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형상과 귀의 형상이 합쳐진 모습. 감사원의 상징(오른쪽 로고)이다. ‘국민의 눈으로 냉철하게 보고, 국민의 귀로 바르게 듣는 마음가짐’(감사원 누리집)을 뜻한다. 1963년 감사원이 설립된 이후, 감사원의 눈과 귀는 과연 국민의 것이었을까.
최근 국민의 눈과 귀가 감사원을 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있는 국책연구기관들을 전방위로 감사한 데 이어, 소득주도성장 같은 정책 사안도 감사에 나섰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과정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이 과정에서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감사에 착수한 사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직접 보낸 문자메시지 등이 드러나며 감사원의 중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같은 행위에 누구는 ‘적폐청산’이라 하고 누구는 ‘정치보복’이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다면 감사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감사원은 그동안 얼마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감사를 해왔을까. 감사원이 ‘국민의 눈과 귀로 보고 들었다’는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4대강 사업 감사는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지적된 대표 사례다. 4대강 사업 감사는 2010~2017년 총 네 차례 진행됐다. 어느 정부에서 감사했느냐에 따라 감사 결과가 달라졌다.
1차 감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2월 진행됐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점검하는 차원이었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으로) 홍수 방어 능력이 크게 늘었고, 장래 물 부족 해소와 가뭄 극복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비타당성조사나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논란에는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 뒤 2012년 5~9월 진행된 2차 감사는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주요 시설물의 기능과 수질에 초점이 맞춰졌다. 결과는 “보의 내구성이 부족하고 불합리한 수질 관리로 수질 악화가 우려된다”고 나왔다. 이명박 정부 말기와 박근혜 정부 초기에 걸쳐 2013년 1~3월 진행된 3차 감사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강 사업에 입찰한 건설사들의 짬짜미(담합) 사건 처리를 임의로 지연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정부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해 담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부분도 지적됐다.
4차 감사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다. 최초 정책 결정 과정부터 법적 절차와 사업 집행까지 사업추진 전 과정을 감사했다. 감사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낙동강이 최소수심 6m로 준설되고 대형 보 16개가 건설된 것이 드러났다. 또한 환경부가 사업 초반에 수질오염 우려를 제기했으나, 청와대가 자제하라고 요구해 입을 다문 것으로도 나타났다.
1차 감사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봤던 환경영향평가나 예비타당성조사 과정 등 사업 사전 절차에 대한 결론도 바뀌었다. 2009년 실시된 환경영향평가에 관해 1차 감사 결과에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나왔지만, 4차 감사 결과에선 조류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2009년 당시 환경영향평가가 협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타당성조사도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부 사업이 조사에서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권에 따라 감사원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서민금융 3종 세트’의 하나이던 ‘새희망홀씨대출’(희망홀씨) 제도를 두고 감사원은 2011년 3월 “서민의 금융 애로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며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서민금융 3종 세트 중 희망홀씨 제도를 유일한 모범사례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초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실태에 대한 전면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부적합자에 대한 대출, 성실 상환자 금리 감면 감독 미흡 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에 주의 조처를 했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감사원이 독립적인 감사를 하지 못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적극적으로 감사해온 경향이 있다”며 “(평소에도) 꾸준하게 감사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어야 적극 조사를 하다보니 정치적 감사가 아니냐는 시비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 직후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을 밀어내려는 차원에서 진행된 이른바 ‘찍어내기’식 감사도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게 하는 역사다. 이런 모습은 보수 정부, 진보 정부 가리지 않고 반복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감사원은 340명을 투입해 주요 공공기관 31곳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다. 당시 투입한 감사 인력은 감사원 전체 인원(약 1천 명)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감사원은 감사 착수 두 달 만에 중간발표를 통해 주요 공공기관에 △방만하고 편법적인 인사 운영 △업무추진비의 무분별한 집행 등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때 감사받은 기관장 대다수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박영선 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3~6월 감사원의 1·2차 공공기관 경영개선 실태 감사를 받은 98개 기관장 가운데 79명이 감사 직후 사표를 냈다. 이 중 임기 만료와 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 등 뚜렷한 사유가 있는 기관장은 23명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엔 기관장들을 밀어내기 위해 지난 정권 말기에 이미 진행된 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도 선택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3월11일 취임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대통령 발언이 있고 사흘 뒤인 3월14일, 감사원은 금융공기업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 당시 감사 대상에 포함된 산업은행은 대표적 ‘엠비(MB)맨’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이 버티고 있던 곳이다. 감사원은 이어 그해 6월에도 한국전력 등 공기업의 목표가 과도하게 설정됐다는 등의 지적사항을 내놨다.
