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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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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지향, 독자 지향

등록 2022-08-08 06:06 수정 2022-08-09 01:04
1424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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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에 집중해서 한 권의 잡지를 만드는, <한겨레21>의 시그니처인 통권7호 주제를 ‘비건’(Vegan)으로 결정하고 나서 뉴스룸 안에서는 이상하고도 재밌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일단 기자들이 모이면, 채식과 비거니즘 이야기만 지겨울 정도로, 줄곧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통권호 제작을 앞두고 매일같이 밤늦게까지 업무가 이어지던 어느 날, 누군가 간식을 한가득 사옵니다. “어, 이거 먹어도 되나요?” 과자 포장지 뒷면에 ‘우유, 쇠고기 함유’라고 쓰여 있습니다. 시즈닝(조미료)에 오스트레일리아산 우육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물, 굴과 조개는 고통을 느끼는가” “대체육은 고기인가 아닌가”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비건 관련 책만 수십 권을 공동구매해서 나눠 읽고 고민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뉴스룸 기자들도 ‘비건’을 취재하면서 “비며들고”(비거니즘에 스며들고) 말았습니다.

비건을 통권호 주제로 정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거니즘은 ‘비건 빵집 투어’ ‘비건 식단 SNS 인증’ 등 젊은 세대 사이의 유행이나, 비건 제품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일부 대기업의 전략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자 가치입니다. 건강, 기후위기, 소수자 인권, 생명, 동물권 등이 교차하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시대를 읽어내는 열쇳말로, <한겨레21>이 지향하는 사회의 가치를 담아내되 ‘채식이냐 육식이냐’ 이분법을 넘어서는 논쟁 지점을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뉴스룸에 비건은커녕 비건 지향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었던 탓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과몰입”이라고 말할 정도로 “비며들어” 열심인 기자들 덕분입니다. 기획 단계부터 두 달 넘게 뛰어다녔습니다. 제주, 강원도 인제, 충남 홍성, 경북 청도 등 전국 10곳을 누비며 취재하고, 자연주의 요리강습, 채식급식 하는 학교와 기업, 대체육 연구개발센터, 비건 레스토랑과 카페, 소와 말 생크추어리(보금자리), 돼지와 소, 닭을 키우는 농장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정규 기자는 돼지농장에 일용직으로 취업해, 공장식 축산 현장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배우 손수현, 피터 싱어, 멜라니 조이를 포함해 비건을 신념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들도 하나둘 건강하고 싶어서, 동물의 고통에 공감해서, 비거니즘 실천에 동의해서, 각자의 이유로 비건을 지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논비건이 공감 능력이 없고 비윤리적인 사람이라고 밀어붙이며, 비거니즘을 설파하는 한쪽의 이야기만 담은 잡지는 아닙니다. 비거니즘을 납작하게 전달하기보다, 사유하고 소통하고 대안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고민의 흔적이 비거니즘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다룬 4부에 담겼습니다. 비건도, 논비건도,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이도 모두 함께 읽고 한번쯤 고민해주시길 기대하며 만들었습니다.

이 통권호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비거니즘을 고민하는 여러 필자와 200여 명의 독자와 함께 만든 잡지입니다. 사전 설문조사에 참여해준 독자 여러분이 비건 또는 비건 지향으로 살면서의 경험을 정말 자세히도 적어주셨습니다. 절실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기자들이 하나하나 밑줄 치며 읽고, 그중 일부를 발췌해 지면에 실었습니다. 비건을 주제로 출간된 어떤 단행본에 뒤지지 않을 만큼, 깊이 있고 충실한 잡지라 자부합니다.

비건 통권호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몇 가지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서울, 제주의 비건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이 잡지 안에 숨어 있습니다. 비건 취재를 하면서 기자들 안에 가득 차 찰랑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배우 손수현, 작가이자 가수인 전범선 그리고 <한겨레21> 기자들이 8월24일 여러분을 기다립니다(참가 신청은 옆 QR코드로). 정기구독자 여러분은 한 주 쉬고 제1426호에서 찾아뵙겠습니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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