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나를 아는 사람 중 내게 노골적이든 한번 떠보기 위해서든 대학에 가라고 권유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위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 가길 바란다. 사실 그들에게 그런 말이 나오게 한 데는 내가 뿌린 혐의를 부인할 수 없다. 난 입버릇처럼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공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다”라는 말은 탈학교생들의 흔한 레토릭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교육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지 못할 때면 대학 진학에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겐 그들의 권유를 뿌리칠, 혹은 뿌리칠 수밖에 없는 알리바이들이 산재했다.
먼저 난 대학 진학의 필수 코스인 수능시험을 준비할 만한 위인이 되지 못한다. 온갖 종류의 문제를 통달할 때까지 암기하는 ‘시험 잘 보는 연습’이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 이미 짧게 겪어본 나로선 수능을 치를 때까지 그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내게는 공부를 할 만한 자본이 없다. 2년 전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1년간 수능 준비에 들어가는 책값과 학원비를 조사해본 뒤 군말 없이 수능을 포기했다. 그때 난 왜 강남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더 많이 진학하는지를 체감했다. 그렇지만 수능이나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평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대학 진학을 원한다면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한 청년의 삶처럼 악전고투를 해서라도 대학에 갔을 것이다. 물론 내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대학에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좀더 가능성 있는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학교의 경쟁력을 키우고 학생 편의 시스템을 도입하기는커녕 학벌에만 의존하는 대학의 현실을 보면 한마디로 “배가 불렀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수능 등급제가 발표되자 본고사를 도입한다는 대학들이 교육을 망치고 있는 장본인이다. 어디 대학뿐이랴?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가 다 망가지고 있는데. 수능은 자격시험이 되어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 누구나 돈 걱정하지 않고 적성에 맞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음에도 마치 소외되지 않기 위해 트렌드마냥 대학에 진학한다. 한국의 대학은 무슨 의무 교육기관 같다.
불만을 털어놓긴 했지만 혼자 잰 체하며 대학이란 공간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혼자 하는 공부의 한계를 느끼고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 싶음에도 쉽사리 대학 진학을 결정할 수 없는 현실은 서글프다. 내가 대학에 가야 할 이유가 신분상승, 연애, 탈학교생의 불안정한 위치로부터의 탈출구가 아닌 이상 한동안 대학은 내 삶에서 의미를 갖진 못할 것이다.
내게는 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친구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와 함께 다닌 대안학교를 자퇴하고 겨우 간 대학교마저 한 학기를 채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는 참 교육을 갈망했지만, 결국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처음부터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난 종종 그 친구가 적성에 맞는 대학에 들어갈 때 비로소 교육과 대학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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