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인생작’으로 꼽는 지인이 있습니다. 홀로 사는 그는 살던 집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한창 새집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서울은 아파트뿐 아니라 다세대 원룸도 전셋값이 2억원대로 올랐다”며 오늘도 메신저로 ‘ㅜㅜ’(울음)를 보냅니다. 그는 조만간 서울을 떠날지 말지 결단할 것입니다.
그의 드라마 호평에 공감하는 저 역시 2년 전부터 경기도 주민입니다. 40대 중반인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 서울을 떠났습니다. ‘노른자’(서울)에서 ‘흰자’(경기도)로 밀려난 느낌을,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상기합니다. 다행히 지금 사는 곳이 매우 마음에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이따금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 어딘가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드라마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처럼 서울을 떠나오게 된 이들의 헛헛한 마음을 건드립니다. 놓칠세라 허겁지겁 잡아타는 마을버스, 지하철에서 보내는 기나긴 출퇴근 시간, 야심한 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들과 함께 탄 택시가 나오는 장면에 공감하고 위로받습니다. 마음이 허한 현실의 ‘산포 삼 남매’들은 이번 6·1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렀을까요.
대선에 이은 더불어민주당의 패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가상공간의 실제 배경인 경기도 군포 시민들의 마음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굳건한 민주당 텃밭이던 군포시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처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표가 갈리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득표율 0.89%의 차이였지만, 취재 과정에서 민주당에 실망한 군포 시민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겨레21>에 “군포에선 민주당이 당연히 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이젠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최근 ‘아파트값이 높은 동네일수록 보수정당에 투표했다’는 연구 결과가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대 연구진이 2018년 지방선거부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1㎡당 평균 매매가가 100만원 높아질수록 유권자가 보수정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1.7%포인트 높아지더라는 분석입니다. 아파트값 상승은 보수정당의 득표율과는 양의 상관관계를, 민주당 득표율과는 음의 상관관계에 있었습니다. 실제 임기 후반 집값이 크게 오른 노무현·문재인 두 정부 이후 모두 보수정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에 부동산 정책 실패가 끼친 영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산포 삼 남매는 투표했을까’ 기사가 나간 뒤 한 지인이 말을 전해왔습니다. “내가 그 동네 오래 살아봐서 아는데, 군포 주민들은 민주당에 실망한 게 아니라 오히려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등으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보수정당에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군포시를 지나는 수도권전철 금정역으로, 수도권 동북부 의정부에서 남부 수원을 연결하는 GTX-C 노선이 지날 계획입니다. 기사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지만,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집값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올려놓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함께, 불어난 자산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로 표출됐는지 모릅니다. 지인의 말처럼 “우리는 아직 ‘아파트 투표’라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선거도 끝나고 드라마도 끝난 탓일까요. 허한 마음이 더 헛헛해지는 느낌입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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