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이번 한주는 독립영화 감상에 쏟아부었다. 나의 첫 작품 가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되어, 일주일 동안 상영되는 모든 영화를 ID카드 하나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에 살 적부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언젠가는 꼭 작품을 상영하리라던 소원을 푼 때이기도 하고, 한해 동안 화제가 되었던 독립영화인들의 영화를 일주일 내내 볼 수 있는 기회라 더욱 뜻깊었다. 탈학교 시절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결핍을 영화 <go>를 통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혼란을 영화 통해, 방구석에서 나와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었던 영화에, 이제 나 또한 첫발을 내디딘 감회였다.
특히나 내 작품이 자신에 관한 사적 다큐멘터리였던 만큼, 경쟁작품들 중에서도 사회의 폐부를 치열하게 파고든 다큐멘터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몇달 전만 해도 다큐멘터리는 친절한 설명문의 재미없는 선전선동이라 사고했던 때가 있었지만 더 이상 누구도 정의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인간의 윤리성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시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성찰하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은 그 무엇보다 마음속 깊이 와 닿았다. 영화에 진실의 힘이란 것이 있다면 혹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 묻는다면, 다큐멘터리가 그것에 가장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흔히 다큐멘터리 하면 잘 포장된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떠올리지만, 독립영화제의 다큐멘터리는 ‘독립’이라는 저항적인 의미가 그러하듯 그러한 거짓 시선들과의 타협을 뿌리친 채 감독이 바라본 세상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 중에서도 내게 용기를 주었던 영화는 50살에 처음 카메라를 잡아본 한 아주머니의 작품이었다. 왕선희씨의 . 12월24일 ‘열린 다큐멘터리’에서 또 상영된다. 장애인 미디어교육을 통해 첫 작품을 만들었다던 그분을 처음 기자회견장에서 뵈었을 땐 영화제 관계자쯤으로 추측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버들이와 가족이 보기 위해 만든 그녀의 영화는 자신의 힘겨움과 버들이의 일상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결혼 이후 교사직를 그만두고 평생 병치레하며 집에서 딸만 키웠다는 아주머니는 “어쩌다 영화제마다 상영되었다”는 그 작품을 통해 자신과 버들이 그리고 가족 모두 상처를 딛고 새로운 세상과 접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난 그 말에서 영화를 통해 삶이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얻었다. 온갖 아픔을 구토하듯 내뱉었던 나와는 달리, 어떻게 그간 받아온 고통을 별다른 감정 기복 없이 차분하게 풀어낼 수가 있는지 정말이지 ‘아픔이 성숙으로 빛나는 것이란 저런 것이구나’라고 절감했다.
영화제에서 난 몸에 맞지 않는 큰 상을 받았다. 3년 전 학교를 그만두고 4년 만에 받아보는 듯한 상장과 꽃다발. 마치 치르지 못한 졸업식을 하듯 축하를 그렇게 많이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폐막 파티를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혼자 방에 누워 있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여전히 난 공허했고 어리숙한 아이에 불과했다. 아마도 난 그 비어 있는 결핍을 어떻게든 채워보려 영화를 선택했나 보다. 비록 허황된 몸짓이 될지라도 버거운 삶을 버텨내기 위해….
‘겸이 만난 세상’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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