정권교체 시기마다 기관장 ‘찍어내기’로 악용됐던 감사의 문제점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방송(KBS)을 겨냥한 감사다. 2008년 3월 여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정연주 당시 한국방송 사장에게 사퇴 압박이 이어지자 뉴라이트 성향 단체들이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특별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정 전 사장 해임을 건의했다. 해임제청안은 한국방송 이사회를 통과했고, 결국 정 전 사장은 해임됐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17년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고대영 전 한국방송 사장 등에 대한 사퇴를 압박하자,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KBS 새노조)가 이사진의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에 관해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이사진 감사를 통해 방송통신위원회에 해임 등 인사 조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강규형 당시 이사가 해임됐다.
두 건이 해임까지 이르게 된 구체적인 맥락은 다르지만, 이후 소송으로 법원에서 ‘해임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받았다는 점은 동일하다. 정연주 전 사장은 2012년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했고, 강규형 전 이사도 2021년 해임 불복 소송에서 승소가 최종 확정됐다. 임기를 남기고 해임할 정도의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애초 무리한 해임 건의였던 것이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는 이미 이들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뒤였다. 강 전 이사의 경우 해임 이후 이사회 구성이 바뀌면서 고대영 전 사장까지 해임됐다.
한국방송에서는 지금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지고 있다. 2022년 6월 한국방송 노동조합과 공영언론미래비전 100년위원회 등 보수 성향 단체가 김의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한국방송 이사회가 김 사장을 부실 검증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감사원은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책을 수립하는 자리(기관장)의 경우 임명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일괄적으로 물러날 필요가 있지만, 반대로 그와 관계없이 임기를 채워야 하는 자리도 있다”며 “임기가 보장됐음에도 샅샅이 감사하고 괴롭혀서 자기 발로 떠나도록 하는 수단으로 감사원을 동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감사원장 임기의 운명
감사원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2000년대 들어 정권교체나 정부와의 마찰로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반복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연임된 전윤철 전 원장(2003~2008년 재임)은 이명박 정부 초기 사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양건 전 원장(2011~2013년 재임)은 박근혜 정부 초기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라는 말을 남기고 감사원을 떠났다. 월성원전 감사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었던 최재형 전 원장(2018~2021년 재임)은 대선 출마를 위해 임기를 지키지 않고 나갔다.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이 아닌 독립기관화하고, 원장 임기도 대통령 임기보다 길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독립기관화는 개헌 사항이라 당장 이뤄지긴 어렵다.
김영삼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취임한 이회창 전 원장(1993년 2월~1993년 12월 재임)은 취임사에서 “누구의 부당한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단군 이래 최대 전력 증강 사업인 율곡사업 비리의 감사를 단행했다. 이 전 원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이렇게 밝혔다. “감사원은 감사원법 등 법률이 정한 대로 직무상 독립을 지키고 대통령 등 다른 국가기관도 그 독립성을 존중하면 끝나는 일이다.”
감사원 누리집에 공개된 역대 감사원장 7명의 취임사(노무현 정부 이후)를 보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언급하지 않은 원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취임사대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킨 원장은 몇 명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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