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저 의사 참 귀엽네.”
막 문을 나서는데 어르신이 요양보호사에게 건넨 말을 들어버렸다. 문을 나오니 좀 부끄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르신은 90대 중반으로 고령이었다. 공직 생활을 오래 해선지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집안 곳곳에 메모한 흔적이 보였다. 하루 일상, 일정을 메모하고 신문, 책도 읽고 메모했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드시는 약, 식사, 배변 활동까지 자세히 여쭙고 관절 가동 범위도 확인했다. 옆에서 요양보호사가 거들려고 입을 떼려 하면 본인이 대답하겠다며 제지하시기도 했다. 인지가 떨어진 흔적이 보였지만 소통이 원활했다.
어르신이 적극적으로 대답하시니 풍성한 대화를 나눴다. 혼자 생활하기 위험한 부분도 눈에 띄었지만, 어르신은 자신의 일상을 꼼꼼히 챙겼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르신 보기에 귀여워 보였나보다. 어르신들과 항상 화기애애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다. 소통이 어려운 환자를 두고 보호자와 이야기 나눌 때도 많다. 듣기에 서운한 이야기, 냉정한 이야기를 할 때면 보호자나 환자에게 다소 매몰차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귀엽다는 이야기로 끝났으니 어쨌든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요양원에 계신 어떤 어르신은 치매가 심하고 공격적이기도 해 대하기 어려웠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 치료 후 돌아오셔서 만났을 때 얼굴을 마주하고 바보같이 웃으며 “어르신 안녕하세요” 말하며 청진기를 몸으로 가져갔다. 어르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쁜이 왔어?” 하고 말씀하신다. 웃음을 참고 “네 왔어요” 하고 대답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쁜이 왔어?”가 인사가 됐다. 나에게만 그렇게 부르시는 건 아니고 기분이 좋을 때는 곁에서 돌봐주는 분들에게 이쁜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몇 달 지나고 곁에서 돌보는 사람들이 바뀌며 낯설어지셨는지 이쁜이라고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주 잠깐 마주치는 나에게만 가끔 “이쁜이 왔어?”라고 하신다. 간호사님이 “선생님에게만 이쁜이라고 하시네” 하고 웃는다. 어르신에게 이쁜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양시설이 철저히 격리됐던 시기에 예방접종을 위해 작은 요양원에 들렀다. 한분 한분 상태를 살피고 예방주사를 놓고 지나가는데 어떤 어르신이 흐느끼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직원이 어르신에게 “왜 우세요?”라고 물으니 “응, 반가워서”라며 눈물을 손으로 닦으신다. 새로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우는 어르신이라니. 새삼 놀랐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인지가 떨어져 요양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어르신을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분이라고 생각하니 바이러스 차단을 위한 격리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얼마나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살아 있는 한 소통하고 대화하는 일이 건강의 본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약자들에 대한 과도한 격리 통제는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선의를 가장해 죽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의 존재 목적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는지 의심해본다. 어르신의 건강을 돌보고자 했다면 더 많은 소통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았을까? 위험을 감수하고 타인과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는 일이 삶에 이로울 때도 있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체포 방해’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기각
‘헌재에 쫄딱 속았수다’…윤석열 파면 지연에 매일매일 광화문
김성훈 구속영장 기각, 비화폰 수사 ‘암초’…“범죄혐의 다툼 여지”
유흥식 추기경 “헌재 더 이상 지체 말라…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결국 김건희” “경호처가 사병이야?” 누리꾼 반발한 까닭
야 5당, 한덕수 헌재 선고 앞 “최상목 탄핵” 이유 있었네
민주노총, 정년 연장 추진 공식화…“퇴직후 재고용 절대 안 돼”
검찰, 이영애·김건희 친분 주장한 전 열린공감TV 대표 약식기소
캐나다, 자국민 4명 사형집행에 “중국 강력 규탄”
윤석열 30년 검찰동기 이성윤 “윤, 얼굴서 자신감 떨어져 ‘현타’ 온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