지에 물을 붓고 돌리는 흉측한 짓을 저질러 되려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뻔질나게 “난 요리에 재능이 없어. 설거지는 내가 책임질게”라고만 했던 내가 요리를 배우기로 시작한 것은 여행을 하며 요리는 혼자 살기 위한 필수 요소란 점을 깨달았고,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해줄 일을 찾다 보니 음식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하다 보니 요리는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행위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재료를 볼 때 유전자조작 식품은 아닌지를 따져가며 좀더 상태가 좋은 것을 구입하게 되고 상대방의 입맛이 어떤지 살펴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세심한 부분까지 공유하는 것 같았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직접 차린 음식으로 밥을 먹는 일만큼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웰빙에 건강, 몸짱, 다이어트 타령을 하며 요즘 사람들은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추구하지만 솔직히 난 일종의 트렌드 같은 이런 유행이 우스웠다. 그들의 채식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식탁 위의 채식일 뿐이지 다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생산과 소비 체제의 변화는 아니다. 요리를 배우려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먹을거리 전쟁’은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해서 먹을까, 사서 먹을까”가 아니라, “오늘은 어떻게 가장 싸게 끼니를 때우나”였다. 그러던 내가 요리를 하려니 조금은 사치스러워진 듯도 하지만 얼마간은 이런 생활에 만족하며 지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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