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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감사할 이, 다음 감사대상이다

등록 2022-10-26 06:28 수정 2022-12-09 06:56
1435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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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직권남용’으로 표지이야기를 써야 할 순간이 올 거야.”  몇 달 전, 고한솔 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몰랐다. 이렇게 금세 그 ‘순간’이 오게 될 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보도가 명예훼손인지를 따지는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2022년 4월 대법원이 무죄 확정판결해준 것을 비판하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나눈 이야기였다. 대법원은 재판 개입이라는 행위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직무 권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애초 ‘직권’(직무 권한)이 아니었으니 남용할 일도 없다는 논리다.

최근 들어 ‘직권남용’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대개 검찰이 전 정권의 고위 인사들을 수사할 때 들이민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퇴 압박을 넣었다, 정부 문서에서 중요한 문구를 삭제했다 등을 캐내는 식이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수사하면서 적용하려는 혐의도 직권남용이다.

적폐청산 명목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는 직권남용 외에 ‘감사원’이 있다. 요즘 부쩍 더 그렇다. ‘검찰공화국’의 돌격대장은 알고 보니 검찰이 아니라 감사원이었다. 문재인 정부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는 패턴이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문제제기하고, 감사원이 돌격해 확보한 자료를 검찰에 넘기고,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수사에 박차를 가해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결국 기소한다. 최근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요청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도 그랬다.

돌격대장 중에 가장 앞장선 이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다. 그는 2020년 공공기관감사국장일 때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를 지휘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자료를 포렌식으로 복구하고 7천 쪽에 달하는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전달했던 능력을 2022년에도 십분 발휘하고 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 “그간(문재인 정권 5년간) 부서지고 무너지고 해체된 공직 질서” 등 발언도 거침이 없다. 감사원 직원들에게 보낸 문서에서는 자신의 ‘고래급 이상 사냥 실적’을 자랑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도 그에겐 고래 쪽에 가까운 사냥감이었을 테다. <한겨레21>은 2018년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가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던 국책연구기관 소속 두 학자의 자료가 디지털 포렌식으로 추출돼 감사원에 제출된 과정을 단독 취재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들(위원장·기관장), 정치적 사건이나 사업들(서해 공무원 피살과 탈원전)뿐만 아니라 정책(소득주도성장)도 ‘고래사냥’의 대상이 된 셈이다. 이완, 김양진, 류석우 기자가 감사원 안팎 10여 명을 인터뷰해 기사를 썼다.

김대중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지낸 고 한승헌 변호사는 평소 “신앙을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감사원장을 시켜 밤낮 감사할 수밖에 없도록 하셨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공모를 통해 감사원 원훈을 ‘바른 감사, 바른 나라’로 바꾼 것도, 눈과 귀의 형상을 본뜬 상징(로고)을 만든 것도 그였다. 국민의 눈으로 보고, 국민의 귀로 듣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하지만 감사원은 그동안 국민의 눈과 귀가 되기는커녕 정권의 입맛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감사 결과를 내놓기에 급급했다. 특히 지금 감사원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다.

돌격대장이자 사냥꾼이 된 감사원에 감사할 이들이 누구일까. 그들이 바로 다음 감사 대상이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1435호 표지이야기

윤 대통령은 서해공무원 감사 결과 보고 안받나?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64.html

‘소득주도성장’ 표적감사 위해 디지털 포렌식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55.html

‘문재인 정부 수사’ 사전작업용 포렌식 규정 개정?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56.html

‘고위공무원 감사’를 ‘고래사냥’이라는 이 남자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51.html

감사원의 귀에 걸면 귀걸이 감사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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