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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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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공동체

등록 2004-11-12 00:00 수정 2020-05-03 04:23

[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소록도에 와서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제 막 섬에 발을 들여놓은 내게 다들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인지 자세히 들여봤지만 생면부지다. 알고 보니 소록도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인사하는 문화가 있고, 나 또한 2주간 자원봉사를 하며 지나가는 이들 누구에게나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문화에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작은 사슴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소록도는 잘 알다시피 일제 때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수용했던 곳이다. 말로만 들어온 터라 소록도에 도착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만 해도 생명의 기운이라곤 느낄 수 없는 늙은 환자들이 다 쓰러져가는 칙칙한 판잣집에서 뒤엉켜 살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한센병 양성 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하고, 완치된 사람은 오목조목 형성된 각 마을에 거주하며 텃밭 농사도 짓고 돼지와 같은 가축들을 기르며 사는 공동체로 변화됐다.

짧은 기간 동안 지내며 가능하다면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난 소록도를 좋아하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순박해서 이곳이 좋다고들 하지만, 천형으로 불리던 한센병을 앓으며 문둥이라는 치욕스런 이름을 달고 살았던 그분들의 가슴에 박힌 가시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나로선 쉬이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소록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서로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지 꿰고 있는, 자기 집 감을 옆집 사람에게 나눠주는 그런 인간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돈이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현대의 복음이 판치는 파탄된 윤리의 세계에서 난 사람들이 숨쉴 수 있는 대안은 힘없는 소수자들이 모여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이익만이 중요하고 타인의 간섭을 기피하는 극도로 개인주의화된 삶을 살아오며 난 늘 작은 공동체를 꿈꾸었다. 일본의 학생들이 등교 거부를 한 뒤 어느 섬을 사들여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소설 와 간디학교와 같은 생태교육 공동체는 탈학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성미산을 지키며 가꾸어진 성산동 공동체를 보며 감동을 받곤 했다.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폭력적인 국가에 맞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인 소수자들의 사회주의 공동체를 꿈꾸었기 때문이고, 쿠바나 프랑스의 어느 사회주의 공동체는 10대 시절 나의 유토피아였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그 모든 게 철없는 판타지에 불과한 듯해 무기력해졌지만, 소록도를 보며 다시 이웃과의 경계를 허물듯 담장을 허문 집에 텃밭을 일구고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어졌다.

“한 맺힌 인생이지. 가족들과 헤어지고, 인간 사회에서 소외되고. 방 안에 있으면 이젠 외로움과 고독만이 있을 뿐이야. 나야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지.” 소록도에서 지내며 친해진 한 할아버지의 애처로운 삶은 소록도 주민들의 한이 서린 섬에 더욱 애착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령화된 이곳의 주민들이 사라진 뒤에도 소록도가 단순한 관광지가 되지 않고, 에이즈 양성환자들과 같은 소수자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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